식민주의 폭력에 맞서자!

<전장의 기억>

등록 2002.08.31 20:55수정 2002.08.31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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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CNN의 그 유명한 아랍 종군기자 피터 아네트가 접시 모양의 위성 안테나 옆에서 마이크를 잡고 현장 중계하던 화면을 텔레비전으로 감상(?)하면서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우리들의 내 안의 폭력성이 작동했기 때문이리라.

특히 힘센 자들에게 있어 전쟁은 이 정도로까지 일상에 매몰돼 있어 엄청난 사망자수에도 불구하고 변함 없는 일상 속에서 즐겁게 이야기되고 이내 잊혀질 뿐만 아니라 마치 'GAME OVER' 표시처럼 디지털화된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오키나와 그 슬픈 역사

그런 점에서 일본 오키나와 근현대사를 통해 전쟁의 문제를 천착한 이 책은 "일본에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50년이 넘었지만 전장의 흔적이 희미해진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 이월되었으며, 또한 진부한 일상에서 전장이 준비된다"고 역설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애초 이 책은 전후 50년을 맞아 일본에서 전후 책임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게 제기되던 해인 1995년에 나와 큰 반향을 일으킨 것으로, 전쟁이 아닌 전장을 이야기한다.

'전쟁'이 '싸움' 그 자체를 말한다면, '전장'은 '전쟁터'로 보는 것이 사전적 의미겠지만 여기서는 "폭력을 예감하는 하나의 장(場)"이다.

근대의 전쟁이 모든 공간을 전장으로, 모든 인간을 병사로 만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장이 일상화되고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분이 사라져 모든 인간을 죽음으로 이끄는 동원"인 '전장동원'을 이야기하면서 이 책은 "오키나와 전투라는 하나의 역사 속에서 전쟁동원이 전장동원의 성격을 띠게 되는 과정을 그려 나간 사고의 궤적"이라고 말한다.

오키나와의 슬픈 역사는 1868년 메이지유신을 단행했던 일본 제국주의는 영토확장이라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 우선 예로부터 독립왕국이었던 류큐왕국(현 오키나와현)부터 침략하는 데서 시작됐다.


그곳 장정들이 황군으로 차출됨은 물론 '남방개척'이라는 미명 아래 주민들까지 동남아침략의 전위병으로 끌려감과 동시에 류큐 민족을 2등 국민으로 전락시키는 한편 '일본인화' 작업의 대상이 된다.

그뿐이 아니다. 종전을 앞둔 2차 세계대전 끝을 장식한 미군과의 '오키나와 전투'에서 엄청난 주민들이 죽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미군의 점령지로, 동아시아의 군사거점으로 활용된다.

한국과 오키나와의 닮은꼴

그런 오키나와의 전쟁이 지금은 끝났는가. 아니다. 1972년 섬은 일본으로 되돌려졌지만 미군들은 여전히 진주하고 있다.

이런 오키나와의 역사 속에서 이 책은 어딘지 모르게 설령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역사도 이와 비슷하다는 점을 느끼게 해준다.

가령 '일류동조론'에 동의하면서 류큐인이 류큐 역사의 주체가 되길 바랐던 이하 유후(伊波普猷)와 민족주의자임을 자처하면서 '일선동조론'(日鮮同朝論)에 빠진 이광수가 많이 닮지 않았는가.

오키나와의 수많은 민간인 학살 사건을 얘기하는 가운데 자신의 곁에 '제주도의 4.3사건'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국어판 서문'에서 말하는 지은이는 "이하 유후의 침묵이 지닌 실제의 힘은 제국과 자본주의에 관련된 이 폭력의 예감으로서 발견되어야만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이 책은 군사적 폭력에 대항할 가능성을 말한다. 그것도 과거의 전장에 한정하여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전장으로 만들어져 가는 현실 세계 속에서 모색하는 반군투쟁의 가능성이다.

덧붙이는 글 | <전장의 기억> 도미야마 이치로 / 이산 / 304쪽 / 12,000

덧붙이는 글 <전장의 기억> 도미야마 이치로 / 이산 / 304쪽 / 12,000

전장의 기억

도미야마 이치로 지음, 임성모 옮김,
이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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