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들어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오늘은 유난히 포근한 날씨다. 봄방학이라고 아침 먹은 뒤에도 방바닥에 누워 빈둥거리는데, 아내가 들어와 옆에 앉는다.
"여보, 오늘 외식이나 합시다."
"갑자기 왜?"
"그냥요. 오장동 냉면이 먹고 싶어졌어요."
"냉면, 거 좋지."
나도 입가에 침이 괸다. 매콤한 회냉면을 먹고, 뜨거운 육수를 훌훌 마시고 싶다.
"그럼 애들 준비시킬게요."
그냥 시간 되어 가면 될 걸, 아내는 외식이 마치 대단한 행사라도 되는 듯 아이들을 챙기러 건넌방으로 간다. 나는 다시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아침 신문을 뒤적인다. 아무래도 오늘도 무료한 하루가 될 것 같다.
'가만있자. 오늘이 인사 발령 나는 날이라던데, 이 선생하고 임 선생이 이번에 옮길 차례지. 또 누가 전근을 가나?' 나는 머리 속으로 올해 이동할 선생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새로 올 선생들에 대한 기대감도 슬쩍 끼워 넣어 본다.
다른 직장들은 1월이 일년의 시작이지만, 학교는 3월이 일년의 시작이고, 다음해 2월이 일년의 끝이다. 그래서인지 봄방학인 지금이 마치 연말같이 느껴진다.
이미 다 본 신문을 구석구석 외울 듯이 다시 들여다보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나는 전화 받는 것조차 귀찮아 돌아눕는다. 한없이 게을러지는 느낌이다. 아이들 방에 있던 아내가 거실로 나와 전화를 받더니 내게 소리친다. "여보, 전화 받아요. 학교래요."
내게 전화를 건네주며, 아내는 낮게 "또 술 마시러 나가는 거 아니죠" 한다. 점심 냉면 약속이 취소될까봐 하는 말이리라. 나도 그런 마음을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수화기를 든다.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수신 상태가 안 좋은지, 조금 지직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저편에서 소리가 흘러나온다. "선생님, 저 희정인데요."
희정이는 학교 사환 아이의 이름이다. 갸름한 얼굴에 긴 머리가 잘 어울리는, 말수도 적고 차분한 아이다. 교무부장인 말뚝이가 아무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소리를 지르고 윽박질러도 그저 큰 눈에 눈물만 그렁그렁할 뿐, 아무 대거리 없이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착한 아이다. 야간 전문대에 다니며, 장래 소설가의 꿈을 키우는 학생이기도 하다.
"응, 희정이가 우리 집에 웬일이야. 전화를 다 하고." 내가 반갑가워하자 희정이도 평소와 다르게 호호 하며 웃더니 말을 잇는다. "지금 학교로 나오시래요." "응? 학교? 왜?" 나는 갑작스런 출근 요구에 어리둥절해 묻는다. "고등학교로 전보 발령 났다는데요."
그제야 나는 다시 오늘이 발령 나는 날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리고 지난 가을 무렵, 고등학교 내신을 냈다는 것도 기억해 낸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덜컥 발령이 났다는 거다. "그... 그래. 알았어. 지금 갈게. 고마워."
나는 전화를 끊고, 아내에게 냉면 약속을 취소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야기한다. "할 수 없죠. 그럼 다음에 당신 고등학교 발령 기념 냉면 회식으로 대신하는 수 밖에요." 그러면서도 아내는 내심 전보 발령이 그리 싫지 않은 표정이다.
얼른 챙겨 입고, 학교로 가니 정기 발령 대상자와 전보 발령을 받은 몇 몇 선생이 이미 교장실에 모여 있다.
"이거 축하합니다, 맹 선생님."
"축하해요. 영재고등학교랍니다."
교장과 교감이 번갈아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한다. 시원섭섭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뭔 발령이 이렇게 갑자기 난답니까?" 나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손을 맞잡는다.
서로 어느 학교냐느니, 그 학교 분위기가 어떻다느니, 이야기를 주고 받다, 차를 한 잔씩 나누어 마시고, 모두들 새로 발령 받은 학교로 착임계를 쓰러 나선다. 나도 내 자리로 돌아가 챙겨야 할 짐들을 점검한다. 교무실도 한바퀴 휘둘러본다. 이상하게 낯이 익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일년 남짓 몸과 마음을 담가왔던 공간이어서 낯이 익은 것일 테고, 이제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낯이 설기도 한 것이리라.
