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들! '오징어볶음' 당했소?"

<베이징 리포트> '싼샤'(三下)로 읽는 중국사회

등록 2002.09.25 23:02수정 2002.09.2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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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6일자 <중국청년보>에서는 지난해 중국에서 가장 유행했던 '10대 유행어'를 선정해서 발표했다. 그중 몇 가지를 예로 들면 '입세'(入世,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뜻함), 'WTO', '반테러', '9.11'등과 같은 것이 포함되었다. 젊은 네티즌을 중심으로 조사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이 세계적인 정세흐름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들이었다.

이와는 달리 중국의 어떤 학자가 조사한, 지난 20년간(1979-1999) 중국에서 가장 유행한 신조어에 대한 결과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풍부하다. 그 안에는 '토플'(TOEFL), '완위안후'(萬元戶, 한 달수입이 인민폐 만위안이라는 뜻. 부자가 된 사람을 비유), '샤하이'(下海. 개혁개방 정책 이후, 장사나 개인사업 등 중국인들 사이에 유행한 돈벌이 현상을 비유), '샤강'(下崗, 국유기업 개혁 등으로 인한 대량의 정리해고, 실업 등을 지칭), '샹왕'(上网, 인터넷), '가라오케', '시장경제'등 일반 서민들의 생활뿐만 아니라 중국 사회의 변화과정을 짐작할수 있는 유행어들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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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의 '샤팡'의 시대에서는 모두가 다 평등하고자 했던 '동지'의 이념이 있었다. 사진은 베이징의 모 기념품 가게에 전시된 마오관련 상품들. ⓒ 박현숙

이와같이 개혁개방 이후 새롭게 나타난 많은 유행어들 중에서 중국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엿볼수 있는, 미시적이면서도 거시적인 세기의 단어를 꼽으라고 한다면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샤'(下)로 시작하는 유행어가 아닐까 싶다. 흔히 '아래 하'자로 쓰이는 중국식 발음 '샤'는 마오시대부터 덩샤오핑, 장쩌민 3세대에 걸쳐 변화하는 중국사회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행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중국인들 사이에서 퍼져가고 있는 농담같은 이야기도 바로 이 '샤'와 관련된 것이다. 예를들면, "우리에게 마오는 샤팡을, 덩샤오핑은 샤하이를, 장쩌민은 샤강을 주었네"라는 식의 '싼샤(三下)의 사회'를 풍자하는 민가도 나올 정도다.

주로 싼샤시대의 부정적인 측면을 풍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속에는 중국의 한시대를 지배했던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면들이 투영되고 있고 중국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읽어낼 수 있는 풍부한 상상의 근원들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샤팡(下放)의 시대 - "우리는 모두 동지요"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사회를 반영하는 중요한 시대적 용어들을 꼽으라고 한다면 '인민공사'라든지 '계획경제', '딴웨이'(單位, 회사나 학교등 개인이 소속되었던 일터를 중심으로 한 가장 작은 정치사회적 단위)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회경제 시스템을 압축하고 있는 과거의 유행어는 '철밥그릇'이었다. 이 시대의 중국인들은 졸업 후의 취직걱정이나 해고의 걱정없이 그저 국가가 알아서 '안배'해주는 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투철한 '계급적 공헌'만 하면 그뿐이었다.

'샤팡'(下放, 문화혁명 시절 지식인등을 농촌으로 내려보내 직접 노동을 체험하게 한 일)의 시대로 풍자되는 마오쩌뚱 시대의 특징은 농민은 '인민공사', 도시인은 '딴웨이'를 통해 개인의 모든 공적생활이 계획되고 통제되었던 철저한 계획제의 사회였다.

