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디야, 그거는 허새비 아이가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19> 벼 베기

등록 2002.10.21 17:28수정 2002.10.2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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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수확을 앞둔 벼

수확을 앞둔 벼 ⓒ 이종찬

"니 어제 논에 뭐하러 나갔더노? 메뚜기 잡으러 갔더나? 그래, 많이 잡았더나?"
"야아가요~ 정신이 살푼(살짜기) 나가뿟나(나가버렸나), 내가 운제(언제) 논에 있었다카노."
"야아가요~ 벌건 대낮에 사람 잡을라 카네. 니 참말로 어제 논에 안 있었다꼬 잡아띨라(잡아뗄려) 카나."

"??? 니 아까 점심 때 뭐 묵었노? 아무래도 뭐 잘못 묵었는갑다."
"그라모(그러면) 어제 오후 내내 산수골에 있는 니 집 논에 하루종일 서가(서서) 있는 기 니가 아이모(아니면) 누구라 말고."
"아항~ 으이그~ 이 문디야. 니가 도회지서 왔다꼬 푯대 낼라카나. 그 거는 내가 아이고, 내 옷을 입고 있는 허새비 아이가, 허새비."

우리 마을에는 유난히 참새떼가 많았다. 새벽마다 제일 먼저 우리들의 단잠을 깨우는 것이 참새떼들이 짹짹거리는 소리였다. 그리고 비음산이 아버지께서 소죽을 끓이는 아궁이 속처럼 그렇게 벌겋게 물들기 시작할 때면 장닭이 홰를 치며 꼬꼬~ 꼭~ 꼬오~ 하고 울었다.


참새떼가 울 때는 우리 마을도 아직 어둑하고 시퍼런 안개 속에 잠겨 있는 시각이었다. 그리고 간밤에 땐 군불로 데워진 그 지글지글하던 방바닥이 서서히 식어갈 때였다. 하지만 그 시각에는 아직 조금 춥기는 해도 이불 속에서 단잠을 조금 더 잘 수 있을 때였다.

하지만 장닭이 울면 반드시 일어나야만 했다. 장닭이 처음으로 울면 외할아버지의 기침소리와 함께 부엌에서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연이어 장닭이 홰를 치며 3~4번쯤 울고 나면 늘 낯익은 그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날 샜다, 퍼뜩 일어 나거라, 라는 어머니의 물기에 젖은 그 목소리...

그때쯤이면 부엌에 걸린 까만 무쇠밥솥에서는 허연 김이 쑥쑥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 달착지근한 밥 내음과 함께. 하지만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어느새 어제 내가 베어온 소풀로 소죽을 끓여 소 여물통에 가득 담아놓고 들로 나가고 나신 뒤였다.

이윽고 비음산에서 해가 쑤욱 떠오르고 나면, 닭장 안에서는 장닭이 다시 한번 홰를 치며 울었다. 그 울음소리를 밟고 논에 나가신 아버지께서 지게를 지고 마악 집으로 들어섰다. 아버지의 바지개 속에는 이미 날이 무른 낫이 서너 자루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우리들이 모두 세수를 마치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할 때였다.

a 허수아비

허수아비 ⓒ 창원시

"허어~ 참! 올개(올해)는 웬 참새떼들이 그리도 극성인지... 온 논바닥에 참새떼들이 마치 거머리떼맨치로(거머리떼처럼) 새까맣게 깔렸다카이. 그라고 요새 참새들은 허새비도 겁을 안 낸다카이. 가마이 보이(가만히 보니까) 올 농사는 참새떼 땜에 베릴 거 같네(버리겠네), 영 베릴 거 같아."


해마다 시월이 깊어가면 우리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황금빛 들판이 서서히 짚빛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맘때쯤이면 우리들이 허새비라 부르는 허수아비가 그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들판 곳곳에 서서 바람이 불 때마다 우리들의 옷자락을 휘날리고 있을 때였다.

그래, 그 옷... 그러니까 우리들이 형에서부터 막내 동생까지 물려 입다가 이제는 도저히 입을 수 없는, 여기저기 기워진 그 낡은 옷...


그래서 우리들은 간혹 참새를 쫓기 위해 들판 곳곳에 세워둔 그 허새비가 마을 친구인 줄 착각할 때가 많았다. 또 허새비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을 앞산에서 바라보면 실제로 마을 친구가 들판에서 메뚜기나 방아깨비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어떤 날은 그 허새비를 향해 고함을 치다가 몇 번씩이나 손짓을 하며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요즘처럼 햇살이 제법 좋을 때 싹 베어 뿌려야지, 원."
"하기사 저리 세워 놓아 봤자 참새들만 좋은 일 다 시킬 거 아이요."
"요번 주말에는 느그들도 핵교(학교) 마치고 어디로 샐(갈) 생각들은 아예 말거라이~ 알았제?"
"씨~."
"오데서(어디서) 아부지가 말씀하시는데, 타이아(타이어)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노?"
"아... 알겠심미더."

그랬다. 가을 햇살이 유난히 따가워지고, 참새들이 보릿대 모자를 쓴 허새비 위에까지 앉아 극성을 부릴 그때쯤이면 나락을 베어 넘길 때였다. 그리고 장닭이 울기도 전, 그러니까 참새떼 소리가 마구 들리는 어슴프레한 새벽마다 아버지께서 숫돌에 낫을 가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려오는 그런 때였다. 철없는 우리들이 나락을 베야 하는 이번 주말에는 비가 주룩주룩 왔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그런 때였다.

