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의 우주선(宇宙線)을 찾아

Masami Tsuda의 만화 <그 남자! 그 여자!>

등록 2002.11.17 21:14수정 2002.11.2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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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그 남자! 그 여자!> 14권의 표지

<그 남자! 그 여자!> 14권의 표지 ⓒ 학산문화사

만일, 주로 여성 작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며, 여자와 남자라는 존재들이 주고받는 사랑, 그로 인한 갈등 등을 지극히 선남선녀들만이 주인공으로 출현할 수 있는 그림체로 묘사해 내는 만화의 한 범주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순정 만화’라고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순정만화'는 사람의 순수한 마음 중 하나라고 여겨지는 사랑을 주제로 한다. 그래서 그것은 많은 여성들의 심금을 울리는 한편, 남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공감은 가면서도 순정만화가 그네들의 남성성을 시험하려 한다고 인식되기에 그것을 꺼리게 하는 속성을 지닌다.


순정만화에 대한 간단한 생각이 이러하다고 가정하고 그것들을 내용적인 줄로 또 나눈다면, 그것들 중에서도‘학원물’적인 요소와 결합해서 학교라는 특정한 장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10대들의 밀고 당기는(?)사랑과, 클럽 활동의 낭만 따위 등을 주제로 하는 만화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 할 수가 있다.

사실 이‘학원물’적인 모습을 한편으로 가지고 있는 순정만화는 현재, 그 수요나 그것을 주제로 한 작품의 수가 많다는 것으로 보아서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궁극적으로 여성 만화 창작 집단으로 잘 알려진 CLAMP의 <카드캡터 체리>, <아기와 나>로 유명한 Marimo Ragawa의 고등학교 테니스 부원들의 이야기를 다룬<저스트 고고>,Masami Tsuda의 <그 남자! 그 여자!>, 극 부유층을 주로 묘사하고 있지만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설명 할 수 있는 Hana Yori Dango의 <꽃보다 남자>,국내 작가 천계영의 <언플러그드 보이>등의 작품들이 그 예다.

이 ‘학원물’적인 모습이 들어간 순정만화의 장점은 어른들에 비해 그나마 풋풋한 맛을 풍기는 사랑을 하는 10대들의 모습을 나타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준다.(그다지 공감은 얻지 못하지만)

그리고 순정만화라는 좀더 상위적인 개념으로 보아야겠지만, 이러한 작품들은 무뇌(無腦)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감성을 역설적이게도, 작가가 세밀히 분석하고 깊은 사고의 과정을 통해 나름의 개연성을 가진 이야기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이야기 전개로 보았을 때 견고한 작품을 접하는 데에 따르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하기에 만화가 무뇌(無腦)의 창작물이므로 만화를 보면 시간을 낭비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역시 무뇌(無腦)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순수한 감성을 주제로 하는 순정만화를 같은 맥락에서 폄하하는 것은, 일면만 보고하는 말이라 느껴진다.(그 만화 볼 권리를 빼앗기는 대상은 그분들의 자녀들이기에 하는 소리다.)

Masami Tsuda의 만화 <그 남자! 그 여자!>역시 ‘학원물’적인 범주에서 인간의 감성을 작가가 세밀히 분석해서 만화라는 틀로 나타낸 ‘탱탱한’ 순정만화라고 할 수 있다.


그 남자! 그 여자!

‘유키노’는 세련된 면모와 굳건한 우등생이미지로 자신을 표현하는 당차고 똑똑한 고등학생. 그녀는 항상 자신을 완벽한 겉모습으로 포장하려한다. 하지만 실제론 집에서 커다란 돋보기안경을 쓰고, 촌스럽기 그지없는 새빨간 체육복을 입고, 작은 일에도 전전긍긍하는 이중적 자아를 가진 아이. 작품 속에서 ‘그 여자’라고 칭할 수 있는 여주인공은 유키노다.

반면 작품 속의 ‘그 남자’라는 이는 마찬가지로, 학교 시험에서는 항상 1등을 놓치지 않고 대학 입시를 위한 전국 모의고사에서는 손가락 안에 드는 수재에, 만능 스포츠 맨 이고 미소년이기까지 한 ‘아리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아리마 역시, 유키노처럼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내면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또 다른 세계를 가진 인물.

<그 남자! 그 여자!>라는 만화 속 두 주인공들은 학교 교정이라는 특정한 장소 속에서 만나게 된다. 그리고 많은 오해와 감정의 상호 작용을 끝으로 연인이 된다.

비슷한 사람끼리 호감을 가진다고 누군가 그랬던가, 그 남자와 그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세계를 밖으로 완벽함이라는 철옹성으로 감싸는 그들. 하지만 여자 주인공인 유키노는 그러한 철옹성을 끝까지 지키진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완벽한 이미지와 기계적인 가식을 버림으로써 많은 친구들과의 우정이라는‘행복한 구속’을 택하게 된 것.

