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어디인지라도 알 수 있다면

[서향만당(書香滿堂)1] 이순우의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관한 보고서, 하나>

등록 2002.09.05 14:49수정 2002.09.05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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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부도- 우리 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부도 전 흥법사 염거화상탑이다. 흥법사에서 가져온 것으로 믿고는 있지만 그 기원이 확실하지 않은데, 지은이는 조사를 거쳐 이 부도가 경기도 가평군 북면 화악리의 종현암터에서 온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부도- 우리 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부도 전 흥법사 염거화상탑이다. 흥법사에서 가져온 것으로 믿고는 있지만 그 기원이 확실하지 않은데, 지은이는 조사를 거쳐 이 부도가 경기도 가평군 북면 화악리의 종현암터에서 온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 권기봉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는 여전히 서럽다.…하지만 정작 이만한 정도의 서러움조차도 제 돌아갈 곳마저 알지 못하는 문화재의 그것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더욱 기구한 것은 그저 제자리를 알지 못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리나 숫제 잘못된 이름을 달고 전혀 엉뚱한 존재로 둔갑한 경우도 드물지 않다는 사실이다."(이순우)

추석이 눈앞이다. 일터도 잠시 쉬고 대부분의 상가가 철시하는 민족의 명절 추석. 조만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그 동안 찾지 못했던 고향에 가기 위해 너도나도 고속도로로 몰려들 것이다.


모두가 들떠있을 고속도로이겠지만 우리 주위에는 아쉽게도 고향을 찾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이들이 있다. 어릴 적부터 부모와 함께 살 수 없던 환경이거나, 태어나 자란 고향이 어딘지 알고 있더라도 댐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수몰되어 사라져 버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향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것이 비단 우리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우리들과 알게 모르게 같은 하늘 아래 아옹다옹 살아온 문화재 중에도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것들이 있다.

a 수장품 카드의 원초적 오류- 국립중앙박물관 지하 1층 불교조각실에 있는 전(傳)보원사터 철불로, 지은이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중인 수장품 카드에 원초적 오류가 있어 보원사터 철불로 잘못 알려져 있으며, 원래 경기고 포천 백운동일 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수장품 카드의 원초적 오류- 국립중앙박물관 지하 1층 불교조각실에 있는 전(傳)보원사터 철불로, 지은이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중인 수장품 카드에 원초적 오류가 있어 보원사터 철불로 잘못 알려져 있으며, 원래 경기고 포천 백운동일 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 권기봉

a 정처 없이 떠돈 '분수대'- 1912년에 일본인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15년 반송된 역사를 갖고 있는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은, 경복궁 건춘문 앞 동궁이 있던 자리인 총독부 박물관 앞 분수대의 중앙에 놓여 물을 뿜는 데 쓰였다. 그러나 한때 일제의 '분수대'로 쓰였던 이 부도의 반출 및 반환 경로 등에 대해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정처 없이 떠돈 '분수대'- 1912년에 일본인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15년 반송된 역사를 갖고 있는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은, 경복궁 건춘문 앞 동궁이 있던 자리인 총독부 박물관 앞 분수대의 중앙에 놓여 물을 뿜는 데 쓰였다. 그러나 한때 일제의 '분수대'로 쓰였던 이 부도의 반출 및 반환 경로 등에 대해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 권기봉

경복궁과 국립중앙박물관 사이의 야외전시구역에는 한때 정처 없이 떠돌던 우리 문화재 여러 개가 그저 쓸쓸히 사람들을 맞고 있다.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고 있던 1915년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始政五年記念朝鮮物産共進會)장을 장식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부도와 부도탑비, 석등이 대다수로, 원래 있던 절이 이미 폐사지가 되었거나 아예 이리로 옮겨올 당시부터 폐사지였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이 들 중 상당수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르거나 이름조차도 틀리게 붙여진 것이 있어 씁쓸함을 더해준다. 그런데 이렇게 고향이 없거나 이름조차도 잘못 지어진 유물들에게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문화재들과는 하등 관계가 없을 것 같은 한 경제전문가가 염거화상탑과 보원사터 철불, 법천사터 지광국사현묘탑 등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구역의 대표적인 유물들에 대한 조사보고서 형태의 책을 낸 것이다.

이미 다수의 책을 낸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 경제 분야에 관련되었던 책을 썼던 '특이한' 경력의 지은이 이순우가 이 책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관한 보고서, 하나>에서 주장하는 것 중 하나는, 그 동안 흔히 흥법사터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 염거화상탑의 원래 위치가 경기도 가평군 북면 화악리의 종현암터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억측에서 나온 주장이 아니라 지은이가 직접 <조선고적조사약보고>나 <조선고적도보> 등의 일차 사료를 두루 섭렵하고, 직접 폐사지를 답사해 마을 주민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도달한 결론이라는 점이다.

a 이순우/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관한 보고서, 하나/하늘재/2002

이순우/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관한 보고서, 하나/하늘재/2002 ⓒ 권기봉

또한 지은이는 국립중앙박물관 지하 1층 불교조각실에 전시되어 있는 전(傳)보원사터 철불의 경우, 그 '고향'이 이미 사람들에게 알려진 대로 충남 운산면의 보원사터가 아니라 경기도 포천 백운동일지도 모른다는 색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특히 이런 주장을 펴는 과정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작성·보관해오는 수장품카드 자체가 갖는 오류를 지적하고 있어, 광복 이후 아직도 문화재 분석 작업이 완전치 못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한편 그 장식이 특히 현란한 법천사터 지광국사현묘탑이 법천사터로부터 서울로 올라와 어떤 경로를 통해 한반도 내에서 '흘러 다녔고', 심지어 1912년의 일본 반출 및 국내 반환에 관련된 새로운 사실들을 밝히고 있다.

경제전문가가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문화재에 대한 책을 썼기에 일견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있겠으나, 문화재를 바라보는 안목이나 그 조사의 치밀함을 보면 그리 쉽게 무시할 성격이 아닌 듯싶다. 특히 책제목에 '~하나'라는 말을 첨가한 것을 볼 때 앞으로 지은이의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관한 조사 작업은 계속될 것으로 보여, 앞으로의 성과가 상당히 기대된다.

a 황량한 폐사지- 충남 보원사터는 현재 폐사지로 황량함만이 느껴질 뿐이다. 이미 사람이 떠나간 폐사지가 철불에 얽힌 비밀을 풀어주지는 못할 것이란 데 씁쓸함이 더하다.

황량한 폐사지- 충남 보원사터는 현재 폐사지로 황량함만이 느껴질 뿐이다. 이미 사람이 떠나간 폐사지가 철불에 얽힌 비밀을 풀어주지는 못할 것이란 데 씁쓸함이 더하다. ⓒ 권기봉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www.SNUnow.com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www.SNUnow.com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파두

이영희 지음,
하늘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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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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