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만에 개봉된 영원의 타임캡슐

[배낭하나 달랑메고4] 이탈리아 '폼페이'를 찾아

등록 2002.09.05 14:40수정 2002.09.0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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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중앙을 관통하고 있는 가도로. 당시에는 지금의 간선도로와 같은 개념이 없어 무조건 시내 중심을 관통하도록 가도를 건설했다. 특히 널찍한 도로 양옆으로 설치된 인도와 그 사이의 배수시설이 인상적이다.
폼페이 중앙을 관통하고 있는 가도로. 당시에는 지금의 간선도로와 같은 개념이 없어 무조건 시내 중심을 관통하도록 가도를 건설했다. 특히 널찍한 도로 양옆으로 설치된 인도와 그 사이의 배수시설이 인상적이다.권기봉
2백년 넘게 계속 발굴 중. 1784년 본격적인 발굴 작업을 시작한 이후 아직도 발굴이 계속되는 폼페이. 이처럼 충분한 시간 여유를 두고 발굴하는 것이 후손이나 현재를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며, 옛사람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2백년 넘게 계속 발굴 중. 1784년 본격적인 발굴 작업을 시작한 이후 아직도 발굴이 계속되는 폼페이. 이처럼 충분한 시간 여유를 두고 발굴하는 것이 후손이나 현재를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며, 옛사람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권기봉
평화와 희망의 21세기를 맞이한다며 요란하기만 했던 지난 2000년 12월경. 서울시를 비롯해 각 지방자치체나 사업체들을 중심으로 대결과 증오의 20세기를 떠나보낸다는 의미에서 타임캡슐을 묻는다 어쩐다 하며 한바탕 소란을 피운 적이 있음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독자들 중에는 자신만의 유산과 기억을 오래오래 남기기 위해 집뒤뜰이나 앞마당에 나름의 타임캡슐을 묻은 기억이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타임캡슐이라야 고작 몇십 년, 길어야 1백년 후에 열어보기로 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솔직히 그때 가서 열어본다 한들 대부분의 물품들이 아직 우리 주변에서 쓰이고 있거나 쓰이진 않더라도 조금만 수고하면 쉽게 구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 1800여 년만에 개봉된 타임캡슐이 있어 소개하려 한다. 특히 매설된 뒤 근 2천년만에 개봉되긴 했지만 그 개봉작업이 한번에 끝나지 않고 거의 2백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는 점 또한 특기할 만하다. 자신이, 그 시대가 원하지도 않았는데도 '동작 그만!'을 외치며 땅속으로 사라져 거대한 타임캡슐로 남은 고대의 도시, 서기 79년 8월 24일, 폼페이.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로마 시대의 도시엔 대부분 들어서 있는 원형극장으로, 지하에는 맹수가 이동했음직한 통로가 남아 있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로마 시대의 도시엔 대부분 들어서 있는 원형극장으로, 지하에는 맹수가 이동했음직한 통로가 남아 있다.권기봉
폼페이는 세계적 미항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피레네산맥 쪽으로 약 12km 들어간 베수비오산 남쪽에 위치한 도시이다. 지금이야 내륙에 위치한 도시가 되었지만 타임캡슐이 될 당시까지만 해도 베수비오산 남동쪽에 위치한 사르누스강 하구에 위치한 항구 도시였다. 이랬던 도시가 나폴리와 폼페이 사이에 위치한 유럽 대륙 유일의 활화산 베수비오산이 폭발함으로써, 한때 로마제국 농업과 상업 중심 도시 중 하나에서 일순간 '타락과 오욕의 도시'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인간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즉 당시 폼페이 인구 2만여 명 중 약10%에 해당하는 2천여 명이 목숨을 잃은 이 재앙으로 폼페이는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화산탄 아래 아무런 저항 없이 사뿐히 묻히게 된다.

