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DVD 타이틀에 담긴 중국 풍속도-1

[중국심층리포트]

등록 2002.10.04 15:00수정 2002.10.0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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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가전업계가 해외로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거대한 중국 내수시장에서 다진 내공을 바탕으로 전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했다. 꿈의 영상기기라 불리는 DVD기기 또한 월등한 가격 경쟁력과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산 상품이 자국 시장을 석권하고, 해외 시장에서의 판매량을 날로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급속도로 높아져 가고 있는 중국내 DVD플레이어와 홈 씨어터 보급의 일등공신은 단연 불법 복제판 DVD 타이틀. 세계의 공장이자, 가짜상품의 천국인 중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가짜 DVD 타이틀을 통해, 불법 복제판이 중국에서 어떠한 경제·산업적 사회적 문화적 현상을 낳고 있는지 조명해 본다.

정식 영상소프트 판매점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는 한국영화 DVD 타이틀 '2009 로스트 메모리즈'. 한국 발매후 2주도 안 걸려 중국시장에 선을 보였다.
정식 영상소프트 판매점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는 한국영화 DVD 타이틀 '2009 로스트 메모리즈'. 한국 발매후 2주도 안 걸려 중국시장에 선을 보였다.모종혁
정식 판매점에서 팔리는 문화상품 해적판

중국 내륙직할시인 충칭(重慶) 한 부심가의 음악·영상소프트 판매점 '스따이후이인'(時代回響).

500평에 가까운 넓은 면적에, 소비자를 위한 휴식공간, 카세트 테이프 CD 비디오 테이프 VCD DVD 등 다양한 형식의 음악·영상 타이틀, 중국과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 일본 한국 인도 동남아 등 세계 각국의 문화상품이 즐비한 스따이후이인은 충칭에서 두 번째로 큰 전문 판매점이다. 이 상점 CD부스에서 절찬리에 팔리고 있는 한국가수 강타의 솔로 2집 CD 한 장은 단돈 중국돈 10위안(元, 1위안은 우리돈 150원).

한국에서 9월에 들어 정식 판매가 개시된 강타의 2집 음반이 한 달이 채 안된 시점에서 중국 내륙에 등장했다. 현재 중국 도시지역에서의 보급률이 50%에 달하는 VCD기기를 위한 드라마 부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타이틀은 단연 한국 드라마 '가을동화'와 '겨울연가'. 각각 90위안과 120위안의 가격으로 끊임없이 상품을 찾는 중국 청소년과 젊은층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판매 부스의 공간이 갈수록 넓어지는 DVD 타이틀로 눈을 돌리면 적지 않은 한국 영화들이 보인다. '투캅스2' '조용한 가족' '8월의 크리스마스' '쉬리' '반칙왕' '비천무' '공동경비구역JSA' '파이란' '친구' '엽기적인 그녀' '킬러들의 수다' '화산고' '무사' '공공의 적'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지난 4, 5년 동안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하거나 주목을 끈 화제작들이 모두 집합해 있다.

한국에서 8월에 선보인 영화 '친구' DVD 타이틀은 9월 초에, 제작 년월일이 2002.09.13으로 표시된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보름만에, D-5 8위안과 D-9 23위안의 두 가지 가격으로 한국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중국 내륙지역 소비자들과 만났다. 스따이후이인의 관리자 런(任, 34세)씨는 필자에게 "음악부문에서는 HOT 베이비복스 SES GOD 강타 문희준 등 한국가수의 CD가 전체 판매량이 20% 정도 차지한다"고 밝히고, "최근 VCD 드라마부문은 한국 드라마가 판매의 대부분을, DVD 타이틀은 한국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 다음으로 종류가 다양하다"고 말했다.


'따오반'이 지배하는 중국 문화상품시장

자신의 매장이 충칭에서는 보기 드문 대형 복합 음악·영상소프트 판매점이라는 런씨의 자랑 가까운 소개가 무색하지 않게 스따이후이인은 다양한 형태와 종류의 한국 문화상품이 팔리고 있다. 이는 현재 중화문화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리우(韓流) 매니아를 위한 배려이다.


구매자의 다수가 10, 20대인 이른바 '하한주'(哈韓族)라고 일컫어지는 한국문화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 CD와 드라마 VCD, 영화 DVD 타이틀을 사기 위해 여러 판매점을 돌아다닌다.

필자가 스따이후이인에서 만난 리웨이웨이(李緯緯, 여, 21세)씨도 그중 한 명.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다는 리씨는 "중국에서는 한 가수의 CD 전집이라도 워낙 다양한 제작사와 편집판이 있다"며 "디자인을 깔끔한 문희준 솔로 CD를 사기 위해 벌써 6군데 상점을 돌아다녔다"고 필자에게 귀띔했다. 판매점 면적의 크고 작음에 따라 원하는 상품을 구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중국내 유통경로가 복잡하고 종류가 다양한 '불법 복제판'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중국 전역에서 판매되는 외국 가수의 카세트 테이프와 CD, 외국 드라마와 영화의 VCD·DVD 타이틀은 90%이상이 '따오반'(盜版)이라고 불리는 불법 복제판이다. 충칭을 대표한다는 스따이후이인 또한 매장에서 전시되어 팔리는 문화상품 80% 가까이가 해적판으로 채워져 있다. 리씨가 10위안이 구입한 문희준 CD를 비롯하여 한국 드라마 열풍의 기폭제 역할을 한 '가을동화' VCD 전집, 한국과 시기상 별다른 차이 없이 상점에 나도는 '2009 로스트 메모리즈' DVD 타이틀 전부 가짜상품인 것이다.