타닥- 타닥- 타닥- 타닥- 타닥-
당시에는 지금처럼 기계로 벼를 베는 곳이 없었다. 아니, 그런 기계가 아예 없었다. 누구나 벼는 낫으로만 베야 하는 줄로만 알고 있을 때였다. 나락을 벨 때도 아무렇게나 베는 것이 아니었다. 왼손으로 나락 두 포기를 한꺼번에 잡고 오른손에 쥔 낫으로 벼 밑둥을 당기면 타닥,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두 포기씩 5번, 그러니까 모두 열 포기를 한꺼번에 베서 가지런히 논바닥에 눕혀야 했다.

또 나락을 쥘 때 잘못하면 마구 헝클어진다. 나락이 헝클어진다는 것은 수확을 할 때 그만큼 수확량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또 낫을 쥔 손에는 적당한 힘을 가해야만 나락이 쉬이 베어진다. 이때 너무 힘을 주면 발목을 다칠 수가 있고, 너무 힘을 약하게 주면 나락 밑둥이 제대로 베어지지 않는다. 또한 낫은 최대한 논바닥에 붙혀서 베어야 나락 밑둥이 삐쭉삐쭉 튀어 올라오지 않고 보기 좋게 베어진다.

그렇게 반나절 정도 열심히 나락을 베다보면 허리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아프다. 간혹 나락을 베다가 허리를 한번 펴려고 하면 쉽게 펴지지도 않는다. 그때 그 모습은 영락없이 지팡이를 짚고 반쯤 엎드린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래, 허리만 그렇게 아프지만 않다면 나락을 베는 일은 제법 재미가 나는 일이었다. 내 손아귀 속에 잡힌 씨알 굵은 나락 다발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이내 논바닥에 가지런히 드러눕는 그 재미란... 그러나 나락 베는 일이란 진종일 90도로 엎드려서 하는 일이다 보니, 다른 곳보다 특히 허리가 아프다.

a 가을 들판

가을 들판 ⓒ 이종찬

하지만 나락을 베는 날은 진종일 그런 허리 통증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제법 허리가 아파오고, 실실 요령을 피울 궁리를 할 때쯤이면 어김없이 머리에 수건을 쓴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어느새 그 맛있는 중참을 먹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어머니께서 머리에 이고 오신 큼지막한 고무 대야 속은 그야말로 음식창고였다.

툭, 떨어지던 땀 한방울과 함께 벼를 벤 논둑에 내려놓던 어머니의 그 진갈색 고무 대야... 그 고무대야 속에는 우리들이 평소에도 자주 먹고 싶었던 그 맛있는 국수가 잘 우려낸 노오란 멸치국물과 함께 들어 있었다. 그래, 그 국수... 그 국수도 요즈음처럼 슈퍼에서 파는 그런 얇고 하얀 그런 국수가 아니었다. 지난 여름, 바로 이 논에서 수확한 그 통통하게 살찐 밀로 뽑은, 제법 누르스름한 빛을 띠는 굵직한 국수였다.

고무 대야 속에 든 것은 국수뿐만이 아니었다. 국수에 넣어 먹는 호박을 비롯한 여러 가지 밑반찬... 풋고추와 붉은 고추, 마늘, 잔파를 송송 썰어 넣은 국간장... 그리고 하얀 막걸리가 철철 넘치도록 담긴, 군데군데 약간 찌그러진 그 노오란 주전자... 그리고 찐 고구마와 바알간 홍시까지.

"그래도 아~들이 있으니까 좀 낫지요?"
"낫고 말고."
"너그들 힘 많이 들제? 아나, 많이 묵어라."
"크으~ 말 그대로 물맛이 꿀맛이다."
"자슥! 아나~ 너그들도 쬐끔씩 묵어봐라. 갈증이 싹 가실끼다."

그랬다. 그날따라 아버지께서는 우리들에게 특별히 막걸리를 쬐금 마셔도 된다고 허락하셨다. 마치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쪼끔 마시는 그 음복처럼 말이다. 빙그시 웃으며 막걸리를 쬐끔 따라주시던 아버지... 당시 아버지의 그 미소 속에는 무슨 뜻이 담겨 있었을까. 그래, 우리가 아버지 참을, 그러니까 어머니께서 챙겨주시던 그 막걸리 반 되와 김치, 찐 고구마가 담긴 그 바구니를 가지고 갈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늘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오다가 술을 좀 엎질렀나~."
"......"
"오늘따라 왜 이래 양이 좀 작노."

a 막걸리

막걸리 ⓒ 창원시

논두렁에 척 걸터앉아 막걸리를 마시던 아버지의 술잔은 너무나 정확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가슴이 뜨끔했다. 그리고 간이 콩알만해졌다. 왜냐하면 아버지 참을 들고 올 때마다 나는 그 노오란 주전자에서 풍겨오는 달착지근한 그 냄새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그리고 조금 맛만 본다는 것이 그만 제법 꾸울꺽, 하고 한두 모금 마셔버렸기 때문이었다.

아, 오늘은 그 막걸리가 먹고 싶다. 짚빛으로 믈들고 있는 들판에 나가 허리가 부서지도록 벼를 베고 싶다. 그리고 논두렁에 척 걸터앉아 그 하얀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 혼자서가 아니라 막걸리를 쬐끔 부어주시던 내 아버지와 함께 그 땀내 밴 막걸리를 쪼옥 소리가 나도록 들이키고 싶다. 크으~, 그리고 벌건 포기 김치를 쭉 찢어 내 아버지의 입에 한입 가득 넣어주고 싶다. 그때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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