따라서 인민공사나 딴웨이는 한 개인에게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주는 '철밥그릇'이었다. 이러한 인민공사나 딴웨이의 철밥그릇 사회를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동지'적 사회관계의 실현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마오의 무계급 사회에 대한 열망이 인민공사나 딴웨이의 구상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문화혁명 시절, 학생이나 지식인들을 농촌으로 내려보내 노동을 통한 정신개조를 하고자했던 마오의 샤팡운동도 애초에는 이러한 무계급 사회에 대한 유토피아적 열망이 담긴 것이었다.

신중국 건립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기본적인 사회주의적 개조가 끝난 이후, 인민들 사이에 나타난 새로운 변화 중의 하나도 바로 이러한 무계급적 호칭관계이다. 그것은 먼저 과거의 계급적 호칭관계를 일원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동지'의 유행이었다.

자발적인 유행이라기보다는 위로부터 강요된 측면도 있지만, 당시 중국인들은 관료든 사장이든, 노동자든 모두가 다 '동지'로 불려졌다. '노동자 동지', '군인동지', '의사동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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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의 '샤하이'시대는 모두가 다 '라오반'(사장)이 되기는 꿈꾸는 돈벌이 경쟁의 사회였다. 사진은 중국 버스안. ⓒ 박현숙

<중국청년보>의 기록에 의하면, 심지어는 부모자식간, 친척간에도 '어머니, 아버지 동지', '이모부 동지'라는 호칭을 사용했다고 한다. 도가 조금 지나쳤다 싶기도 하지만, 마오 통치하의 신중국정부는 개인들간의 호칭에서부터 이렇게 철저한 '계급타파'를 실현하고자 했다.

문혁때 농촌으로 하방을 당했던 학생이나 지식인들도 바로 노동자 농민 '동지'로의 완전한 개조를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마오는 '동지'의 관계가 구현되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호칭과 관련된 또 한 가지 재미 있는 현상은 부부간에 상대방을 지칭하는 호칭도 하나로 통합되었다는 것. 예전에는 아내가 남편을 '셴셩'(先生)이나 '라오공'(老公) 등으로, 남편은 아내를 '타이타이'(太太)나 '라오포'(老姿) 등으로 불렀지만 신중국 건립 이후에는 상대방 모두 '아이런'(愛人)이라는 하나의 호칭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부부간의 봉건적인 호칭 등급도 없어져야 한다는 발상이었다. '아이런'이라는 호칭은 지금도 중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마오시대의 '샤팡' 사회에서는 이렇게 절대적인 평등을 지향하는 '동지의 이념'이 담겨 있었다. 때문에 샤팡으로 인해 지식인과 학생들이 지식축적 및 자아발전의 한세대를 잃어버리고 오히려 극단적인 동지의 이념과 혁명정신의 남용으로 인해 서로간에 많은 상흔들을 남기기는 했으나 어쨌든, 그 속에는 모두가 평등하고자 했던 시대정신이 녹아 있었다.

샤팡의 사회에서 덩샤오핑의 샤하이 시대로 넘어가면서 나타난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러한 호칭관계이다. 어느덧 많은 '동지'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다시 '셴셩'(선생)과 '샤오지에'(아가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혁개방의 바람과 함께 'Mr'. 'Miss' 등과 같은 서구식 호칭법이 유행하게 되면서 동지는 이제 촌스러운 호칭이 되고 만 것이다.

샤하이(下海)의 시대 - "먼저 부자가 되라"

외국인들이 배우는 중국어 교재에 실려 있는 이야기 하나. 어떤 식당에서 대학교때 동창이었던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각기 다른 손님들과 식사를 하러온 두 동창은 졸업후 오랫만에 만났던지라 잠시 반가운 인사를 나누게 된다.

그 중 한 명이 같이 온 외국인 친구에게 자신의 대학동창을 인사시키자, 그 친구가 명함을 꺼내 그 외국인 손님에게 건넨다. 그의 명함에는 모컴퓨터 회사의 사장이라는 직함이 박혀 있었다. 그 외국인은 그렇게 젊은 나이에 사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다는 것이 다소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그 외국인과 같이온 친구가 농담삼아 이렇게 말한다.

