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이 본 세상은 어떨까?

위기철의 소설 <아홉살 인생>

등록 2002.10.18 23:14수정 2002.10.1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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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위기철의 소설<아홉살 인생>의 겉표지

위기철의 소설<아홉살 인생>의 겉표지 ⓒ 청년사

그 누구나 아홉 살이란 어린 나이를 거쳐 커가므로, 보편적인 아홉 살 적의 삶이란 것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아홉 살 적, 내가 무슨 일을 했었던 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누구나 개인차는 존재할 지언정, 복잡한 세상사에 대해 알 듯 모를 듯 말똥말똥 했었던, 살아가기에 그다지 심각한 걱정거리가 없었던 그때를 천진난만함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별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단짝 친구와 심하게 다투었고, 학교 발표시간이면 옆집 사는 철이에게 만큼은 지지 않으리란 일념으로 손들기 경쟁에 여념이 없었던 그때, 혹은 짝인 순이에게 홀딱 반해서 그네와 떨어지지 않으려 손을 맞잡았다가도 짓궂은 친구 놈들의 질투 어린 놀림에 얼굴이 붉어졌던, 생각해 보건데 아홉 살적은 그런 시기였다.


이러한 일련의 기억들이 지금에 와서 남아있는 아홉 살, 어릴 적에 관한 추억어린 단상(斷想)이라 할지면 그 단편적인 기억을 두고 “그땐 내가 왜 그랬지?”, 혹은 “아무 생각 없었을 그때가 맘 편했지”라는 식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가치관과 감회 따위가 개입되어 더욱 생동감 있게 되어, 머릿속에서 마치 영화 필름이 돌 듯 환기되기 마련이다.

이렇듯, 무심코라도 과거의 일을 떠올릴 지면 그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 자체로써 온건히 존재한다, 라기 보다는 현재의 나의 상황과 나만의 가치관 따위가 또한 투영되어, 머리 한구석에서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로 완성되어 간직하게 된다.

그렇게 어릴 적을 회상한다는 것 자체는, 현재와의 단절이 아닌 현재와의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있고, 그렇기에 이들의 관계는 유기적이라 할 것이 된다.

필자만의 과거 회상과 풋풋한 추억이 투영된 많은 회고록들은 많은 추억의 단상을 담아내지만, 혹은 지금에 와서 과거를 바라보는 필자의 가치관이 반영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어찌보면 단순하다고도 할 과거와 현재의 유기성 자체에 대해서 세심히 주목하려 하는 경우가 드물다.

가벼운 음미 거리를 가지고 일부러, 다소 철학적이라 할 무거운 분위기에 사로잡히게 될 것을 꺼려하는 일련의 통념에 의한 현상 일런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위기철의 소설 <아홉 살 인생>은 책의 저자가 회상하는, 아홉 살 적의 풋풋했던 모습들을 지금의 상황에서 저자 스스로의 인생관과 그때의 감회들을 투영시켜, 자신의 어릴 적을 멀찌감치서 바라보는 듯한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소설이지만, 그에 저자의 인생 담론에 관한 철학적 견해를 덧붙여 색다른 맛을 전하려 시도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아홉살 인생


소설 속의 주인공인 ‘나’는 과거, 부산 부둣가 깡패 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가족을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활기 넘치고 든든한 아버지와, 사고로 한 쪽 눈을 잃었지만 이에 비관하지 않고 ‘나’를 품어주는 따뜻한 마음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보통의 아홉 살짜리 사내아이.

그렇지만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기에, 살아갈 터를 닦느라 힘겨운 생활을 보내야 했던 ‘나’의 가족들은 때때로 부모의 친구 집을 전전하기도 하는 등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했었던 아픔도 많았다. 그리고 많은 고생 끝에, 너덜너덜한 판잣집이 밀집된 산동네 맨 윗집에서나마 ‘나’의 가족은, 가족만의 보금자리를 품게 된다.

소설 속의 ‘나’는, 산동네에 사는 모든 사물을 별나게 해석해 버리는 유별난 아이 ‘기종이’, 새침데기지만 그렇기에 매력 있는(?) 학교 짝 ‘우림이’등의 또래 친구들과, 같은 동네에 사는 ‘토굴할매’, 미쳤다고 소문난 ‘골방 철학자’ 그리고 그가 짝사랑 하는 산 넘어 부자 동네에 사는 이쁜이 누나 등의 동네 어른들과 더불어 살며 그네들을 살펴보기도 하면서 아홉 살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이렇듯 소설속의 ‘내’가 본 아홉 살의 풍경은 어리기에 순종적이고, 어른들의 부조리함이나 같은 또래들의 이해 못할 변덕스러움을 품고 이해하기에는 깜냥이 부족하다 하여 역부족일 수 있다할 나이지만, 이를 파악하고 그것의 원인을 찾고자 눈과 귀를 쫑긋 세우는, 호기심 가득 찬 시기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 시기는 덧붙이건데 또래집단과 몰려다니며 윗동네 아이들과의 싸움질, 병정놀이, 학교 수업 땡땡이치기 등을 자행함에 있어서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렵사리 용납되어져도 좋을 철없을 시기이기도 하고 말이다.