특히 홍콩에서의 인기몰이를 시작으로 해서 중국 전역에서 큰 환영을 받고 있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형성시킨 DVD 타이틀 상품은 극소수 정식 출시된 작품을 제외하고 모두 가짜다. 한국에서 1만8000~2만5000원대에 판매되고 있는 한국영화 DVD 타이틀을 중국 소비자는 1/10의 가격으로, 비슷한 시기에, 정품과 똑같은 매뉴얼과 품질을 지닌 상품을 구입해서 보고 있는 요지경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차원을 넘어서 가짜가 진짜를 구축하는 현장이다.

DVD 타이틀 판매부스의 일부 공간만을 차지하는 정품. 120위안인 정가가 단돈 29위안으로 할인되어 판매되고 있다.
DVD 타이틀 판매부스의 일부 공간만을 차지하는 정품. 120위안인 정가가 단돈 29위안으로 할인되어 판매되고 있다.모종혁
초기 보급단계인 한국 DVD시장

DVD(Digital Versatile Disc)는 지난 1996년 상용제품이 처음 출시된 디지털 컨버전스 제품이다. 직경 12cm의 광디스크로 고해상도의 화상 등을 저장할 수 있는 기록매체인 DVD 1장에 기록용량은 일반 CD의 6∼8배 정도이다. 광원으로 짧은 적색 반도체 레이저(파장 635∼650mm)를 사용하여 레이저를 집광(集光)하는 대물 렌즈의 개구수(開口數)를 높이는 등 기록 용량을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DVD는 개발당시 대용량의 미디어, 뛰어난 화질, 현장감 있는 입체음향 제공의 특징에다 다양한 부가기능까지 지니고 있어 '꿈의 미디어'라는 찬사를 받았었다.

그러나 멀티미디어 CD(MMCD) 방식과 초밀도(SD) 방식이라는 두 가지 방식의 DVD로 분열되었던 일본과 유럽의 전자업체들은 한동안 표준규격 제정을 놓고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었다. 이렇게 2여년동안 소모적인 싸움에 큰 돈벌이 기회를 놓친 것을 우려한 전자업체들은 2000년 들어 디스크 구조는 SD 방식으로 하고 변조 방식의 일부에 MMCD 방식을 채용함으로써, DVD의 규격을 통일하여 본격적인 시장을 형성했다.

한국의 경우 DVD시장은 작년까지 17만대로 아직 초기 보급단계에 머물러 있었지만 올해 들어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DVD와 VCR의 복합제품으로 기존 아날로그 고객과 신세대 디지털 고객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킨 콤보가 2001년과 올 상반기 히트상품에 선정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그동안 비디오시장의 주력상품이었던 VCR은 매년 판매량이 2%씩 줄어들면서 점차 시장에서 퇴출당하고 있는 전세계 조류와 비슷한 형국이다. 하지만 한국은 한창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는 미국, 일본과 달리 시장 형성기의 단계에 불과하다.

새로운 제품이 등장한 뒤 보통 5년이 지나면 본격적인 성장기에 도달했던 국내 전자상품 사이클에 비하면 의외의 상황인 것이다. 이는 지난 몇 년동안 DVD 타이틀을 확보하지 못한 인프라 측면이 낳은 결과였다. 즉 영화 배급사측에서 타이틀의 렌탈 시장을 열지 않고 판매 위주를 전략을 펴서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원하는 영화를 빌려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DVD 플레이어 또한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직접 타이틀을 구매한 소수를 제외하고 일반인들에게 널리 확산되지 못했다.

해적판이 시장의 파이를 넓히다

이에 비해 한국보다 개인소득 수준이 1/10에 불과한 중국은 작년 한 해만 400만대의 DVD 플레이어가 판매되었다. 올해 판매 예상량인 800만대임을 비추어 볼 때 중국의 DVD시장은 한국의 10배가 훨씬 넘는 규모의 경제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은 1994년 첫 번째 VCD기기가 출시된 이래 'VCD왕국'이라 할 정도로 기존 VCR시장이 성숙되기 전에 바로 VCD가 빠른 속도로 보급되었던 경험을 지니고 있다.

그럼 현재 8000만대 이상이 판매되어 광디스크시장의 주력제품이었던 VCD를 끌어내리고 또 다시 세계적인 'DVD왕국'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중국의 비결은 어디 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스따이후이인와 같은 영상 소프트점에서 팔리는 불법 복제품의 현장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보다 절반이상 싼값의 DVD 플레이어와 10배에 가깝게 저렴한 양질(?)의 해적판 DVD 타이틀이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DVD시장의 파이를 키운 것이다. 그야말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함께 이룬 절묘한 2중주가 이상적인 발전토대를 마련했다.

지난 2000년 5월 베이징영화대학(北京電影學院)에서 열린 한국영화제를 통해 소개되기 시작해서, 노래 드라마에 비해 중국 진출이 늦었던 한국영화를 선풍 일으킨 공로자는 바로 불법 복제품 DVD 타이틀이다.

작년 말부터 중국 대륙에 선보이기 시작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한국영화의 상종가를 주도했다. 영상소프트 판매점의 입구에 내 걸린 포스터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엽기적인 그녀'와 한국영화 포스터일 정도로, 영화는 노래, 드라마에 이어 한리우를 주도하는 상품으로 등장했다. 물론 이것은 영화 매체가 DVD라는 이상적인 하드웨어와 결합하면서 낳은 결과이다.

여기에 품질에 있어서 정품과 다를 바 없는 해적판이 횡행하는 중국의 현실은 기름에 불을 붙인 격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중국에서 얼마나 많은 불법 복제판이 유통되고 있고 있을까? 다음 회에서는 가짜천국 중국에서 횡행하는 첨단 문화상품의 현황과 영향, 폐해 등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의 하니리포터에도 송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의 하니리포터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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