배우들의 노래는 어디 가고. 원형극장과 함께 폼페이를 지키는 거대 유적 중 하나인 반원형 극장이다. 좌석을 복원하려는 것인지 철제빔으로 좌석이 있었을 자리를 일일이 표시해 두었다. 특히 좌석뿐만 아니라 무대도 원형이 남아 있어 배우들의 노랫소리가 귓전을 울리는 듯하다.
배우들의 노래는 어디 가고. 원형극장과 함께 폼페이를 지키는 거대 유적 중 하나인 반원형 극장이다. 좌석을 복원하려는 것인지 철제빔으로 좌석이 있었을 자리를 일일이 표시해 두었다. 특히 좌석뿐만 아니라 무대도 원형이 남아 있어 배우들의 노랫소리가 귓전을 울리는 듯하다.권기봉
춤추는 피우니. 폼페이의 부유한 귀족이었던 카시의 저택으로, 청동상의 이름을 따 '피우니의 집'이라고도 불린다. 피우니 청동상의 가녀린 몸짓도 예술이지만, 그 청동상을 받치고 있는 바닥 타일 색깔이 예쁘다.
춤추는 피우니. 폼페이의 부유한 귀족이었던 카시의 저택으로, 청동상의 이름을 따 '피우니의 집'이라고도 불린다. 피우니 청동상의 가녀린 몸짓도 예술이지만, 그 청동상을 받치고 있는 바닥 타일 색깔이 예쁘다.권기봉
그런데 현대인은 지극히 이기적인 것일까. 이 사고가 당시 시대 사람들에겐 무척이나 불행하고 두려운 일이었겠지만, 삽시간에 도시 전체가 어떠한 조작이나 가식 없이 고스란히 땅속에 묻힘으로써 고대 생활사 연구에 큰 획을 긋는 타임캡슐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식사를 하다가 식탁에 둘러앉은 채 그대로 최후를 맞이한 가족과 그 식당 오븐 안에서 반쯤 구워진 것으로 보이는 빵. 화산이 폭발했다는 소리를 듣고 허겁지겁 집을 나와 몸을 피하다가 재물이 아까워 다시 그것을 가지러 집안으로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보석을 두 손에 움켜진 채 굳어버린 남자. 아기를 감싸안고 죽어간 모성 등… 서기 79년 8월 24일 아침의 어느 순간을 간직했던 폼페이가 땅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풍요롭기만 했을 서기 79년 8월 어느 날- 당시 풍요로웠던 삶을 재현하려는 듯 어느 저택 정원의 포도 넝쿨이 풍성하다. 부유한 도시였던 폼페이는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산의 폭발과 함께 인류의 뇌리에서 사라진다.
풍요롭기만 했을 서기 79년 8월 어느 날- 당시 풍요로웠던 삶을 재현하려는 듯 어느 저택 정원의 포도 넝쿨이 풍성하다. 부유한 도시였던 폼페이는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산의 폭발과 함께 인류의 뇌리에서 사라진다.권기봉
근 1800년 동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가 이탈리아 반도가 통일되면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시작된 폼페이는 둘레가 약 3km에 이르는 타원형의 도시로, 도시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이 성벽을 따라 8개 정도의 문이 나 있고, 마차가 달릴 수 있을 만큼 널따란 길이 직선으로 도시 내부를 촘촘히 연결하고 있다. 도로를 반듯한 돌로 포장했음은 물론이다. 특히 도로 양옆으로는 인도가 있어 당시의 보행자를 대하는 대우가 오늘날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도로와 인도 사이에 배수구로 보이는 흔적들이 있고 길모퉁이에는 공동 수도로 보이는 시설들이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로마 시대의 공공시설 수준이 간단치 않았음을 직감할 수 있게 한다. 또한 폼페이 안에서 지금껏 발굴된 목욕탕만도 네 군데에 달하며, 원형 극장과 반원형 대극장도 발굴되어 관람객이 잠시 앉아 더위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

