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논의 바라지 않는 속셈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 43>

등록 2002.11.12 14:48수정 2002.11.1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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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한달여 남기고 막바지 국면에 접어들면서 ‘단일화’가 화두가 되고 있다. 이렇다할 정책 이슈가 없는 상태에서 ‘단일화’논의 자체가 의제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한나라당 후보에겐 여간 불리한 일이 아니다.

그것도 단일화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보다 우세한 현실에서 ‘단일화’논의 자체를 부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11일 한국갤럽이 KBS와 함께 실시한 대통령후보 지지도조사에서 후보단일화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은 42.3%로 지난주에 비해 4%포인트 상승한 반면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36.3%로 2.6%하락하는 추세다.

선호하는 단일후보로는 정몽준 후보(42.2%)와 노무현 후보(40.4%)로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후보단일화 필승론이 나올 법하고 이를 위한 양당간의 협상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현상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단일화 논의에 대해 긍정적인 여론을 따른다면 양 후보는 하루빨리 단일화해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라는 논지의 사설을 써야하는 게 신문의 정도다. 그게 이 시점에서 해야 할 메이저 언론의 올바른 의제 설정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일찌감치 후보단일화논의에 쐐기를 박고 나섰다. 이념과 노선이 다른 정당간에 후보단일화논의는 허구요, 사기라는 시각이다.

11월 4일자 사설 ‘후보단일화와 정당의 정체성’을 보자. ‘후보단일화’움직임을 보는 시각은 무조건 ‘안된다’이다. 그 근거는 정당의 존립근거인 정치적 정체성을 뭐가 뭔지 모르게 헷갈리게 만드는 결과를 빚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책과 이념에서 전혀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양 후보간의 단일화 추진력은 ‘누구는 안 된다’는 특정한 후보에 대한 거부감밖에 없고 당초의 이념적, 정치적 스펙트럼을 스스로 부정하는 모습‘이라고 거부이유를 밝혔다.

사실 노무현 후보측은 이점 때문에 단일화 논의 자리를 계속 거북해 했고 그때마다 ’태생이 다르다‘는 논지를 펴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선거 막바지 국면에서 전술적 전환을 선택한데는 그 나름의 배경이 있다.

노 후보측은 단일화협상단에게 전권을 위임하면서 아마도 최대한 '프리핸드'를 준 것으로 보인다. 지난 주말에 나온 TV토론 후-여론조사방식제안은 그동안 선호해온 국민경선방식과는 크게 차이가 있고 그 점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정몽준 후보측은 대의원경선형여론조사라는 역제의를 내걸어 팽팽한 긴장감을 드러냈다.

결국 타후보로 단일화는 안된다(NO)라는 배수의 진에서 똑같은 속셈을 드러내고 있는 듯 보이나 결정적 대타협 국면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의 단일화 여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지난 97년 DJT연대를 상기하는 건 그만큼 시점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5년 전 11월 3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는 김대중-김종필-박태준 세 사람이 손을 잡는 대타협이 있었다. 당시 이들 3인을 묶은 고리는 내각제와 반창(昌)연대. 그때까지 이회창-김대중의 지지율 곡선은 팽팽한 박빙의 승부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경선불복으로 끝까지 나온 이인제 후보의 여당표 깎아먹기까지 가세해 결국 승리를 얻어낸 회심의 빅카드였다.

이때 손잡은 국민회의나 자민련이 당의 정체성을 도외시한 전술적 선택을 한데는 역시 ‘누구로는 안된다’는 연대감이 크게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들 공동정권은 붕괴하는 양태를 보이고 있고 박태준은 한나라당에, 김종필은 중부권 신당에 전선을 구축해 ‘권불십년’을 실감케 하고 있다.

이때에도 조선일보나 중앙, 동아는 목소리를 높여 DJT연합을 반대하긴 마찬가지였다. 내각제는 허구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속내는 오랑캐로 오랑캐를 견제하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또는 분리하여 싸우게 함으로써 어부지리를 얻고 대권창출에 일정한 역할을 하려는 속셈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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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인철 (전 중앙일보 문화부장) ⓒ 희망네트워크

그러나 이런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사설은 당당하게 주장한다. 그 논거는 역시 당의 정체성이요, 노선이다. “정치에서 정체성이란 승리를 당당하게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좌절과 역경을 딛고 정치적 부활과 재생을 가능케 하는 디딤돌”이라면서 “지금 민주당과 정몽준측에 요구되는 것은 당장의 필요와 본연의 입장을 적당히 편의적으로 얼버무리지 않는 정치적 투명성"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선의의 충고’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노 후보쪽이나 정몽준쪽의 단일화 압박감이 너무 크고 국민은 빨리 합쳐 대오를 갖춰줄 것을 바라고 있다. 이런 때 정치의 원론적 정체성을 요구하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요, 그러기엔 ‘대세론’의 바탕 위에서 정체성을 따지지 않고 정치철새들을 마구잡이로 받아들이는 한나라당의 행태도 너무 무원칙하다.

덧붙이는 글 |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는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모니터링 칼럼을 이어가고 있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방인철씨를 비롯해 김택수 변호사, 이용성 한서대 교수, 김창수 민족회의 정책실장,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 권오성 목사,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권오성 목사, 소설가 정도상씨,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김근식 교수, 권오성 수도교회 목사, 대학생 오승훈씨, 문학평론가 김명인씨 등 각계 전문가가 함께 하고 있다.

독자로서 필진에 참여하고자하는 분들은 희망네트워크 홈페이지(www.hopenet.or.kr)「독자참여」란이나 dreamje@freechal.com을 이용.- 편집자주

덧붙이는 글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는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모니터링 칼럼을 이어가고 있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방인철씨를 비롯해 김택수 변호사, 이용성 한서대 교수, 김창수 민족회의 정책실장,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 권오성 목사,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권오성 목사, 소설가 정도상씨,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김근식 교수, 권오성 수도교회 목사, 대학생 오승훈씨, 문학평론가 김명인씨 등 각계 전문가가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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