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테러 사건이 터진 지도 한 달이 지났다. 9.11 테러 및 알 카에다와 연관지어 1년 1개월 1일 만에 벌어진 계획된 테러라는 둥, 알 카에다가 준비해 놓은 테러를 속속 진행중이라는 둥의 온갖 추측과 소문의 진원지가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모든 것은 불분명한 상태다.
한국에서는 대선 전야의 분위기와 맞물려 이미 관심이 식은 상태이지만, 태국에서는 시티은행 내부 보고서에 제 2의 동남아 테러대상국으로 태국이 지목되었다고 해서 탁신 총리와 미대사관 관계자가 성명을 내놓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적어도 동남아에서 테러위협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발리 테러와 관련해 세계인의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이 동남아에 조직되어 있다는 즈마아 이슬라미아(Jemaah Islamiah 또는 자마아 이슬라미야-Jamaah Islamiyah)의 존재와 이 조직의 대부격으로 지목된 아부 바까르 바시르(Abu Bakar Ba'asyir)이다.
이미 9.11 테러 이후부터 알 카에다와 연계된 조직으로서, 그리고 그 조직의 핵심인물로 즈마아 이슬라미아와 바시르는 지목되어 왔다. 911 테러에도 즈마아 이슬라미아와 바시르가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이 이미 올해 초부터 제기되었으며 지난 8월경에는 싱가폴 정부측에서 테러관련 용의자들을 체포하는데 있어 인도네시아 정부의 협조를 요청한 바도 있다.
각종 언론보도, 특히 말레이시아나 싱가폴 발의 소식에 의하면 즈마아 이슬라미야는 분명히 존재하며, 알 카에다와의 연관성도 충분히 있는 것으로 보이고, 바시르가 조직의 수뇌라는 것도 충분히 심증을 가질 만 하다. 그러나 정작 인도네시아에서는 그런 견해들이 대부분 부인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즈마아 이슬라미아의 존재를 허구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설령 즈마아 이슬라미아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은 말레이시아나 싱가폴의 경우에서이지 인도네시아 이슬람 사회에서는 등장해 본 적이 없는 조직이므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이미 충분히 조성되어 있는 반미 감정으로 인해 미국 및 그 동조세력들이 의도적으로 이슬람 세력을 테러 진원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반발감과 더불어 절대 다수인 이슬람 세력의 반감을 사지 않고자 하는 인니 사회 전체의 경향이 결부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왜 바시르는 즈마아 이슬라미아의 수뇌로서 발리테러의 배후인물로 지목된 것일까? 여기에는 바시르의 행적이 큰 영향을 미쳤다.
표면적으로 바시르는 인도네시아 무자히딘 협의회장(Majelis Mujahidin Indonesia: 무자히드-이슬람의 옹호자 혹은 알라를 위한 전사, 무자히딘-무자히드의 복수)이라는 공식 직함을 가지고 있으며 종교강연을 하러 다니는 선생이다.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근본주의에 가깝다고 할만큼 엄격한 이슬람 원칙을 고집한다. 그의 이런 경향은 이미 70년대 말 80년대 초부터 시작되어 이슬람을 근간으로 하는 인도네시아 건설 운동에 힘썼고, 이 결과 당시 수하르토 정권에 의해 쫓기는 신세가 된다.
2억이 넘는 인구 중 88% 이상이 이슬람이라고 생각되는 인도네시아는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와는 달리 국교를 이슬람으로 삼는 국가가 아니다. 헌법의 상위정신인 빤짜실라(Pancasila)는 국민에게 신앙에 대한 의무를 부여하고 있지만, 그 신앙의 선택은 자유롭다. 수하르토는 이슬람 세력이 국정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은 인물이다. 국가발전에 저해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수하르토에게 쫓겨 바시르가 옮겨간 곳이 말레이시아였다. 바시르는 98년 수하르토가 물러날 때까지 10년이 넘는 세월을 말레이시아에 머물렀으며 다양한 종교활동을 벌였다고 한다. 바로 이 대목이 즈마아 이슬라미아와 바시르를 연결짓는 고리이다. 이 기간 동안 바시르는 즈마아 이슬라미아의 조직과 활동에 깊숙이 연관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바시르 쪽에서는 말레이시아에서 생활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종교적 가르침을 주며 바른 생활을 권장하는 활동을 했을 뿐이라고 한다. 말레이시아에는 상당한 수의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진출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바시르의 말레이시아 생활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바시르와 그의 추종자들은 외국의 시각으로 볼 때 급진적이고 과격한 이슬람 세력으로 보여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들에게 인도네시아의 온건한 이슬람과 종교와 일치되어 있지 않은 국가의 정체성은 원래의 이슬람에서 벗어나 있다. 이슬람 법과 경전을 원본대로 올바르게 추구하는 것이 그들의 지향점이다.
그 이상을 추구하는 길이 다른 종교나 다른 이념과의 충돌을 동반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상과 현실적 상황이 충돌할 때 그 이상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과 희생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희생으로 생각된다.(이와 관련해서는 이어지는 알 무크민 학교 방문기를 참조해 주십시오.) 그들의 이상을 향한 아름다운 희생이 그들과 같은 종교나 신념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의 동의하지 않은 희생을 불러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최근 발리 폭파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암로지가 자백한 바에 따르면 자신의 두 형제 및 다른 동료들이 범행에 가담했다고 한다. 이 중에 그의 형과 동생은 알 무크민학교 졸업생이었다. 암로지는 말레이시아에 가서 지낸 적이 있으며, 당시에 바시르의 강연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바시르의 옹호자들은 이전에도 바시르가 가르친 학생들이 테러행위에 연루되었다고 해서 그 선생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해왔다. 그가 가르친 수많은 학생들 중에 일부의 행동으로 인해 그에게 책임이 전가될 수는 없다. 그러나, 즈마아 이슬라미야 활동가들에게서, 발리 테러 사건의 범인들 속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바시르의 이름은 그를 자유롭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바시르가 테러조직과 관련되어 있는 지의 여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바시르는 그의 주장대로 신실한 종교 선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이슬람 원칙을 고집하고 그 이상의 추구를 찬미하는 태도가 여러 테러 관련자들에게 중요한 사상적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 것 같다.
바시르가 테러리스트라는 오명을 벗고 싶다면, 종교원칙을 강조하는 교육만큼이나 사람에 대한 자애를 강조하는 교육도 병행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