"뭐 이상할 거 하나도 없어요. 지금 중국에는 회사도 많고 사장은 특히 더 많아요. 이런 말 못들어 봤어요? 하늘에서 돌을 떨어뜨렸는데 지나가는 행인 세 명이 그 돌에 맞았대요. 그런데 그 중 두 명이 사장이고 나머지 한 명은 부사장이었대요. 하하하."

이해를 할 듯 말 듯한 그 외국인 친구를 위해 젊은 '사장'이 다음과 같이 친절한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에 학교에서는 (국유)기관에 일자리를 배치해주었지만, 거기서는 하루종일 할 일도 별로 없었고 돈도 얼마 못 벌었지요. 그래서 당시 이를 악물고 친구 몇 명과 같이 '샤하이'를 했어요. 철밥그릇을 버리고 '상업의 바다'로 뛰어든 거죠. 샤하이는 한 사람의 능력을 시험하는 데는 아주 좋은 계기랍니다."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사회를 압축해 놓은 이야기다. '샤하이'로 대변되는 돈벌기 경쟁이 바로 위와같은 수많은 사장과 부사장들을 낳은 것이다. 따라서 마오시대의 '사장동지'들은 이제 어엿하게 '라오반'(老板, 사장)이나 '종징리'(總經理, 회사의 총 책임자)라는 본래의 계급적 위치를 회복했다. 동지라는 호칭이 서서히 사라진 것도 이 무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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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강'의 시대에서는 모두가 '오징어볶음'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해야만 한다. 사진은 중국의 어느 대학교 안에서 대학생들이 각종 정보를 보고 있는 모습. ⓒ 박현숙

덩샤오핑이 '선부론'을 발표한 이후 중국사회의 샤하이 현상은 급류를 타듯 거센 물결을 형성했다. 이러한 샤하이의 물결 속에서 등장한 라오반들이 '폭발호'(爆發戶, 갑작스럽게 부자가 된 현상을 빗대는 유행어)가 되고 '따콴'(大款, 큰 부자를 뜻하는 유행어)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 중국을 들끓게 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기회만 되면 너도나도 '돈의 바다'로 뛰어들고자 했다. 이러한 샤하이 시대는 중국인들을 돈에 미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마오시대의 동지적 관계의 파괴를 가져왔다.

동지를 대체해서 나타난 '셴셩'이나 '샤오지에' 등이 의미하는 것은 서구식 호칭법의 유행만은 아니다. 그 속에는 왜곡되어 가는 중국사회의 인간관계의 단면도 숨어 있다. '샤오지에'만 놓고 보더라도 그것은 단순한 '아가씨'의 뜻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술집이나 홍등가등으로 진출해가는 샤하이 시대 중국 아가씨들의 뒤틀린 자화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샤오지에의 종류도 삼페이 샤오지에(세 가지 서비스를 하는 술집접대부)니 샤오미(정부), 빠오얼나이(첩) 등 수많은 아류 사오지에들을 낳는 걸 보면 시장경제로 대변되는 샤하이 시대의 중국은 돈에 물든 또 다른 슬픈 인간군상들이 탄생하는 시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샤강(下崗)의 시대 - "너 오징어볶음 되었니?"

90년대 이후 중국은 바야흐로 '샤강'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과거 철밥그릇으로 불리던 국유기업에 대해 정부가 시장경제하의 효율이라는 잣대로 대규모 수술을 단행하면서 생산의 효율성을 저하시키는 많은 '노동자 동지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다.

90년대 이후 이러한 대량의 실업자 군단과 관련하여 중국사회에 유행했던 말중에 '챠오요우위'(炒魷魚, 오징어볶음)라는 재미있는 유행어가 있다. 이 말은 직역하자면 '오징어 볶음'이라는 뜻이지만, 90년대 들어 국유기업 개혁이나 산업구조 조정등으로 회사에서 정리해고된 사람을 빗대어 쓰는 말이다.

