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어두워지고 있는데도 새들이는 처음 해 보는 도리깨 타작에 신이 났다. 군소리 한마디 없이 일을 제법 잘 한다.전희식
다시 밭으로 와서 들깨 두벌타작을 하려고 봤더니 며칠 전 내린 비 때문인지 깻대가 아직 다 마르지 않고 꿉꿉하여 한 번씩 뒤집어 주면서 비실거리는 가을햇살을 혀를 끌끌 차면서 원망스레 쳐다보았다. 늘 그렇지만 밭에 와서 보면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거리가 여기저기서 불거진다. 지난번에 호박을 몇 구루마나 따왔건만 밭둑 덤부렁 속에는 커다란 누렁 호박이 몇 개나 숨어 있었다.
넝쿨을 헤치면서 호박을 끌어내고 있는데 저쪽 아랫길로 아들 새들이가 가방을 휘휘 내저으면서 오는 게 보였다. 2-3km 되는 학교 길을 걸어서 오는 중이었다. 나는 모른척하고 허리를 굽혀 계속 일을 하고 있는데 이 녀석이 나를 봤나보다.
내게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반대로 돌리고는 살금살금 걸어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발자국 소리도 안 나게 도둑고양이처럼 도망가는 새들이가 길모퉁이를 막 돌아갈려는 찰나에 내가 능청스레 불렀다.
"새들아..."
"어? 아. 네... 아빠."
"내가 새들아...라고 부르면 너는 어떤 느낌이 드냐?"
"아무 생각도 안 드는데요? 왜요?"
"이 촌놈. 아무 생각도 안 들긴. 아빠가 또 무슨 일을 시키려고 날 부르나 싫은 기분이 들것 같은데? 안 그러냐?"
"아...뇨."
"그럼 됐다. 집에 가서 대야하고 괭이 좀 가져오너라. 돼지감자를 좀 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