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지금 안녕한가?

학생 인권 침해하는 불법 보충자율학습에 대한 우리의 주장

등록 2002.11.29 13:38수정 2002.12.06 11:19
0
원고료로 응원
인간의 인간다움이 지켜지는 비결은 자기 성찰에 있다.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능력이 없는 사람을 우리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학교의 학교다움이 지켜지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자기 성찰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학교는 결코 건강한 학교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자신을 향하여 물어보자. 학교는 지금 안녕한가?

얼마 전 EBS 교육방송은 일선학교에서 폭염 속에 강행한 여름방학 강제 보충자율학습의 실태를 보도한 적이 있었다. 유난히도 기승을 부렸던 살인적인 더위를 무릅쓰고 학생들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몇 대 돌아가는 선풍기가 전부인 찜통 같은 교실에서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잠을 자거나 잡담을 하는 학생들이 대다수였고, 책을 펴고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도 더위에 지쳐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헌법이 보장한 신체적 자유와 행복 추구권을 타의에 의해 포기 당한 죄수나 다를 바가 없었다.

방송이 끝나갈 무렵 한 여성이 화면에 나타났다. 학교에서 강행한 보충수업을 받지 않아 그것이 화근이 되어 학교를 그만두게 된 여성이었다. 보충수업은 희망자에 한하여 하도록 되어 있는데도 그는 보충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학교로부터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그는 공부를 등한시하는 학생도 아니었다. 자신에게는 효과가 없는 보충자율학습에 시간을 빼앗기느니 집에서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통하여 실력향상을 꾀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가 아무 잘못도 없이 학교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을 때, 그를 위로하거나 용기를 북돋아주는 교사는 드물었다. 오히려 여자가 그렇게 자기 주장이 강하면 사회생활하기가 힘들어진다는 전근대적이고 성차별적인 말을 충고랍시고 해주는 교사들도 있었다. 그리고 다수 교사는 그의 고통과 아픔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평소에 존경했던 교사들이었기에 그 충격은 너무도 컸고, 그 소외와 배신의 아픔에 눈물을 머금고 학교를 떠나야만 했다.

이런 기막힌 사연이 방송을 통해 소개된 이후에도 학교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달라질 수가 없었다. 학교는 이미 자기 성찰의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초등학교 학생이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어린 나이에 목숨을 버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지만 역시 학교는 아무런 동요조차 없다. 그것은 한 개인의 생명과 인권의 소중함에 대하여 민감하지 못하거나 교육철학이 없는 교육관료들에 의해서 학교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 시내 인문계(일부 실업계도 포함)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자유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난방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춥고 열악한 교실에서 180시간 내외의 상상을 초월한 보충수업과 밤 10시까지의 자율학습을 강행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과정이 얼마나 부실하기에 방학 중에 전교생을 대상으로 180시간을 보충해야만 하는 일이 발생하는가?

보충수업은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통해서 일정한 단계에 이르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배려해주는 수업이다. 하지만 그런 본연의 의미의 보충수업을 하고 있는 학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기초가 부족하거나 학업성취도가 뒤떨어지는 학생들은 학교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 사용해야 마땅한 방과후나 방학은 정상수업이나 다름없는 불법 보충자율학습에 자리를 빼앗겨 정작 도움이 필요한 부진아들을 더욱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원칙과 정도가 지켜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곳에 더 큰 손실이 생기기 마련이다. 수능시험이 끝난 3학년 교실을 돌아보면 그곳이 학교라고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학생들은 국민의 세금을 주고 산 학교의 첨단기자재를 통해 오전 4시간 내내 영화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집으로 간다. 학교는 이에 대해 거의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태이다. 대신 겨울방학이 한 달이나 남았는데도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방학중 보충자율학습 계획을 세우느라 여념이 없다. 학교는 지금 안녕한가?

지금 학교에서는 보충수업을 하고 있으면서 특기적성교육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혹자는 특기적성교육이 학교의 현실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그럴 듯한 변명을 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유발되는 용어 사용의 왜곡이나 공문서 위조로 인한 학생들의 도덕성 해이에 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그것이 무슨 대수냐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고 싶은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교육계의 현실이고 수준이다.


오늘날 학교사회에서 자율이란 용어는 타율과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강제적인 자율학습이란 모순적인 언어조합이 가능한 곳에서 우리는 미래세대인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그들은 학교에서 교사들로부터 공문서 위조를 배우고 말과 행동이 다를 수 있는, 달라도 좋은 굴절되고 왜곡된 도덕률에 길들여지고 있다. 자율보다는 타율이 손쉬운 행정편의주의가 가져온 심각한 폐해이다. 교육자가 아닌 관리자의 눈에는 아이들이 없는 것이다.