IMF시절 우리나라에서도 대량의 실업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면서 공원등의 벤치에서 낮시간을 때우는 불운한 실업자 가장들의 모습이 한 시절을 풍미한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멀쩡한 나이에 거리로 내몰린 중장년의 실업자들이 후통(골목)이나 공원등에서 할 일 없이 연을 날리거나 장기를 두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곤 한다.

그러다 간혹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농담삼아 했던 말이 바로 "니 챠오요우위러마?"(너 오징어볶음 되었니)이다. 이 말의 기원은 원래 딴웨이 체체로 대변되는 철밥그릇 사회로까지 거슬러 올라갈수 있다. 즉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국가에서 직장과 집, 기본적인 생필품등을 안배해주었기 때문에 개인이 준비했던 것이라고는 덮고 잘 담요가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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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중국인들은 어떤 '화두'로 살아갈 것인가. ⓒ 박현숙

직장 근무지나 신상에 변동이 생긴다든지 하면, 바로 이 담요 한 장만 둘둘 말아서 이동하면 그만인 것이다. 바로 여기서 '챠오요우위'라는 말이 유래하고 있다. 오징어를 볶으면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모양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담요를 둘둘 마는것과 닮았기 때문이다.

도시노동자뿐만 아니라 농민들도 '오징어볶음' 신세가 된 건 마찬가지다. 중국의 기차역이나 기차간에서도 둘둘만 담요 한 장을 메고서 이 도시 저 도시로 돈벌이 유랑 생활을 하는 농민공들을 볼 수 있는데, 이른바 농촌의 샤강농민들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농사만으로는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농민들이 자기의 농토를 버리고 담요 한 장에 의지해 새로운 밥벌이를 찾아나서는 유랑노동자 대열을 형성한 것이다.

90년대 이후 중국인들에게 실업이나 정리해고는 바로 이렇게 담요를 오징어처럼 말아서 걸머지고 거리로 쫓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도 중국인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너 오징어 볶음 되었니?'라는 것. 직장에서 한직으로 내몰린 경우에도 이 말이 종종 쓰인다. 실업자로까지는 내몰리지는 않았어도 오징어볶음 신세는 언제 어느 때 닥칠지 모르는 중국인들의 미래의 불안감이다.

90년대 이후 나타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유행어. "너 이혼했니?"(你離了嗎). 특히 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사회에서 이혼이 하나의 현상처럼 번져나가면서 이 말도 덩달아 유행하게 되었다. TV 드라마나 영화등에서도 이혼이라는 주제가 성행하기 시작했고 광동이나 심천 등 개혁개방 특구에서는 '빠오얼나이'(본 부인 외의 첩을 지칭) 현상이 심화되면서 곳곳에서 이혼가정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서민들은 실업이라는 '오징어볶음' 신세가 되고 샤하이로 돈을 번 라오반들은 젊은 '빠오얼나이'들을 끼고 살면서 가정을 내팽개쳤던 것이다. 물론 이혼율의 증가는 중국 사회의 결혼관념의 변화나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상승, 경제발전이 가져온 전통적인 가족개념의 약화같은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지만 사회의 급격한 변화 이후 마찬가지로 오징어볶음 신세가 된 중국 가족사회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해, 미국의 방언학회에서 21세기를 지배할 '세기의 단어'를 연구했다고 한다. 결과는 의외로, 과학이나 인터넷 등과 관련된 첨단시대 용어들이 아니라 바로 '그녀'(she)였다. 21세기를 압도할 소비자본주의 시대의 주력군은 '그녀'들이라는 것. 그래서 21세기는 '그의 역사'(History)가 아니라 '그녀의 역사'(Herstory)가 될 것이라고 한다.

21세기 중국에서는 과연 어떤 '세기의 단어'들이 나타날까. '싼샤'의 시대가 가고 난 뒤, 중국인들이 맞이할 '그녀의 역사'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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