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암의 점심 제공 중단

저마다 먹거리 챙겨오면 산이 더러워질까 걱정

등록 2002.11.10 09:52수정 2002.11.1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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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점심 중단 공고를 붙히고도 아직은 점심공양를 하고 있으나 언제 중단 될 지는 연주암의 사정에 달려있다.

점심 중단 공고를 붙히고도 아직은 점심공양를 하고 있으나 언제 중단 될 지는 연주암의 사정에 달려있다. ⓒ 황종원

관악산에 매일 올라 갈 형편이 아니다.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과천까지 왕복 3시간, 과천지하철역에서 연주암까지 왕복 3시간이니 주위 경관 살피며 여유를 부렸다가는 모두 7시간이 금세니 만만한 길이 아니다. 연주암을 다녀온 지 얼마 안되어 이제 다시 간절하게 다녀 갈 일이 없다.


반가운 전화가 왔다.
전주 기전 여고 교감 김환생 선생이다. '혼불' 작가 최명희와 초등학교 동창이고 작가 김지우의 스승이다. 그런데 나를 찾은 것은 최명희와 김지우 때문이 아니고 관악산 때문이다. 일 때문에 서울 걸음을 한 김 선생이 다른 것은 몰라도 관악산에 한 번 올라 가자 하는데 다른 일도 아닌 심신 단련 산행이니 이 아니 좋은가.

관악산과 연주암은 이런 곳이다.
관악산은 예로부터 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의 하나이다.

서울의 남쪽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이 산은 그 줄기가 과천 청계산을 거쳐 수원의 광교산을 만난다. 곳곳에 드러난 바위 봉우리들이 깊은 골짜기와 어울려 산세가 험하나 산은 그다지 크지 않아 하루 산행으로 산길은 늘 벅적댄다. 연주암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사찰과 암자가 있는데 연주대 못 미쳐 있는 연주암에 관악산의 모든 등산로가 모인다.

연주암은 관악산의 최고봉인 연주봉에 자리한 연주대 남쪽에 있다. 연주암에서 남쪽 능선을 계속 따라가면 장군 바위에 이르고, 북쪽 능선을 따라가면 마당 바위를 만나게 된다. 또 왼편으로는 무너미 고개를 지나 삼성산에 닿게 되며, 오른쪽으로는 자하동천이 있다. 연주암에서 자하동천 계곡을 따라 과천시로 내려가기까지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연주암은 본래 신라 문무왕 17년(677년)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관악사로 불리던 오늘날의 연주암은 조선 태종11년(1411년)태종의 첫째, 둘째 왕자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한다. 정상에 이웃한 연주대는 관악산의 절경으로 여기에 서면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왕위를 던진 양녕 효녕 두 대군은 여기서 궁을 보며 주군을 그리워하였다 하여 연주대가 아닌가.


김 선생은 산 입구 매점에서 군것질 거리를 찾았지만 나는 연주암에 가면 점심 한 그릇이 그냥 제공될 거라며 "그냥 갑시다"라고 고집 부려 빈손으로 갔다. 겨울 산그늘에서는 손이 시려오나 햇살에서는 이마와 머리 가득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한 시간 반을 오르니 연주암이다. 숨이 턱에 닿고, 허기가 한 술 밥을 채근하니 1시 반이었다.

연주암 식당에 이르니, 이게 웬일인가?
문짝에 이런 공고가 붙기를 11월 1일부터 점심 공양을 중지하기로 한다는 내용. 순간 오늘이 며칠이며 산에 오른 공복감을 어찌하나. 다시 산에서 내려가면 3시쯤. 전주 손님에게 헛말 한 듯하여 순간 아찔하였다. 내 배 고픈 것은 둘째다. 연주암에서 주는 점심 공양 중지 소식이 매스컴을 탈 일도 아니며 절 집에 항의를 할 일은 더더욱 아니나 당황할 노릇이다.


식당 안에 움직임이 있길래 기웃대니 밥그릇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들어가니 중단했다던 점심 공양이 예나 다름없이 나온다. 다행이다 싶고 전주 손님 대접을 제대로 하게 되니 마음이 놓인다. 비빔밥 한 그릇에다가 된장국 한 그릇이 전부이지만 시장이 반찬이라 어찌 이리 고마울까. 이 밥도 오늘이 마지막일지 내일이 마지막일지. 공고는 붙었으니 언제가 될지. 이 밥은 다만 밥 한 그릇의 의미는 아니다. 밥 한 그릇으로 사람들은 연주암을 정답게 기억한다.

뿐이랴. 이 밥은 자연보호도 된다. 점심을 절 집에서 주기에 망정, 사람들은 먹거리를 챙기지 않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오니 관악산은 늘 깨끗하다. 저마다 먹거리를 가지고 온다면 남은 음식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산은 금세 더럽혀질 것이다. 먹거리 없이 빈손으로 올 때는 골짜기마다 자리 잡을 먹거리 장사치들에게 슬 한 잔 걸치고 안주 몇 입 요기할 것이니 장시치들이 챙긴다손쳐도 남은 음식물 쓰레기로 산은 더럽혀질 것이다.

연주암은 밥 한 그릇으로 산 입구에서 연주암에 이르는 산길을 깨끗이 환경 정화를 한 공덕이 있다. 밥 짓고 국 끓이는 일도 얼마나 크고 힘들랴. 그 쌀 그 물은 산 정상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산발치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케도차로 실어 나르는 수고로 산은 단정한 몸가짐으로 자존심을 살렸는데 이제 더럽혀질듯하여 아차스럽다.

점심 공양을 이제 멈추겠다니 밥값을 따로 받는 것이 아니고 등산객들이 정성을 두고 가면 그 뿐, 그냥 가도 탓하는 이 없는 절집 인심만으로 운영하기 힘들었던 탓일까. 천원 이 천원 시주하면 결국은 내 입 즐겁고 내 배 부르니 등산객이 먹은 값을 하면 절 집의 노고에 작은 보탬이 안될까.

밥 한 그릇으로 산을 아낄 수 있다면 계속 되어야 한다. 절 집에서 13년간을 공양해왔던 이 일을 다시 중단 없이 하였으면... 남의 속을 모르니 무심한 객은 마음 한 켠 지나친가 하는 반성과 함께 욕심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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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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