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쫄 굶는 라마단? 그러나 밤이 오면

<인도네시아의 창> 라마단의 빛과 그림자 1 - 빛 편

등록 2002.11.29 06:16수정 2002.11.3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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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금식월인 라마단이 인도네시아에서 시작된 지도 3주 정도가 지났다. 다음주면 금식월도 끝나고 기쁨의 명절인 이둘 피트리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비이슬람권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라마단의 이미지는 '쫄쫄 굶는다'인 것 같다. 한마디로 한 달씩이나 굶는다는 그 엄청난 사실에 일단 기선을 제압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대체 사람이 한 달씩 굶고 살 수 있는 게 어떤 형태인지 감이 오질 않는다. '물만 먹고 사나? 그래도 한 달씩 어떻게? 하여튼 무언가 방법이 있겠지.'

'라마단에는 쫄쫄 굶는다?'라는 말은 절반은 사실이고, 절반은 사실이 아니다. 밤낮의 명암처럼 상황이 뒤바뀌곤 한다. 적어도 인도네시아에서는.

라마단의 금식은 일반적으로 해뜨는 전후와 해지는 전후를 기점으로 이루어진다. 매일 매일 똑 같은 시간은 아니고 이슬람력 계산법에 따라 매일 몇 시 몇 분까지, 그것도 개별 지역마다 모두 다른 금식 시간표가 나오게 된다. 이 이슬람력 계산이라는 것이 아주 복잡하고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관계로 무슬림들조차도 잘 알지 못한다.

한국의 음력에서 설날이나 추석날짜 알 듯 미리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연초에 올해 라마단은 언제인가 물어보면 잘 모른다라는 대답만 들을 수 있다. 또한 종교청에서 계산해 발표한 라마단 시작일과 기간과 개별 종교단체 이슬람력 연구회의 결과가 달라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렇듯 연초에도 라마단 기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슬람력 계산의 특이성과 시차 정도가 아니라 도시마다, 날마다 다른 금식시간표 덕분에 딱 부러진 설명을 하기가 힘들다보니 라마단을 이해하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복잡한 시간을 어떻게 사람들이 맞출까? 대부분 텔레비전에서 시간표를 수시로 알려줄 뿐만 아니라 곳곳에 있는 회교사원에서 때가 되면 일제히 소리를 내서 알려준다. 특히 하루의 금식을 마칠 때에는 방송이든 라디오든 일제히 금식이 깨는 순간을 알리기 때문에 시계를 보며 초조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


금식은 대략 13시간 정도 이루어지며, 새벽녘에 시작해서 오후 6시 경에 끝나고 있다. (올해 현재 인도네시아 상황) 이 시간 동안 무슬림들은 어떠한 종류의 음식물도 섭취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물도 마시지 못할 뿐더러 심지어는 침을 삼켜서도 안된다고 한다. 물론 담배를 피우거나 다른 일들도 하지 못한다. 그저 굶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욕망에 관련된 것들을 금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통과 싸워 이기고 온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며, 나쁜 말, 나쁜 생각, 나쁜 행동들을 금하며 자신을 신앙적으로 정제하고 단련해 나가는 시간이 금식(인니어=뿌아사) 시간이라 하겠다.


그렇게 얻은 승리는 자신과의 싸움을 견딘 것이기에 성취감과 기쁨을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무슬림에게 라마단은 고통의 달로 불리워지기보다는 신성한 기쁨의 달로 지칭된다.

금식을 끝내고 난 후의 풍경은 금식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일단 금식이 끝나기 전부터 문을 닫았던 식당들이 문을 열 준비도 하고, 각종 음식가게들이 혼잡해진다.

하루의 금식이 끝나면 긴장해 있는 속을 풀어주기 위해서 주로 달거나 위장에 부담이 없는 음식들로 식사를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거리와 시장에는 각종 종류의 과자며, 떡, 음료수들로 넘쳐난다.

금식 때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굶으니 식비가 덜 들 것으로 생각되지만, 시장에 들른 주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라마단에는 식료품 가격이 오를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건강이나 금식으로 인한 허기 및 고통을 달래주기 위해서 다양한 특식을 준비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 것들을 준비하다 보면 더 많은 식비가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금식을 마치고 저녁에 식사를 하고 다음 금식의 시작을 위해 새벽에 '사후르'라는 식사를 하다보니 갑자기 인도네시아가 밤문화의 나라가 된 것 같기도 하다.

텔레비전의 방송을 보면 새벽에 시장에 몰려든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거나 주부들이 밤에 음식을 준비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그럴 때보면 갖가지 종류의 음식들이 준비되어 사람들이 식사에 전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 한 텔레비전에서는 금식을 끝내자마자 음식에 달려들어 폭식을 한 후 병원에 실려가는 한 친구의 모습과 다른 친구들이 걱정하는 내용의 만화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런 계몽성격의 만화가 필요한 것은 온갖 욕망을 견디라는 라마단 원래의 의미를 살리고, 폭식으로 인한 건강문제를 홍보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밤에 음식을 가득 쌓아놓고 이것저것 먹는데 열중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렇게 먹을 걸 왜 그렇게 힘들게 굶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고통을 견디어내는 시간이니 쫄쫄 굶으리라 예상했을 때는 다소 놀랍기도 한 풍경이다. 하지만, '고통과 싸워서 이겨내는 승리를 얻었으니, 자축의 의미로 그런 것인가?'라고 달리 이해하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인도네시아에서 라마단의 풍경은 쫄쫄 굶는 라마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각종 다양한 음식들과 특식들로 입맛을 돋우고 사람들이 다같이 어울려 더 가까이 지내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는 친화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때 사람들은 일상활동을 축소하고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과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어울리는 시간을 가진다.