위기철의 소설 <아홉살 인생>은 이처럼 누구나 겪어 보았을 아홉 살 적, 아홉 살 나이의 ‘내’가 본 세상과 그 세상을 살아가려 적응하려 하기까지의 주인공의 모습을 허물없이 담았기에, 혹은 저자의 삶의 에피소드가 농도 짙게 담겨져 있기에 저자의 어린 날의 기억과 상념이 고스란히 투영되었을 법한, 맛깔스런 회고록이라고 보아도 무난해 보인다.

사실, 소설 속의 ‘나’는 이 책의 저자인 위기철 자신이기도 하고, 이 작품을 접하며 이러한 처자의 기억과 나름대로 보냈던 어린시절을 맞대어 보며 즐거운 회상의 때를 보내고 있을 독자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을 보는 재미로 뽑을 수 있는 면모 중 하나는, 저자인 위기철씨의 순박한 필치가 느껴지는 소설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가 제시하는 그 누구나 가지고 있을 보편적인 과거 회상의 매개체를 통한 풋풋한 추억의 환기이며, 이를 소설속 주인공 ‘나’의 일상을 통하여 나열하고 자극함으로 해서, 일련의 공감대를 도출해 낸다하는 점에 있다고 하겠다.

왜 아홉 살 인가?

위기철의 소설 <아홉살 인생>을 보면서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면 “왜 하필이면 아홉 살 인가”하는 점이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이 책의 저자가 가지고 있는 ‘아홉’이란 숫자에 관한, 조금은 색다른 고찰과 사색에 있다. (여기서 철학적 분위기가 감지되는데 사실, 이 책의 저자인 위기철씨는 <철학은 내친구>, <반갑다 논리야>시리즈 등의 대중을 위한 여러 철학 도서의 작가이기도 하다.)

“아홉은 정말 묘한 숫자이다. 아홉을 쌓아 놓았기에 넉넉하고, 하나밖에 남지 않았기에 헛헛하다. 그 아홉이 지나면 또다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기에 불안하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이건 모두 십진법 숫자 놀음에 지나지 않지만, 그게 때때로 우리를 공포스럽게 만들곤 하니 우습다. 이게 다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탓이리라. 비단 숫자뿐 아니라, 우리네 인생에서 어떤 출발점과 도달점에 연연해하는 것부터가 고정관념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궁극적으로 책에 투영된 저자의 관념으로 볼 때의 ‘아홉’이라는 것은, 사실 하나를 채우면 가득 차는 어떠한 것의 종결과, 하나를 채움으로써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시작의, 정 중앙에 위치하는 일련의 연속적이라 할 뉘앙스를 풍긴다.

그렇기에 위기철의 소설에서의 ‘아홉’이라는 것은 인생의 연속적이고 진행적인 속성과 연관이 있고, 이를 직접적으로 내포한다. 그리고 이것이 내포하는 것이 인생의 연속성에 관한 고찰(考察)인 이상 어차피 인생이란 것은 끝임 없는 진행선상에 있으니 시작과 끝, 인생의 단상 그 어느 것이든지 간에 지극히 단편적으로만 여길 수는 없다, 라는 필자의 직접적인 생각과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순간, 책의 속성은 단순히 필자의 순박했던 과거 회상과 추억어린 단상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게 되며, 그보다는 과거의 회상에 덧붙여 필자의 철학적인 인생 담론이 결합하여 필자의 오늘까지 망라하게 되는, 보다 스케일이 큰 필자만의 큼지막한 인생의 장편, 그 자체에 가깝게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필자는 ‘스물 아홉’의 나이로 자신의 ‘아홉 살 적’을 주제로 소설을 썼으며 그로부터 십년이 지난 지금은 ‘서른 아홉’이 된다, 라고 책을 끝마치며 말미에 적는 몇 개의 문장에서 밝힌다. 매우 재미있는 언어 유희적인 표현인데, 이것은 또한 인생의 연속성에 관한, 그것이 투영되는 필자의 소설, <아홉살 인생>의 요약 자체이기도 한 것이다.

삶의 단상과 단편을 담았다기보다 더 큰 삶의 진행이 담겨 있다 할 수 있는 장편, <아홉살 인생>은 그렇기에 비단 ‘과거 완료형 격’인 회고록 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현재 진행형’격인 유기적 인생 담론에 관한 소설이라고 칭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제목: 아홉살 인생(양장판)
  저자: 위기철   
출판사: 청년사 
  정가: 8,000원

덧붙이는 글 제목: 아홉살 인생(양장판)
  저자: 위기철   
출판사: 청년사 
  정가: 8,000원

아홉살 인생 - 개정판

위기철 지음,
청년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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