외부인 무단 출입 금지- 한 건물의 현관 바닥에 있는 개 모양의 모자이크 타일이다. 아무나 들어오지 말라는 뜻에서 현관 바닥에 이런 모자이크 타일을 만들어 놓은 것일까. 그 착상이 무섭다기보다는 애교스럽게 느껴진다.
외부인 무단 출입 금지- 한 건물의 현관 바닥에 있는 개 모양의 모자이크 타일이다. 아무나 들어오지 말라는 뜻에서 현관 바닥에 이런 모자이크 타일을 만들어 놓은 것일까. 그 착상이 무섭다기보다는 애교스럽게 느껴진다.권기봉
그러나 규모 못지 않게 폼페이가 주는 놀라움은 현대 이탈리아인들의 그 '느릿한 여유의 철학'이다. 인근 지역에서 일을 하던 농부들에 의해 수 차례 벽돌 조각 등이 발견되어 무언가가 지하에 있을 거란 예상을 하긴 했지만, 16세기 들어서야 소규모 발굴 작업이 시작된 후 1784년부터 본격적인 발굴 작업이 시작된 후, 아직까지 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발굴작업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하기야 로마 시내에도 아직 발굴 작업조차 착수하질 않아 그냥 천막으로 씌어 놓거나 철조망만 둘러쳐 놓은 곳이 적지 않긴 하지만, 이곳은 당시 로마인들의 생활사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가 아니던가.


그때 그 번영은 어디 가고…- 폼페이 유적 한 귀퉁이에 보관되어 있는 수많은 항아리들.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의 관문에 있어 농업과 상업이 발달했던 도시답게 당시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그때 그 번영은 어디 가고…- 폼페이 유적 한 귀퉁이에 보관되어 있는 수많은 항아리들.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의 관문에 있어 농업과 상업이 발달했던 도시답게 당시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권기봉
폼페이를 찾은 그날도 역시 폼페이 유적 한 켠에서 계속 발굴작업에 열중하는 조사원들과 대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더운 날씨였지만 인류 최고(最古)의 타임캡슐을 개봉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사명감 때문일까, 이들의 표정에서 피곤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나폴리 대학에서 나온 연구자들과 미국 미네소타에서 온 공동조사단이 발굴작업을 하고 있단다. 너무 광대한 지역이라 비용 문제도 있어 발굴 속도가 느릴 수도 있겠지만 완벽히 발굴을 하면 했지 날림으로 하지 않는다는 이들의 철학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이 순간 한국 고고학 사상 최대의 발견이라 할 공주 무령왕릉 발굴 조사를 단 하룻밤 새 끝마친 사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어느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도시를 완전무결하게 보전하는 방법으로, 도시를 화산재로 덮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맞는 말이다. 다만 한마디 덧붙인다면, "하나의 도시를 완전무결하게 보전하는 방법으로, 화산재로 덮인 도시를 발굴 준비가 될 때까지 파헤치지 않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우리의 현실을 떠올릴 때면 으레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베티의 집' 안에 있는 것으로, 남자의 성기로 물이 나오게 만들어진 수도꼭지(좌)와 '베티의 집' 안에 있는 벽화 중 하나(우). 남성 성기의 무게를 재고 있는 듯하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베티의 집' 안에 있는 것으로, 남자의 성기로 물이 나오게 만들어진 수도꼭지(좌)와 '베티의 집' 안에 있는 벽화 중 하나(우). 남성 성기의 무게를 재고 있는 듯하다.권기봉
'베티의 집' 침실 안에 그려진 벽화로 엄숙주의자들의 미움을 사 폼페이를 타락의 도시로 전락시키는 데 일조 했던 그림으로 보인다. 혹시 침실 구석에 이런 그림이 있는 지 살펴보세요. 뒷동산이 갑자기 화산으로 돌변해 폭발해 버릴 지 모르니.
'베티의 집' 침실 안에 그려진 벽화로 엄숙주의자들의 미움을 사 폼페이를 타락의 도시로 전락시키는 데 일조 했던 그림으로 보인다. 혹시 침실 구석에 이런 그림이 있는 지 살펴보세요. 뒷동산이 갑자기 화산으로 돌변해 폭발해 버릴 지 모르니.권기봉
한편 오랜 기간에 걸친 폼페이 발굴 유적을 보기 위해서는 이곳 폼페이 현장뿐만 아니라 나폴리 시내 중심에 있는 국립고고학박물관을 찾아가 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승리를 그린 벽화나 각종 동상, 타일화 등 많은 수의 유물들이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겨져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유적은 어디까지나 제 위치에 이어야 제 매력을 발산하기에 폐허가 된 폼페이의 골목을 걸으며 느끼는 깊은 우수가 먼저이리란 생각엔 변함이 없다. 올 가을엔 폼페이의 우수를 가슴으로 느껴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월간 'PC사랑'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월간 'PC사랑'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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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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