내일쯤 다시 와서 짐을 챙겨가기로 하고, 나는 서무실에서 준 인사 이동에 필요한 서류가 담겨있는 봉투만 들고 천천히 교무실을 나선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 쪽으로 향하는데 한줄기 바람이 나를 향해 마구 달려온다. 아직 겨울의 자취가 남아있어 제법 매운 바람이다. 그러나 아무리 겨울 바람이라도 이제는 머지 않아 찾아올 봄바람에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탓인지, 한겨울의 그것처럼 시리지는 않다.
나는 천천히 바람이 몰려오는 운동장을 돌아다본다. 교사 앞쪽으로 겨울 나무들이 아직도 앙상한 가지를 한 채 오들오들 떨고 있다. 꽃사과나무도 수수꽃다리도 벽오동나무도, 국기 게양대에 모여있는 무궁화도, 운동장 귀퉁이의 벚나무들도, 모두 아직은 춥다 춥다 소리치고 있는 것 같다. 운동장 건너편 수영장 쪽 은행나무들은 제 가지를 하늘로 곧추 뻗은 채 찬 바람을 견뎌내고 있다.
모든 풍경들이 흑백이다. 나는 그런 흑백의 풍경들을 바라보며, 이 학교에 부임하던 그 날을 떠올린다. 낡은 건물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길게 누워있는 모습이며, 그 겉을 엷은 푸른 색으로 칠한 탓인지 아직 남아있는 겨울 끝이 더 을씨년스러워 보이던 곳. 먼지가 자욱하게 들어붙어 있는 현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복도가 마치 커다란 고래 입 속같이 이어져 있었고, 복도의 끝 부분에 자리잡은 교무실은 방이 아니라 그냥 트여진 공간처럼 휑뎅그레 했다.
너무 넓어서 더 썰렁해 보이던 교무실, 난로 가에 둘러앉아 바둑을 두던 몇몇 선생들과, 그 곁에서 타들어가던 구식 난로, 책걸상 부서진 것들을 툭툭 난로에 던져 넣던 선생의 모습까지 모두가 흑백 사진의 풍경처럼 가라앉아 보였다.
그리고 다시 한 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또 다른 흑백의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이란 늘 우리 앞에 반복의 얼굴을 한 채 맴돌고 있는 것인지도. 그 반복을 망각이라는 존재가 가로막고 있어 새롭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다시 한 번 학교들 휘둘러보고 걸음을 옮긴다. 머지 않아 저 나무들에 꽃이 피고 잎이 돋을 것이다. 맨 먼저 잡초들이 화단에 다투어 돋아나고, 그 곁에 제비꽃이며 민들레 따위가 살포시 얼굴을 들것이다. 수수꽃다리가 향기로운 내음을 피워올리고, 벚꽃이 우수수 떨어지고, 벽오동 잎이 돋을 때 능소화도 제 잎새를 세상을 향해 내밀리라.
한여름 장한 빗줄기와 따가운 햇살, 가을날의 잔잔한 노을과 그 속에서 잎새를 물들일 은행나무들, 겨울의 매운 바람과 눈보라가 다시 또 한 해를 장식할 것이다. 그 자연의 순환과 변화 속에서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서고, 이 자리에서 삼 년을 자란 아이들은 또 다른 세계를 향해 걸음을 옮기리라.
나는 낡아 칠이 벗겨진 교문을 나서며 학교 앞을 가로질러 세워지는 내부순환 고속도로를 쳐다본다. 거기 별반 진척된 것 같지 않은 길이 허공에 길게 매달려 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아이들이 제느강이라고 부르는 정릉천이 메마른 몸뚱이로 누워 있다.
북한산 골짜기에서 시작해서, 정릉 골짜기를 거쳐오며 숱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오던 개울도 지금은 깊이 잠든 겨울이다. 그리고 그 개울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학교도 아이들 하나 없는, 지금은 봄방학 중이다. 그리고 며칠 뒤면 봄물이 저 개울을 졸졸 흘러 내려오듯, 새로운 아이들로 학교가 북적거릴 것이다.
나는 아쉬운 듯, 그러나 한편으로는 담담한 듯, 천천히 학교를 빠져 나와 지하철로 향한다. 낡은 단층 건물의 학교 앞 문구점과 슈퍼와 막소주집, 그 맞은편의 아득한 포플러 나무들이 여전히 무채색의 풍경을 한 채 거기 그대로 시간이 멈춘 것처럼 서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연재를 마치며
그 집에서의 기억
나는 지금까지 그 집에서 육 년을 살았다. 처음 삼 년은 귀밑머리 검어지고, 솜털 보송보송한 열 네 살부터 열 여섯 살까지였고, 그 다음 삼 년은 서른 일곱에서 서른 아홉 살 때였다.
