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이다." 사망한 허원근씨의 아버지 허영춘씨는 이번까지 모두 4번 이 부대를 찾았다.오마이뉴스 홍성식
이들 참고인들의 진술과 관련, 진상규명위 관계자는 "2일 낮 1시 30분쯤 허일병의 사체가 처음 발견됐다는 헌병대의 기존 수사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라며 "사건 은폐 과정에 대대장과 보안부대 관계자가 깊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허 일병이 사망한 장소로 추정되는 중대 내무실(현 폐품창고)로 자리를 옮겨 진행된 조사에서는 모조 시체로 당시 상황을 재현했다.
현장조사에 참여한 한 조사관은 "이 자리에서는 총 맞고 쓰러진 상태였는데도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의무대에 연락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중대장은 허원근씨의 더블백을 뒤져 수첩과 공책 등을 빼내 이를 중대장실로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사관들은 "사고 후 대대장과 중대장이 2번 이상 전화통화를 했으며, 전화를 받은 대대장이 욕을 했고, 중대를 찾은 대대장은 내무실 바닥에 떨어진 피를 닦는 도중 내무실로 들어오기도 했다"는 증언자 진술도 덧붙였다.
아들의 시체가 발견된 장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있던 허영춘씨는 기자들이 몰려들자 "총소리를 듣고 내려온 중대원들이 있었는데 중요한 증인인 그들을 조사하지 않았고, 내무반에 있었던 애들만 불러다 닥달했다. 또 내가 부대 안에서 발견한 핏자국(사고발생 이틀 후)에 대한 조사요구도 묵살했다"며 당시 헌병대의 수사태도를 비난했다. 허씨의 주장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진상규명위가 추가로 확인해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18년간 자식의 '죽음'을 가슴에 묻어온 허씨는 "아들이 죽었을 때도 울지 않았다. 이제 와서 부대 지휘관들의 처벌은 원치 않는다"고 심경을 토로하고는 "다만 진실이 밝혀졌을 때 국군통수권자는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M-16 소총으로 자살이 가능한지를 검증하고 있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들.오마이뉴스 홍성식
한편 이날 중대본부 앞에서 실시하려던 총성실험은 하지 못했다.
진상규명위 관계자는 "도로가 새로 뚫리고 막사 주변의 방호벽도 없어지는 등 현장의 지형이 너무 달라져 정확한 검증이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현장조사를 마감하면서 진상규명위측은 "허일병이 84년 4월 2일 새벽 예비역 부사관 노 모씨의 총격을 받아 숨졌고, 이를 자살로 은폐하기 위해 대대급 간부가 참여한 가운데 대책회의가 열렸다는 참고인 이모, 전모씨의 진술이 신빙성이 높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허일병 사건에 대한 최종 조사결과는 오는 10일 발표될 예정이다.
| | <조선일보> 보도 놓고 현장서 '설전' | | | | 이날 실사 현장에선 '허원근씨 의문사'를 다룬 <조선일보>의 보도태도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조사관 중 한 명은 기자 브리핑이 시작되기 전 "모 일간지가 증언자들에게 위협적으로 전화를 해 증언자들이 증언을 꺼리고 있다"며 보도에 신중을 기해줄 것을 부탁했다.
중대 내무반에 대한 실지조사가 열리던 시간에는 <조선일보> 기자와 김학선 조사관 간에 가벼운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 조사관은 "무리하게 증언자들에게 연락을 취할 경우 자칫 그들이 위축돼 증언을 거부할 수도 있다"며 증언자들에 대한 과도한 취재를 자제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 기자는 "(증언자들에게 확인하는 것은) 진상규명위에서 발표한 것을 확인하는 과정의 하나다. 그것을 취재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맞서 잠시 논쟁이 일기도 했다. / 홍성식 기자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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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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