특기적성교육은 말 그대로 학생들의 특기를 살려주고 지원해주는 교육이어야 한다. 백 번을 양보하여 아직은 인문과목 위주의 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를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교육부의 지침대로 학생들의 자유의사에 따라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설강하여 학생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수업을 해주어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희망과목도 희망학생도 조사하지 않고 일방적인 교장단의 결정과 교사들의 수급상태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보충수업을 실시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현행 특기적성교육은 직접 수업을 하지 않는 교장이나 교감은 간접수당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음에도 이러한 상급관청의 지침을 어기고 상당액의 부당한 수입을 챙기고 있다. 그러면서도 보충자율학습이 학부형의 사교육비를 절감하기 위한 방책이라고 모순적인 말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부 학교에서는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지적하고 학생들의 바른 성장과 진정한 실력향상을 위해 교육정상화를 요구하는 양심적인 교사들을 오히려 불성실한 교사로 매도하고 있다.

학교 관리자나 강제 보충자율학습 관행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다른 학교에서 다 하는데 우리 학교만 안 할 수 있느냐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사실 이보다 더 궁색한 변명도 없지만 슬프게도 이런 현실론 앞에 맥을 못 추는 것이 우리 교육계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보충수업의 시행 여부를 교장단 회의에서 결정해서 발표하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헛된 말장난인지를.

건강한 사회는 현실론보다는 원칙과 정도를 지키기 위한 노력들이 모아지는 사회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 그런 노력과 고민들이 모아지고 있는가?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파행적인 보충자율학습으로 인해 학교 교육이 망가지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학교의 주인이요, 미래의 주역들인 청소년들에게 더 이상 굴욕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그들이 자신의 다양한 소질과 개성, 그리고 개인의 신념과 의지에 따라 소신 있게 행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경쟁력을 갖춘 인간으로 성장해갈 것이 아닌가.

학교는 지금 안녕한가? 불행하게도 우리의 학교사회는 지금 심한 중병을 앓고 있다. 특기적성교육은 오히려 학생들의 특기적성이 개발될 여지를 막아서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보충수업에는 보충의 개념이 없고, 자율학습에는 또한 자율이 존재하지 않는 모순된 현실을 아무런 반성 없이 자행하고 방치해옴으로써 학교는 이미 자기 성찰의 능력을 잃어버린 정신 적 지체아가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이다. 이제는 우리는 더 이상은 이런 망국의 교육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교육은 학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방학은 자연 기후조건으로 인해 학교를 잠시 휴업하는 상태를 의미기도 하지만, 학교 교육과는 다른 차원의 더 큰 공부를 자연과 사회를 통해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제부터라도 학교가 아이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하면서 특히 금번 겨울방학 중 특기적성교육과 자율학습을 실시하는 데 있어서 다음 세 가지 사항이 반드시 지켜질 것을 엄숙히 촉구하는 바이다.

첫째, 학생들의 자유의사를 무시한 채 전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보충수업(특기적성교육)과 자율학습은 엄연한 불법이며, 특히 난방설비가 채 갖추어지지 않은 춥고 열악한 교실에서 자율학습을 강제하는 것은 실제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신체를 구속하고 학대하는 비교육적이고 비인간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음으로 이런 잘못된 관행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학교가 상급관청의 지시를 어기고 불법적인 보충자율학습을 감행함으로써 교사와 학생들은 상급관청의 감사에 대비하여 공문서를 위조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학교장은 이런 망국적이고 반사회적인 일을 조장하고 방조한 책임을 통감하고 지금부터라도 그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감독관청도 이를 묵인하는 직무유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셋째, 학교가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회계가 투명해야 한다.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명분을 내세우면서 법에서 금한 간접수당 지급을 정당화하는 것은 바람직한 교육자의 처신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학생들의 자율적인 의사에 따라 하게 되어 있는 자율학습을 교사가 감독하는 일은 모순된 일이며, 더욱이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제성을 띤 자율학습을 통해 교사가 감독비를 받는 잘못된 관행도 사라져야 마땅하다.

이상의 내용을 엄숙히 촉구하며 이러한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때는 상급관청과 감사기관에 이를 고발하고 학교 교육이 정상화될 때까지 학교 현장의 아픔을 공유하는 양식 있는 교사들과 학부모와 연대하여 분연히 투쟁할 것을 엄숙히 천명하는 바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순천지역 겨울방학중 불법 보충자율학습을 저지하고 교육정상화를 촉구하기 위해 필자가 쓴 성명서 초안입니다. 여러분의 귀한 조언을 기다립니다. 성명서를 발표하는 단체명은 사건기사와 더불어 나중에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비정상적인 보충자율학습이 자취를 감추고 진정한 의미의 보충자율학습이 자리매김될 수 있도록  뜻있는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형들의 동참을 기대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순천지역 겨울방학중 불법 보충자율학습을 저지하고 교육정상화를 촉구하기 위해 필자가 쓴 성명서 초안입니다. 여러분의 귀한 조언을 기다립니다. 성명서를 발표하는 단체명은 사건기사와 더불어 나중에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비정상적인 보충자율학습이 자취를 감추고 진정한 의미의 보충자율학습이 자리매김될 수 있도록  뜻있는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형들의 동참을 기대해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