첫 삼 년은 세상 물정 모르고 무작정 그 집에서 뛰어 놀기 좋아하던 시기였다. 그때 비로소 나는 성(性)에 눈뜨기도 했고, 친구들과 날 저물도록 그 집 마당에서 공을 차기도 했고, 때로는 그 시기의 삶의 전부처럼 인정받는 성적 때문에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다른 어느 시기보다도 매인 데 없이 행복한 시절이었다.
내가 서른 후반에 다시 살게 된 그 집은 십대 때의 그 집이었지만 이미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옛날보다 집은 더 커졌고, 마당은 더 넓어졌다. 그러나 더 낡아버린 집도 있었고, 아예 그 집 마당을 없애버리겠다고 말하는 주인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이제는 더 이상 성에 대한 호기심도 없고, 늦도록 남아 공을 차지도 않았으며, 십대처럼 까까머리가 아니라 군데군데 흰 머리가 돋아나는 중년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생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도 없고, 가슴 뛰는 열정도 없고, 빛나는 청춘도 아닌 나이의 나는 그 집의 수많은 아이들을 감독하고 많은 일을 지시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그 집은 바로 대한민국 중학교다. 첫 삼 년은 학생으로 그 집에 산 시절이고, 다음 삼 년은 교사로서 산 시절이다. 학생일 때는 잘 보이지 않던 그 집의 구석구석 살림살이가 교사가 되자 확대경처럼 잘 드러나 보였다.
이 글은 내가 교사로 살았던 바로 그 집인, 어느 중학교의 이야기다. 물론 이 글은 소설이다. 소설이라는 뜻은 상당한 부분 허구가 섞여 있다는 의미다. 그러니 어느 한 학교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학교의 이런 저런 일들을 한 학교라는 공간 속에 뭉뚱그려 엮어본 것이다. 그러나 허구라고 해서 진실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나는 이 글에서 대한민국 사람이면 대부분이 삼 년을 살게 되는 그 집에 조금 더 살아본 사람으로서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 좀 더 어른스러워진 사람의 눈으로 그 집을 기록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 기록을 통해 다시는 그 집에 살지 않게 된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그 집에 대한 추억을 되살려주고 싶었고, 아직 그 집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사는 집의 속내를, 그리고 그 집에서 아이들과 호흡하며 살아가는 선생님들과는 교직이라는 자리, 교육이라는 것의 의미를 돌이켜보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이제 그 집을 떠난 지 몇 년이 되었다. 그 사이 여러 면에서 변화가 생겼다. 교육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정년이 단축되고, 명예 퇴직을 하기도 하고, 교육 투자를 늘리겠다는 말도 있다. 교실 붕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도 한다. 이 글에서 썼던 배경도 많이 달라졌다. 구식의 난로나 낡은 선풍기는 없어지고, 난방기와 에어컨이 등장했다. 그러나 학교가 지니고 있던 문제가 그런 변화에 묻혀 함께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문제가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까지 제시되지만, 그러나 한 번 무너진 학교는 잘 일어서지 못한다. 이 몇 년 사이에 겉으로 보기에는 많은 점이 달라졌지만, 그 속내는 여전히 이 글이 다루고 있는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썼다.
소설이지만, 이 글은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진 서사적 틀을 갖추지는 않았다. 부분 부분이 독립된 이야기이다. 그러나 학교라는 틀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글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학교는 해마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곳이다. 그러니 학교는 거대한 서사의 무대가 아니라 단순한 일상의 무대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내면을 살펴보면 아주 작은 이야기들이 서사적인 꼴을 갖추고 널려 있다. 각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그려낸 것은 이런 학교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런 의도와 상관없이 그저 이 글을 소설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써나간 학교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학교에서의 좋은 날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에게는 신나게 활동하는 공간으로, 선생님들에게는 활기차게 생활하는 공간으로, 학부모들에게는 믿음의 공간으로 자리잡는 날이 아닐까? 그런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 땅의 교육을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읽기 위해 이 글을 썼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마이뉴스>를 통해 변변치 않은 글을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다음 기회에 더 좋은 글로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드리며....(꾸벅!)
2002. 가을 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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