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으로 참개구리 낚아보셨나요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6>호박꽃

등록 2002.09.09 16:42수정 2002.09.09 19:5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호박넝쿨과 호박꽃

호박넝쿨과 호박꽃 ⓒ 이종찬

그래. 담장을 타고 오르며 여기저기 애호박 몇 개 자식처럼 흘려놓고 마구 피어나는 저 노오란 호박꽃을 보면 생각난다. 무지무지하게 먹을 게 없었던 어린 날, 노오란 현기증 속에 피어나던 노오란 호박꽃을 미끼로 삼아 연이어 낚아올리던 그 참개구리들이 생각난다.


그래. 그 당시에는 낚시바늘이나 낚시줄이 그리도 귀했다. 아니, 귀했다기보다도 가게에 가면 흔하게 널린 게 낚시도구들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살던 곳은 인근에 남천이라는 강이 흐르고 있었고, 불과 몇 킬로 남짓한 곳에 바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도구를 살 만한 돈, 그 놈의 웬수 같은 그 돈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대부분 어머니의 실타레에서 실을 감아와 나무막대기에 실을 길게 매달고, 미끼를 끼울 실 끝자락에서 손 두 뼘 정도 되는 자리에 매끈매끈한 조약돌을 매달았다. 말하자면 조약돌이 실의 중심을 잡아주는 납덩이 역할을 했고, 나무막대기는 일종의 낚시대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실 끝자락에는 집집마다 담장에 지천으로 널려 피어난 호박꽃을 적당히 주물러 매달았다. 그래, 그렇게 하면 우리들의 개구리 낚시 채비는 모두 끝나는 셈이었다. 아, 참! 미끼인 호박꽃은 몇 송이 따서 손으로 잘 주물러, 흔하디 흔한 밀가루 포대를 찢어 그곳에 싸갔었지.

개구리 낚시는 주로 마을 가까운 개울가 풀숲 근처나 조그만 웅덩이를 낀 논둑 근처 물길이 포인트였다. 그곳에는 뒷다리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씨알 굵은 참개구리들이 참 많았다. 우리들의 개구리 낚시라는 것은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 낚시대를 드리우고 상하로 살살 흔들고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랬다. 개구리란 녀석들도 노오란 색을, 달콤한 내음이 나는 그 호박꽃을 몹시 좋아했는지도 몰랐다. 잠시 10여초 그렇게 흔들고 있으면 이내 씨알 굵은 참개구리가 몇 마리 팔짝거리며 뛰어나와 그 노오란 호박꽃을 덥썩 무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는 평소 익숙한 솜씨대로 잽싸게 낚아채면, 그게 월척이었다.

그때 느끼는 그 손맛, 이건 손끝이 찌르르한 정도가 아니다. 묵직한 느낌과 동시에 파다닥거리는 참개구리의 움직임이 손끝에서 팔끝까지 전해져 올라오는 그 떨림 맛, 마치 온몸이 감전되는 듯한 그 손맛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리라. 아마 물고기를 낚아올리는 낚시꾼들은 몸 한쪽이 덜덜덜 떨리는 그 기찬 손맛을 꿈속에서도 느끼지 못하리라.


a 호박꽃

호박꽃 ⓒ 이종찬

그렇게 순식간에 서너 마리 낚고 나면 아무도 더 이상 개구리를 낚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만 해도 그날 우리들의 간식으로서는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개구리 낚시. 혹자는 너무 잔인한 짓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 늘 허기가 졌고 먹을 것이 없었던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 참개구리의 뒷다리는 유일한 영양식이었다.

참개구리 요리는 간단하다. 우선 낚은 개구리는 바닥에 떼기를 쳐서 일단 기절을 시키거나 죽인다.(개구리가 살아 있을 때 개구리 뒷다리를 자르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 후 개구리 뒷다리를 일단 자른 뒤, 개구리 몸통은 땅 속에 고이 잘 묻어준다. 그리고 개구리 뒷다리 껍질을 벗겨 냇물에 깨끗히 씻어 먹기 좋게 장만하여, 불에 구으면 요리 끄읕.


그리고 남은 일은 얼굴 곳곳에 시커면 숯을 묻혀가며 개구리 뒷다리를 뜯어 먹는 일뿐이었다. 그래, 마치 일 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하는 그 허연 닭다리를 떠올리며, 우리는 그렇게 개구리 뒷다리를 맛나게 뜯어 먹었는지도 몰랐다. 그래, 어쩌면 지천에 널린 그 참개구리들이 있었기에 우리들은 모두 잔병 한번 치르지 않고 이렇게 건강하게 자랐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담장 곳곳에 자식 같은 호박을 매달고 저렇게 피어나고 있는 호박꽃을 바라보면 그 참개구리떼들의 요란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울음소리를 타고, 코끝을 고소하게 적시며 잘 구워지던 그 참개구리의 통통한 뒷다리가 자꾸 떠오른다.

아, 우리들의 고픈 배를 채워주었던 참개구리들이여! 우리들의 건강을, 보약보다 더 단단하게 챙겨주었던 참개구리들이여! 그대들의 영혼에 때늦은 참회를, 그대들의 영혼에 때늦은 눈물 한방울을 보낸다. 부디 다시는 개구리로 태어나지 마시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