하지만 남자 주인공인 아리마의 경우는 다르다. 친구들을 대함에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여자 친구인 유키노를 대함에 있어서까지 자신 내면 깊숙한 상처, 그것으로 얼룩진 세계만은 굳게 잠근 채 오지 말라고 한다.

여기서 얼룩진 세계라고 함은, 아리마의 버림받고 학대받았던 유년시절과, 친척에게 입양되어 지금은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는 친근한 존재들과 살아가지만, 마음한구석에는 자신을 버리고 학대했던 진짜 부모라는 존재들을 증오하면서도 알지 못할 이끌림을 느껴 괴로워한다는 것.

만화 <그 남자! 그 여자!>는 이렇듯 이중적 자아를 가진 인물들이 연인이 되고, 그 이중성으로 하여금 갈등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담하지만, 세심한 시선으로 풀어내서 독자들로 하여금 감성에 호소하게 하는 또 하나의 순정만화의 전형이다.

감성의 우주선(宇宙線)

a <그 남자! 그 여자!>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그 남자! 그 여자!>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 라이코스

그렇지만 만화에서 주목하는 ‘감성’이라 하는 것은 다소 복잡하다 못해 정교한 설정인 듯 하다. 아리마와 유키노, 그네들은 고등학생이다. 그리고 불과 몇 달의 시간이 흐르면 대학 진학을 하게 되고, 사회 진출을 하여 어른이 된다. 그렇지만 이 고등학생과 어른을 나누는 기점인 불과 몇 달의 시간은 무언가 무게감이 있다.

실제로 ‘어른’이라는 말이 풍기는 느낌은 모든 것을 혼자서 처리하는 ‘감성적, 이성적 안정’을 생각나게 하고, ‘고등학생’이라는 이들은 무언가 그러한 것들의 중량감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여하튼 ‘감성적 안정으로의 과도기’에 있다 할 그들의 심리상태는 사춘기를 벗어났거나 벗어나는 기로에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만일 내가 떳떳치 못한 점이 있다면 어른이 됨 과 동시에 남들에게 내 진솔한 면을 보여 줄 것인가, 아니면 계속 딱딱한 껍질로써 감싸 혹시 라도 입게 될 상처로부터 자신을 감쌀 것인가 하는 두 가지 갈래의 길 중 하나를 찍을 것을 강요받는다.

어른이 되기 전, 진솔함으로 다가서지 못했던 이들을 진심으로 대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중적 자아와 세계를 버릴 것인가와 그렇지 않을 것인가로, 유키노는 전자를 택한다. 그렇지만 단행본 14권까지 나와 있는 내용으로 아리마는 아직까지 후자에 속한다. 그 결과로 유키노는 친구들과 진실하고 탄탄한 우정을 쌓지만, 아리마는 여전히 자신의 겉모습으로만 주변인들을 대한다.

만화 <그 남자! 그 여자!>의 시선은 이렇듯 우주선(宇宙線)과 같이 미세하지만 그 희소성으로 하여금 가치 있다 할 고등학교에서 어른으로 가는 이들의 ‘감성적 안정, 자아의 진실성’에 주목한다.

이러한 ‘감성적 안정으로의 우주선’을 채취하기 위한 설정으로 작가는 만화에 등장하는 이들이 제각기 고등학생 시절을 마감 함 과 동시에, 직업에 대한 별다른 부담감과 미래에 대한 별다른 불안 없이 제 갈 길을 갈만한 나름의 개성과 능력을 가진, 특출한 우등생, 고등학생 소설가, 모델 등으로 규정해 낸다.

이것은 이 만화가, 기존의 여러 가지 학원물이 가미된 순정만화들이 말미에서 미래에 자신이 무얼 할 건가에 대한 부담감을 표시하는 것과 견줄 때 조금 다른 면모다.

한마디로 만화의 주제는 주인공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아니다. 그보다는 아리마가 어른이 됨으로 해서 이중적 자아를 버릴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에 관련한 진솔성의 자아 찾기다.

이렇듯 ‘감성의 우주선(宇宙線)’을 찾는 만화<그 남자! 그 여자!>는 그 이야기에 걸맞는, 주로 세필(細筆)로 된 선과 깔끔하게 가미된 스크린 톤 처리에서 느껴지는 세밀한 그림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림체와 이야기 전개가 일치하는, 안정되고 무언가 정리된 만화라는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그 남자!그 여자!>는 현재 만화책으로 14권까지 나와 있는 상태이고, 이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은 투니버스와 KBS방송국에서 방영되는 등, 한국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출판사:학산 문화사
작가:Masami Tsuda
가격:3000원

덧붙이는 글 출판사:학산 문화사
작가:Masami Tsuda
가격:3000원

그 남자 그 여자 1 - 지금 이 순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당신을 위한 따뜻한 사랑 이야기 90

이미나 지음,
걷는나무,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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