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의 죽음에 대한 단상

변화된 학내 분위기에 대해 느끼는 한 복학생의 낯설음

등록 2002.10.20 01:18수정 2002.10.2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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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는 한 가지 의미 있는 좌절을 경험했다. 두 달여 전 전역과 동시에 참여했던 학과 내의 전공학회가 회원들의 참여 부족으로 인해 심각한 운영상의 위기를 맞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학내의 여러 매체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학회"가 예전 같지 않고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내가 참여했던 그 학회도 계속 존재해온 학회가 아니라 3년여 전에 소멸되었던 전공학회를 다시 살려낸 것이었는데, 한 학기라는 짧은 부활의 기간을 곧 마감하게 되어 여간 안타까운 것이 아니다.

전역 이전에도 그 학회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 의욕적으로 시작하여 초창기에는 6~8명 가량의 회원이 있었고 인터넷상의 커뮤니티에는 15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했다고 해 여전히 대학 사회에 학회를 향한 열정이 소멸되지 않았구나라는 희망을 가졌다.

일시적인 운영의 어려움이 있다고 했으나 그것은 학회 전문간사가 확보되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 "세미나 내용의 충실화"가 담보되지 못한 것이 원인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모임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눈 끝에, 4학년이고 또 예전에 학회 운영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인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가 간사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운영상의 어려움은 풀어내기 힘든 문제였다. 세미나의 내용을 강화하기 위해 충실한 내용과 논쟁거리를 동시에 담아낸 커리를 확보해 회원들과 공유하고자 했으나, 일시적인 호응뿐 그 이후에는 정기 세미나에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참석하지 않는 현실이 응답으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결국 두 달여가 지난 지금 세미나는 거의 흐지부지 되었고 회생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계속된 회원들의 불참 속에서 대표와 나는 힘이 많이 빠진 상태다.


물론 그렇게 된 게 회원들의 책임만은 아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모임 운영의 모든 제반적인 부분을 대표에게 떠맡긴 채 무관심했던 나에게도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대학 사회에서 '학회'가 갖는 순기능과 가능성에 대해 엄청나게 무관심한 학내 구성원들의 반응을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학회'의 가능성은 논의의 대상이 정치이든 경제이든 교육이든 관계없이 "미결정성"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논의하고 논쟁하며 그를 기반으로 진행된 자기 주도적 학습이 학회 구성원들의 문활 능력 향상을 가져온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학회의 가능성에 대해 주목하는 학내 구성원들은 그다지 많지 않으며, 간사나 운영 주체 역시 그러한 학회의 선례를 맛보지 못한 채 관습적으로 학회 운영을 지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학회의 소멸화는 학내의 다른 한 켠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수한 "조모임" 및 "스터디 그룹"과 대비된다. "조모임"은 말 그대로 대학의 수업이 대형화함으로 인해 교수가 학생을 1:1로 터치하는 것이 어려워진 것에서 도입된 새로운 수업 방식이다. 이를 통해 평가의 대상을 "학생 1인"이 아닌 "학생 7~8명이 소속된 한 개의 조"로 확대함으로써 대형화된 수업 운영을 좀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함이다.

필자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경우 일반적인 학생들은 5~7가지의 수업을 이수하고 있는데, 한두 과목을 제외하곤 거의 조모임을 동반한 수업이다. 그 어느 때보다 학점에 민감해진 요즘 대학생들에게 "조모임 활성화"는 "좋은 학점"의 필수 요소가 되기에, "학회"와는 달리 충분한 "참여의 이유"를 제공한다.

"스터디 그룹"의 활성화는 대학 내의 고시 열풍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정보 입수의 통로를 다양화하고 피차간의 자신 있는 부분을 공유하기 위한 목적에서 "스터디 그룹"은 필수적인 수험 방식으로 수험생들 사이에 인지되고 있는 현실이다. 시험의 종류도 행정, 외무, 기술고시 등 국가 공무원 시험은 기본이고 사법고시나 공인회계사 등의 자격증 시험, 언론사/공사 공채시험, GRE/TOEFL 등 어학시험 등 천차
만별이다.

몇 년째 한파인 취업 시장에서 보다 안정적인 자리로 진출하고자 시험 준비에 열성인 학생들에게 "스터디 그룹"의 참여는 그 어떤 모임의 참여보다도 우선한다. 필자의 경우도 준비하는 시험이 있는지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스터디 그룹에 참여하고 있는데, 결석을 했을 때에는 벌금 만원, 지각 시 오천원의 벌금을 물리는 까다로운 운영 규칙뿐 아니라 학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회원들의 열성에 매우 놀란 바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학내 흐름 속에서, 대학생들 사이에 학회활동을 통한 정치사회적 문활 능력 강화라는 가치와 조모임 및 스터디 그룹 참여를 통한 "시장적인" 자기관리라는 가치 가운데 어떤 것이 보다 중요한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은 잠시 대학을 떠나 있던 가운데에서도 전자의 가치가 여전히 유의미 할 것이라는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좌절의 형태로 다가온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내가 속한 지금의 이 학회를 어찌해야 좋을 것인가? 3년만에 다시 살려낸 학회를 이렇게 허무하게 접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여전히 희망을 가져야 할 일이다. 학생들은 변했을지 몰라도 대학이라는 공간이 가져왔던 본질 자체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신뢰까지 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명의 사람만이 남는다 하더라도, 학회를 통한 자기 주도적 문활 능력 강화와 대사회적 관심 및 행동이라는 그 가능성을 적어도 내가 대학에 남아 있는 한은 꼭 이뤄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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