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의 대선의제와 이인제 탈당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 47>

등록 2002.12.02 11:19수정 2002.12.02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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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 정국을 맞이하여 '독과점 신문'들은 곤혹스러울 것이다. 독과점 신문들이 과거와 같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대선 의제 혹은 ‘시대적 의제’(동아일보, 2002년 11월 25일, 사설)를 설정해서 대선 구도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텐데, 여러 돌발적인 사건과 미디어환경의 변화 등의 이유로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인터넷 미디어의 성장과 MBC 등 방송미디어의 공정보도 등 미디어 환경 변화와 ‘여중생 사망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 노정 단일화 등으로 독과점 신문이 대개 선호해온 주요 대선 의제가 확고하게 설정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이념대결 등의 대선 의제가 노정 단일화에 휩쓸려 실종되었고 후보들의 미국관도 거론하기 쉽지 않게 되었다. 지역주의 구도도 부산 경남의 움직임에 따라 과거 대선과 달리 효력을 상실할 가능이 높다고 하겠다.

여러 평자가 지적했듯이 대개 독과점 신문들은 대선 의제를 김대중 정권 계승과 청산, 보수와 진보, 세대간 대결 등의 구도로 설정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선 구도는 한나라의 ‘합리적 진보론’이나 젊은 세대 접근 전략, 민주당의 ‘노무현정권론’으로 잘 먹혀 들어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새로 대두된 ‘도청 논란’이 ‘부패정권 청산론’이나 ‘공작정치론’ 등과 연결되어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청 논란'이 대선의 구도를 바꿀 정도의 중심적 의제가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선 향방이 불투명하므로 독과점 신문들이 노골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이미 중앙일보는 작지만 조·동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는 듯하다.

특히 조·동은 이념중심의 보혁구도를 지향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전의 냉전적 흑백논리와는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이분법적 색깔논쟁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책중심의 이념논쟁’(동아일보, 남시욱 칼럼, 2002년 11월 27일)을 제안하거나 비슷한 입장에서 국민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그려보는 잣대로서의 긍정적 이념검증(조선일보, 트렌드 & 아젠다, 11월 28일)을 제시하는 등 약간 변형된 이념대결을 요구하고 있다. 비록 과거와 다른 이념검증이라 하나 믿기 어렵고 이 제안에는 여전히 ‘급진과격’이니 불안한 국가관이나 역사관을 가졌다느니 하는 주장이 잠복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드디어 12월 1일 이인제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했다. 이인제 의원이 어디로 갈 것이냐는 알 바 아니지만 그가 탈당 기자회견에서 다시 이념문제를 거론하여 쟁점으로 만들려 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국민경선 과정에서도 노 후보의 이념을 끈질기게 물고늘어진 바 있는 그는 ‘급진 과격세력의 집권연장 기도’를 막아야 ‘정치불안, 사회불안, 대중영합주의’가 판을 치는 남미국가의 현실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냉전적 폐해도 문제지만, 급진 이념세력이 가져올 국가적 재앙은 더욱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인제 의원의 탈당선언을 평하는 신문의 논조들이 의미심장하다. 먼저 조선일보는 ‘당의 결정에 두 번이나 불복하고 두 번이나 탈당한다는 것이 정치적 자해와 다름없다는 사실은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본인도 번민이 더 컸을 것이고, 탈당 결정도 주위의 예상보다 더 늦춰진 듯’하며, '느닷없는 노풍에 휘들이고 그것이 격렬한 이념공방과 공작정치 시비로 번져 가는 장면을 보면서---노무현의 민주당에 그냥 남아있기는 심히 힘들 것이라고 예감하기는 했다(조선일보, 2002년 12월 2일 사설)’라고 동정적으로 접근한다.

마찬가지로 동아일보는 '그가 이념과 성향이 판이한 노무현 후보와 한 지붕 아래서 숨쉬기 거북했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며 ‘현 정권과 민주당에 의한 그의 비판과 지적에도 귀담아들을 대목이 적지 않다’(동아일보, 2002년 12월 2일 사설)라고 주장한다. 이인제의 탈당선언에 대한 두 신문의 논조를 보면 여전히 이념대결 구도에 대한 미련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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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성 한서대 교수 ⓒ 희망네트워크

도리어 이인제 의원의 기자회견은 ‘탈당의 이유로 거듭 제시한 민주당의 급진 좌경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심지어 한나라당까지 이번 대선의 대결구도를 보혁구도가 아니라고 부인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가 무슨 근거로 급진세력, ’편향된 급진이념에 포위된 정당‘ 운운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한국일보, 2002년 12월 2일 사설)’라고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렇다. 이제 보혁구도든 지역대결구도든 낡은 대선 의제들은 그전과 같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이인제 의원의 시대착오적인 발언과 그에 동조하는 듯한 조·동의 논조를 보면서 이번 대선은 낡은 대선의제(대결구도)가 사라져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새로운 대선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는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모니터링 칼럼을 이어가고 있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이용성교수를 비롯해 권오성 목사, 김창수 민족회의 정책실장,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지낸 방인철씨,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소설가 정도상씨,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김근식 교수, 대학생 오승훈씨, 김택수 변호사, 문학평론가 김명인씨 등 각계 전문가가 함께 하고 있다.

독자로서 필진에 참여하고자하는 분들은 희망네트워크 홈페이지(www.hopenet.or.kr)「독자참여」란이나 dreamje@freechal.com을 이용.- 편집자주

덧붙이는 글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는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모니터링 칼럼을 이어가고 있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이용성교수를 비롯해 권오성 목사, 김창수 민족회의 정책실장,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지낸 방인철씨,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소설가 정도상씨,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김근식 교수, 대학생 오승훈씨, 김택수 변호사, 문학평론가 김명인씨 등 각계 전문가가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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