물론 이러한 인도네시아의 라마단 풍경이 반드시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도 똑같으리라고 상상할 수는 없다. 이것은 각종 연유를 물을 때마다 다양한 종류의 무슬림들이 반드시 언급하는 '해석'의 문제일 것이다. 각자의 해석의 자의성에 상당히 관대한(?) 것 같다는 것이 최근 만나서 인터뷰했던 무슬림들로부터 받은 인상이다.

원래 라마단의 상징적인 음식은 '꼴락'이라고 불리는 대추같기도 한 절인 음식이다. 이 음식은 중동에서 넘어왔다고 하는데, 이외에 고유한 라마단 음식이란 게 별로 없다고 하니 원래의 이슬람 전통은 금식을 끝낸 후에도 그다지 많은 식사를 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인니에서는 다양한 음식들이, 특히 떡, 과자 등의 종류들이 라마단 기간에 맞춰 등장하고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 보편화된 것 같다. 이런 음식들은 대체로 인니 전통 음식들이라고 한다.

질밥을 뒤집어 쓴 어느 무슬림 여성은 금식기간에 식비가 줄어들지 더 많이 들 이유는 뭐냐고 내게 반문을 했고, 한편 또 다른 이슬람 가정은 저녁을 위해 준비했다며 한 솥을 끓여 놓은 고기오뎅국과 푸딩, 카스테라, 튀김, 도넛, 과자류, 과일 등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느 것이 이슬람의 진짜 모습이냐고 묻는다면, 그들의 말대로 해석의 문제일 것이다.

자카르타의 한 까페 밀집 지역에서 만난 한 청년은 자신은 무슬림이며, 이슬람 전통을 존중해주는 것은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청년은 평소에는 맥주나 술을 마시지만, 지금은 라마단 기간이라 술마시기를 자제하고 있다고 했다. 원래 무슬림은 입에 술을 대서는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청년의 발언은 사뭇 놀라웠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것도 해석의 문제라는 말이었다.

위의 청년 같은 경우는 다분히 그 해석의 여지란 게 고무줄 내지는, 사이비 수준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느긋한 해석의 태도는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장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중동 이슬람 국가에서는 인도네시아 이슬람을 정도에서 좀 벗어나 있는 해이한 이슬람으로 본다는 이야기를 여러 친구들에게 들은 적이 있다.

이슬람과 관련된 다양한 모습이나, 행동에 관한 모습들을 접하면 인도네시아 이슬람은 상당히 현지 문화에 동화된 채 혼존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런 모습들이 온건한 이미지의 인도네시아 이슬람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원칙을 따라가되 현상과 대치하지 않고 끌어안는 특성을 가진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중도적 성향이 이런 연유로 형성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쫄쫄 굶은 무슬림들만 생각했다가, 밤만 되면 갑자기 야행성이 된 것처럼 갖가지 종류의 떡, 과자 및 음료수를 내오면서 즐겁게 식사하고 즐기는 것을 보면 우리의 명절이 다가올 때 집안 풍경들이 떠오른다. 밤이면 다양한 쇼와 아름답고 화려한 이슬람 전통의상을 입은 출연자들을 보면서 독특하고 보기 좋다는 생각도 든다.

하루의 절반을 고통과 싸우면서 자신을 이겼으니, 이제 그 밤에는 자신들의 승리를 자축하는 연회를 좀 벌여도 좋은 게 아닐까? 고통을 통해 즐거움의 가치를 잘 알 수 있듯이, 반대로 즐거움이 없다면 고통도 별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평소에는 신경쓰지 않고 부주의했던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며 매사에 삼가고 조심하는 경건한 모습은 종교인이 가져볼 만한 필요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굶음'의 고통을 통해 가지지 못한 다른 형제들의 고통을 되돌아 생각해 보며 그들의 아픔을 공감한다는 것도 좋은 일이다. 사람들을 도우러 다니는 미담이 자주 소개되고 권장하는 풍속도 사회적 연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들 후에 오게 되는 식사의 기쁨과 더불어 승리를 자축하며 수많은 무슬림들과 함께 사원에서, 동네에서, 각종 프로에서 다같이 경험을 공유하고 즐거운 노래들을 부르거나 신나게 종교퀴즈들을 풀어보는 것은 고통 뒤에 응당히 주어져야 할 기쁨의 유희일 것이다.

라마단은 우중충한 고통의 시간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한 신실함과 즐거움으로 가득찬 시간이 될 수 있다. 인니 텔레비전에서 자주 나오는 광고 속의 이야기처럼.

"Lamadhan, Penuh Nikmat, Penuh Ampunan"- 용서와 즐거움으로 충만한 라마단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동시 송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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