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 이광수가 여기 있다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세상에 유독 돌팔매 속에 춘원은 묻혀있다

등록 2002.10.19 12:36수정 2002.10.2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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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봉선사 입구에 춘원 이광수 기념비가 호젓하게 서있다.

봉선사 입구에 춘원 이광수 기념비가 호젓하게 서있다. ⓒ 황종원

나는 때때로 동두천에 갈 일이 있다. 서울에서 의정부를 지나 올라가서 내려 올 때는 포천을 지나 광릉수목원으로 길을 잡는다. 숲 속으로 가는 길은 계절마다 제격이요, 꿈을 꾸는 듯하다. 수목원이 끝나는 길에 봉선사가 있다.


봉선사에는 이런 창건 역사가 있다. 조선 예종 1년(1469년) 세조의 비, 정희 왕후가 세조의 능침인 광릉 인근에 봉선사를 창건하여 선왕의 명복을 비는 원찰로 삼았고, 1950년 6.25사변으로 삼성각을 빼고 16동 150칸이 다 탔던 것을 여러 차례의 복원 불사를 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나는 지금 건물을 보면 볼 때마다 안타깝다. 예전에는 목재로 지었던 집 여기저기를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 요즘 불사가 얼마나 힘드는 일인가를 짐작한다. 불신자가 아니니 대웅전의 부처님께 합장도 아니하고 옹달샘에서 목 한 번 추기고 나는 사찰 경내의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부처님이 보호하는 곳에 속인은 게으른 오수를 늘어지게 펼친다.

이따금 차가 오간다. 비몽사몽간에 눈을 비집고 빛이 들어온다. 다른 때는 무심히 스쳐갔던 사리탑과 비석 일행이 눈을 따갑게 한다. 여니 사찰이 으레 그렇듯 입구에 고승의 사리탑이나 사찰 창건 불사에 힘을 쓴 불자의 공덕을 알리는 비문이려니.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가산을 던져 천년 사찰의 역사를 만들려는 불심이 때없이 궁금해서 나는 그 쪽으로 갔다. 그랬더니 이런, 춘원 이광수 선생이 계신 것이 아닌가.

이광수, 일생은 이랬다. 1892~1950 1905년 일진회의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에 건너갔다. 1907년 학비를 마련하여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명치 학원 중학부 3학년에 편입한다. 홍벽초/문일평 등과 '소년회'를 조직하고, 회람지 『소년』을 발행하여 시/논설 등을 발표. 1919년 『조선독립선언서』(2?8독립 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해로 망명. 『창조』지 2호 동인. 1921년 『개벽』지에 논문「소년에게」를 발표하여 입건되었다. 1936년 도일하여 일본의 유수 작가들을 만났다. 6월 귀국. 1941년 동우회 사건이 경성 고등법원 상고심에서 전원 무죄 판결되었다.


12월 각지를 순회하며 친일 연설을 한다. 1950년 7월 21일 납북된 후 생사 불명 되었다는 말도 있고 1950년 북한 남포 병원에서 입원 중 사망했다는 말과 10월 25일 자강도에서 사망했다는 말도 있다.

읽을 거리 많은 요즘 춘원에게까지 관심이 갈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 세대의 청춘 시절에는 춘원의 무정, 흙, 유정이 함께 있었다. 함께 웃고 울면서 우리의 청춘은 나이를 들어갔다. 만난 적은 없어도 춘원은 우리 시대의 청춘의 길잡이였다.


친일파니 뭐라 해도 나는 친일을 하고도 일본인들에게 대접을 못 받고 한글로 쓴 자신의 책 모든 것을 판매 금지 당한 쓴 세월을 보낸 그이의 통한을 함께 아파한다. 친일이라 땅에 묻고 욕하는 요즘 배운 이들이 난 체하는 정정당당에 내가 동감을 못하는 것은 친일의 무대에 함께 섰던 김동인은 동인 문학상이라며 대단히 들먹대면서도 춘원은 잊고 사는 우리의 무신경이 또한 안타까워서이다.

어른께서 여기 계셨군요. 숨은 듯이 계시다니요. 일제의 업이 이리도 크군요. 춘원 이광수 기념비라 했다. 1975년 세워졌고 부인 허영순, 아들 영근, 딸 정란, 정화 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친일 이전과 이후에 통한의 세월에 절절했던 춘원의 글도 피로 쓴 듯 하였다.

1944년 양주군 사능땅에 농막을 짓고 돌베게 생활을 하는 동안 한해 겨울을 가까이 있는 봉선사에서 입산 수도한 일이 있어, 여기 기념비를 세운 근거가 된다.

부인 허영숙 여사는 1975년 가을, 비의 완공을 못보고 9월 7일 80세의 천수를 마치시고 샘내 공원 묘지에 길이 누웠다는 기록은 슬프다.

비석의 곳곳에 춘원의 탄식이 가득하다.

a 부인 허영숙 여사는 이 비의 완성을 못 보고,비 근처 공원 묘지에서 영면

부인 허영숙 여사는 이 비의 완성을 못 보고,비 근처 공원 묘지에서 영면 ⓒ 황종원

벗님네 날 찾으심 무얼 보고 찾으신고, 값없는 이 몸 인줄 아마도 모르시고, 행여나 무엇인가 하여 찾으신가 합니다.

내 평생에 지은 이야기, 스물 서른 어느 분 읽으신고, 그 얼굴들 눈앞에 그려놓으면, 모두 반가오셔라. 살닿는 듯 하여라.

내 몸이 무엇이오. 한 때는 죽을 것이 고락을 헤오리다. 조구만 목숨이 나마 겨레 위해 바치리다.

풍운의 역사를 살아온 춘원의 비문 앞에서 누구인들 당당할까. 나는 불자가 아니면서 합장하고 예수교인이 아니면서 기도를 한다. 용서하소서. 당신을 잊고 살았습니다. 우리 자신이 더러우면서 당신을 욕합니다. 당신은 이제 한 마디 변명도 아니 합니다. 당신의 침묵이 당신의 친일을 인정한다는 우리의 판단을 용서하소서. 당신은 행동하며 좌절하고 무너지며 우리 또한 그러거늘 우리는 자신에게 돌팔매 하듯 당신에게 돌팔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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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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