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사에서 출판한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김영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다소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나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길 위에서 오버랩 되는 그녀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 또한 편협하지 않은, 그녀의 종교관 덕분에 책은 한층 여러 종교의 독자들에게 열려있다.
누구든, 그 사람의 종교나 국적, 그리고 나이에 상관없이 “삶에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은 누구나”여기에 와서 묵을 수 있다고 아까 부원장 수녀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 나는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삶에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삶에 의미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의미 따위에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의미를 잃어버릴 이유가 없을 테니까
공지영이 버린 하나님
성경엔 “하나님이 유일하다”고 쓰여있다. 하지만 이 말은 절반만 맞다. 하나님은 분명 한 분이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그들만의 하나님 상(象)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의 하나님은 ‘보수적인 하나님’이고, 어떤 사람들의 하나님은 ‘진보적인 하나님’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다 성경구절을 그 증거로 제시한다. 그들 모두의 하나님은 옳다. 그걸 인정하는 데서부터 진정한 믿음은 시작될 것이다.
공지영은 18년 전 하나님을 버렸다. 정확히 그녀 나이 스무 살 때였다. 당시 그녀의 하나님은 현실과 무관해 보였다. 시위를 하다가 도망친 명동성당에서 그녀는 신축헌금을 구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젊은이들은 피 흘리며 싸우고 있는데… 그녀는 화가 났다. 가난하고 병든, 불편한 몸을 가진 사람들을 볼 때, 그녀는 하나님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 결국 그녀는 유치장에 갇혀 읽게 된 성경책을 집어던지며 하나님을 버렸다. 그리고 18년 동안 하나님을 떠나 살았다.
| | | 공지영 약력 | | | |
| | ▲ 공지영 | | |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단편 <동트는 새벽>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 장편소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봉순이 언니> 등이 있다. / 김태우 | | | | |
젊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형벌이라고 나는 아직도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원칙과,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우리가 택할 길은 몇 안 된다는 현실과의 괴리가 괴로운 것이다… “하나님 품에 안기는 날까지 우리는 방황하리라” 라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노트에 적어 가지고 다니던 내 사춘기가 떠올랐다. 아니 한술 더 떠 괴테는 “모든 인간은 그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파우스트>에 쓰기도 했다
그녀가 다시 찾은 하나님
공지영은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스스로를 철창 안에 가두고 수도원 안에서만 생활하는 봉쇄 수도원의 수녀님도 만나고, 유학을 왔다가 수녀가 된 한국 여자도 만나고, 정해진 신앙의 코스를 순순히 따르다가 거짓된 자신을 발견하는 신자도 만나고…. 또 길 위의 사람들을 하나님이 보내주셨다고 믿는다. 그리고 “어쩌면 이 세상이 거대한 수도원이며 길 위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수도자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수도원 여행을 떠나기 전 그녀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다. 세상은 여태껏 그대로인데… 그녀는 무엇이 달라져서 귀환했을까.
20대의 나는 아는 게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대가 되자 20대에 알던 모든 것이 모르는 것을 변해버렸다. 처음부터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알기는 안 것이 모르는 것으로 변해버리는 상황은 참을 수 없었다. ...(중략)... 그렇게 가없이 손을 내밀고 마음을 내밀고, 하지만 알 것 같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가 알 것 같았던 그것은 환영처럼 사라졌다...(중략)... 하지만 이대로 엎어져 있을 순 없다고,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다고, 내가 왜 태어나 이렇게 밖에는 살 수 없는지 그걸 밝히고 싶다고… 그렇게 다시 일어날 때마다 상처자국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면서, 가면 위에 가면이 덧씌워지고, 그 위에 다시 가면을 씌우고, 그리하여 나조차도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져 버렸다. 그렇게 떠돌다가 나는 엎어져 버린 것이었다
신과 인간의 관계
이 책을 덮으며 세 가지 문구가 뇌리에 각인되었다. 첫 번째는 “삶이 무엇인지 느껴보기도 전에 35살이 넘어버렸다”는 미국의 골프 영웅 할 서튼의 말이다. 공지영은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을 표했다. 나는 아직 서른 다섯 살이 되지도 않았는데…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두 번째로 <일전에 어떤 책을 읽으니 예수님이 그러셨단다, “너희들 안에 이미 천국이 있다” 그런데 그 말을 히브리어로 자세한 뉘앙스를 들여다보면 너희들 안에가 아니라 너희들 ‘사이에’ 천국이 있다는 말이란다. 그러니 관계, 아닐까.>, 이 문단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천국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공지영이 말해 듯이 우리의 천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것이다. 아무리 유태인이라고 해도, 성전(聖戰)이라고 떠들어대도 천국은 사람들 사이에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 졌다.
그리고 세 번째 내게 와닿은 부분을 읽으며 공지영처럼 신과 세상과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예수님도 사생아가 아니신가… 일전에 어떤 유명한 전직 교수이자 동양학 강사가 텔레비전에서 이 말을 했다가 사람들의 분노를 샀지만 사실 세속적 눈으로 볼 때 예수님이 사생아이시므로 나는 기독교가 좋다. …(중략)… 이렇게 비천하고 낮고 나약하고 겁 많은 젊은이가 인류를 구원할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기독교는 얼마나 재미없는 종교였을까?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
공지영 지음,
분도출판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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