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국민은 눈감고 귀막아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선거법 자의해석 지나쳐

등록 2002.11.20 13:39수정 2002.11.2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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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게시물 삭제를 요청해온 대전선관위의 공문

게시물 삭제를 요청해온 대전선관위의 공문 ⓒ 정세연

대전외국인노동자종합지원센터 김봉구 소장은 최근 대전시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며 항변하고 있다.

김씨는 최근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언론을 통해 보도된 각 대선 후보의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정책을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최근 대전시선거관리위원회가 김씨의 글을 선거법 위반이라며 각 단체에 삭제 요청했고 모조리 삭제 당한 것.

김씨는 "어이가 없다"며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방할 의도가 아니라 순수하게 외국인노동자 관련 정책을 소개한 언론 보도 내용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게 왜 사전선거운동이냐"며 항변하고 있다.

부산에 사는 공득근씨도 마찬가지 경우다. 공씨는 대전의 한 시민단체에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게시했다가 선관위의 요청으로 삭제 당했다

공씨는 "정부 각료와 모 당의 국회의원을 고소해 수 년째 공방을 벌이고 있다"며 "권리와 명예를 찾기 위해 선거전부터 싸워온 사건이며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국민들이 알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취지에서 올린 글"이라고 주장했다.

공씨는 "국민이 알아야 할 당연한 권리를 선거법을 이유로 선관위에서 가로막는다면 선관위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며 게시글 삭제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시 선관위가 삭제요청을 한 글 중에는 단순한 정당 행사 일정공지도 포함되어 있다.

시 선관위가 최근 이처럼 선거법 제254조(선거운동기간위반죄) 또는 제255조(부정선거운동)에 위반되므로 선거관리위원회법 제14조의 2(선거법위반행위에 대한 중지·경고 등)에 의해 대전지역 각 시민단체에 삭제 요청한 글은 수 백건에 이른다.


이 때문에 선거관리위원회가 각 온라인 매체에 대한 선거법 규제가 지나쳐 오히려 국민 참정권을 제약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시 선관위 관계자는 "선거운동기간 전에 누구든지 특정 정당 또는 입후보예정자와 관련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은 게시할 수 없다"며 "법에 그렇게 명시되어 있다보니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단순히 어떤 기사나 글을 옮겨다 놓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의도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며 "특히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들은 판단하기 난감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현행법규가 있는 한 지켜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글 문맥상 특정 후보자를 지지 반대 또는 비방하는 글이 아닌데도 글쓴이의 마음을 예단하고 추측해 선거법 위반으로 몰고 가는 것은 모든 네티즌을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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