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처럼 번지는, 이토록 절실한 타전 소리

4년만에 3집 내놓은 언니네 이발관을 만나

등록 2002.11.08 00:57수정 2002.11.0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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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니 우리가 당신들에게 말을 걸었고 대답이 돌아오니 기쁠 뿐이다
-지난 10월 18일 교보문고 핫트랙에서 새 앨범 쇼케이스가 진행된 날 이석원씨의 일기 중에서


a 사진제공/쿠조 엔터테인먼트. 왼쪽부터 보컬 이석원, 베이스 정무진, 기타 이능룡, 드럼 전대정

사진제공/쿠조 엔터테인먼트. 왼쪽부터 보컬 이석원, 베이스 정무진, 기타 이능룡, 드럼 전대정 ⓒ 쿠조

언니네 이발관이 돌아왔다.‘당신이 반드시 따라 부르게 될 멜로디’라는 3집 앨범 <꿈의 팝송>을 들고.


긴 휴지기와 홍보 부족으로 혹시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나, 언니네 이발관은 데뷔 8년을 맞는 밴드이자, 한국 모던 록의 시작점에 서 있다고 이야기되는 밴드이기도 하다. 밴드가 만들어지기 전, 통신동호회에서 팝 비평을 하던 이석원씨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실재하지 않았던 밴드) 언니네 이발관 리더라는 거짓말을 유포해 사람들에게 진짜인양 믿게 했던 것은 나름대로 유명한 이야기. 이 거짓말을 믿고 밴드를 하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왠지 의문을 품게 하는 이름, 언니네 이발관은 리더 이석원씨가 어린 시절 봤던 일본 포르노 영화의 제목이라고 한다.

96년 <비둘기는 하늘의 쥐>, 98년 <후일담>에 이어 4년만에 나온 3집은 보컬 및 기타를 맡고 있는 리더 이석원씨를 제외한 베이스, 드럼, 기타 멤버를 새롭게 구성해 만들어졌다. 음반 홍보와 공연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 이석원씨를 만나, 잊혀지지 않는 멜로디에 대해 들어보았다.

- 앨범이 나온 지 2주정도 됐는데, 반응이 좋은 것 같다
"방송과 인터뷰 등 홍보활동과 공연을 하며 지내고 있다. 초반 반응은 괜찮다. 그 흐름을 이어가려고 발버둥치는 중이다."

-‘꿈의 팝송’은 어떤 앨범인가.
"꿈처럼 좋은 팝송일 수도 있고, 꿈과 팝송의 단순조합일 수도 있다. 꿈은 드림일 수도 있고, 희망 혹은 바램일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세련된 반주로 색채감을 주고 싶었다. 나는 음악의 시각적 해석을 중요시한다. 어떤 상을 떠오르게 하는, 상상력을 주는 곡.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은 명료하다. 1집은 가사나 곡, 연주 전체가 그런 느낌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수채화처럼 번지는 느낌이랄까. 부드러워지면서 포용력도 커진."

a 사진제공/쿠조 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쿠조 엔터테인먼트 ⓒ 쿠조

- 보컬을 제외하곤 매 앨범마다 멤버가 모두 바뀌었는데, 어디서 오는 진통인지. 그런 잦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이름을 유지시키는 정체성은 무엇인가
"멤버 교체는 보다 완벽한 라인업을 유지시키고 싶은 욕심에서 나온 것이다. 한편, 멤버 중 처음에는 같은 것을 좋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것을 좋아하게 된 사람들이 생겼고, 소통의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지금은 다들 다른 곳에서 자기 음악을 한다.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이름을 끌어가는 기본적인 정체성은 팀을 만들고 끌어온 나에게 있는지 모르지만, 계속 함께 만들어나가야 하는 부분들이 생긴다. "

- 새로운 멤버들은 어떻게 함께 하게 됐나
"공통지반은 이발관의 음악을 좋아하는 거다. 베이스의 정무진씨는 재즈밴드에서 활동해온 사람이다. 라이브 세션으로 만나오다, 눌러앉게 된 경우다. 드럼과 기타는 오디션을 통해 뽑았다. 드럼에 전대정씨가 지원했을 때, 회사원에 헤비메탈 밴드 출신이라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해보니 딱이더라. 기타를 구하는 것은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기타의 이능룡씨는 3집 작업에 들어간 상태에서 극적으로 발탁한 경우다."

