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뭉스런 문장 속에 빛나는 해학

김종광의 두 번째 소설집 <모내기 블루스>

등록 2002.10.21 13:35수정 2002.10.2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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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광의 새 소설집 <모내기 블루스> ⓒ 창작과비평사

한국문단에서 김종광(31)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독특하다. 동향의 선배작가인 <관촌수필>의 이문구(61)와 곧잘 비견되는 충청도 방언의 능수능란한 구사와 2002년 '동인문학상' 수상작가인 성석제(42)와 한 묶음으로 엮일 수 있는 능청스러운 해학.

김종광의 소설에는 비슷한 또래 작가들이 무시로 사용하는 '신세대적 코드'가 완벽히 거세돼있다.

그의 첫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과 경장편 <71년생 다인이> 최근 출간된 두 번째 소설집 <모내기 블루스>(창작과비평사) 어디를 뒤적여도 '재즈카페에서 잭 다니엘을 마시는 미니스커트의 패션모델' 혹은, '오피스텔에 혼자 살며 사이버세계에 집착하는 여피(yuppie)'는 찾아지지 않는다.

동년배 소설가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려하는 김종광. 생경한 길을 걸어가는 그가 맞을 문학적 미래는 어떠할까? 이번 작품집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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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을 비롯한 9편의 단편이 실린 <모내기 블루스>의 수록작 중 가장 먼저 눈길을 잡아채는 건 '윷을 던져라'와 '서점, 네 시'.

시골마을 친목회의 명절풍경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윷을 던져라'는 오가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 속에서 피폐해진 농촌의 현실을 읽어내게 하는 형식적 빼어남과 더불어, '그래도 삶은 포기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란 메시지까지 넉넉하게 담아내고 있다. 여기에 더해진 김종광 특유의 의뭉스러운 문장이야 말해 무엇하리.

'서점, 네 시'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퍼니게임>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읽는 내내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짜증스럽게 한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조직폭력배가 '별 다른 이유도 없이' 서점 여주인과 그녀의 애인, 대학교수에게 폭언을 퍼붓고, 무자비하게 폭행한다는 설정은 일상화된 폭력에 대한 은유적 비판인가 싶다. 그런데 이것 봐라. 그게 아니다.

작품의 마지막. 그 싹수 노란 어린 조직폭력배는 말한다. '하나뿐인 여동생이 죽었다'고, '강간당해서 자살했다'고, '그 애의 무덤에 책을 묻어주고 싶었다'고. 그 말은 '너희들의 오만과 허위가 미웠다'는 것으로 들린다.

김종광은 '서점, 네 시'를 통해 지식인이라고 지칭되는 사람들이 기실은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를 말해준다. 이에 덧붙여 우리가 불변이라고 믿고있는 사회적 제도와 관습 역시, 작은 물리력만으로도 쉬이 무너지는 사상누각(砂上樓閣)에 불과하다는 것 또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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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종광 ⓒ 홍성식

어눌함과 의뭉스러움 속에서 해학을 찾아가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 중인 소설가 김종광.

이 영민한 후배작가의 책을 접한 문학평론가 서경석은 '충청도 사투리 특유의 느릿함이 어느 순간 발 빠르게 현실의 이면에 놓인 허위나 가식을 찍어내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그의 소설이 한국사회의 깊은 역사적 저류에 도달하기를 기대한다'는 격려의 말을 전했다.

모내기 블루스

김종광 지음,
창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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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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