우울한 이발관이 좋아
나름대로 리뷰

‘푸훗’이라는 귀여운 제목으로 시작되는 이발관의 첫 앨범, <비둘기는 하늘의 쥐>에서 돋보인 것은 ‘생일기분’이라는 이상한 축하곡이었다.

‘오늘은 나의 스무번째 생일인데 왜 이런 날만 되면 갑자기 우울해지는 걸까 난 정말 이런 날 이런 기분 정말 싫어’라고 속삭이는 노래를 들었을 때, 즐겁지 않은 스무 살이 해방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후일담>에서는 어떤 특별한 느낌을 받지는 않았던 듯 하다. 그러나 ‘돌아온’이발관에 대한 반가움은 <후일담>을 돌아보게 한다. 단아함과 세련됨이라는 양면을 두고 2집과 3집은 연장선상에 있는 듯 하다.

‘잘 봐 이따위 애를 당신 앞에 서 있는 걸’(나를 잊었나요?)라고 말해본다. ‘나를 잊은 그 거리를 이젠 울면서 달리’(울면서 달리기)기도 한다.

나를 몰라봐주는 사람들 앞에서 ‘난 가진 게 없어 나은 게 없어’라면서 절망하지 않고 ‘그게 뭐 어쨌다는 거니’(2002 년의 시간들)한다. 거짓으로 말하지 말라고, 그게 낫다고, 못난 우리끼리 ‘같은 색을 만들어 같은 색을 나누어 우리 둘이 함께 칠해요’(언젠가 이발관)라고 권해준다. ‘불우스타’라는 전무한 스타일이 튀긴 해도, 전체가 연작시처럼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주는 앨범이다. 그 이미지는 로드무비 내지는 버디무비와 비슷하다.

언니네 이발관이 좋은 곡을 만들어 낸건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우울한 이발관이 우울할 필요 없다고 다독여준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 원주 기자
- 곡에 대한 욕심이 언니네 이발관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다. '필생의 멜로디'를 선보이겠다고 했는데, 어떤 것이 ‘좋은 음악’, ‘필생의 멜로디’인가. 이번 3집을 통해 평가한다면
"좋은 곡 쓰기는 여전히 지상과제다. 지금 분위기는 곡이 와 닿지 않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지만 만들 당시만 해도 앨범 평이라곤 사운드 이야기, 연주 이야기 밖에 없었다. 지금은 곡 가지고 경쟁이 붙는 분위기다.

좋은 곡은 한마디로 들어서 좋은 것이다. 보편적으로 감성적 합의가 이뤄질 정도의. 예를 들자면 비틀즈의‘헤이 주드’같은 곡 말이다.

매 앨범마다 필생의 멜로디를 담는다고 생각한다. 사실 작업 자체가 ‘이번에 최고를 만들어내겠다’는 극단적인 과정의 산물이므로. 이번 앨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하는 곡은 ‘울면서 달리기’다. 2집에서는 ‘어제만난 슈팅스타’, 1집에서는 ‘동경’이었고."

- 가사는 극히 개인적이고, 젊음의 고뇌를 담은 한편 그래도 그것을 예찬하는 듯하다. 곡만큼 가사를 중요하게 여기는가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들이 좋으냐 딸이 좋으냐의 문제랄까. 내가 표현하고 싶은 주제는 자기 자신, 그 경험과 느낌이다. 1집 때는 젊었고, 아직도 젊다. 벗어날 수 없는 주제인 것 같다. "

- 음악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내가 못되게 굴었던 사람들에 대한 변명,‘이래도 내가 나쁜 놈이야’라는 걸 수도 있고, 나를 업신여기는 사람에 대한 항변일 수도 있겠다.‘내가 이 정도야’하는. 어쩌면 친구들을 만들기 위한 구애일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이다."

- 3집 이후 장기적인 계획은 없나
"사실 그것은 무의미하다. 이번 앨범이 망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하루살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사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작업을 하던 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봤다. 아주 좋았다. 우리가 만드는 앨범이 그 영화처럼 간직하고 싶은 무엇이 되길 바랬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럴 만하다 믿는다. 지금은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 그 이후는 아직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대학생신문 17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대학생신문 17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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