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지금 꿈을 이뤄가고 있는 거야"

'꿈'에 대한 작은 생각의 변화에 대하여

등록 2002.12.02 12:14수정 2002.12.0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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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천안으로 취업을 나간 제자에게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대학 진학 여부를 알고 싶어 걸었던 전화에 대한 답장 형태로 온 편지입니다. 밤늦게 귀가하여 열어본 메일이라 바로 답장을 하지는 않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 맑은 정신에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그 밤과 이른 아침 사이에 저에게는 아주 중요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저는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꿈을 가지라는 말을 자주 들려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꿈을 갖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일등이 되고 최고가 되는 것만이 꿈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좋은 아버지가 되는 꿈'도 아주 훌륭한 꿈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학생들에게 해주었을 뿐입니다.

이제 저는 한 인간이 꿈을 갖는다는 그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자와 나눈 메일 편지를 통해서 그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너무도 소박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그런 작은 생각의 변화가 저에게는 중요합니다. 행복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생각의 작은 변화에서 좌우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제자와 나눈 편지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셨어요?

아침근무 끝나고 와서 메일확인을 하다보니 선생님께 메일을 보낸 지 오래된 것 같아 이렇게 씁니다. 지난번 선생님께서 저에게 대학추천을 해주시려고 전화하셨을 때 제대로 받지 못해서 죄송해요. 야간근무가 끝나고 잠들었을 때라 피곤해서 잠결에 전화를 받았나봐요. 선생님께선 저를 생각하시고 연락주신 건데.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너무 죄송한 맘이 많이 들었어요.

(…) 저도 제 꿈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요. 참 불행한 사람이죠. 선생님께선 저에게 항상 꿈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셨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 꿈이 뭔지... 전 오로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돈을 모으면 엄마 모시고 사는 게 제 제일 큰 꿈인 것 같아요. 그 생각으로 취업 나온 것이구요.

아빠 돌아가시고 고생 많이 하신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요. 엄만 저를 대학에 못 보낸 것을 미안해하세요. 그럴 때면 전 아니라고 내가 가기 싫어서 안간 거라고 대답하곤 하죠. 항상 선생님 말씀을 새겨듣고 꿈을 가지려고 노력하려구요. 함께 지낸 지는 몇 달 안되지만 저를 포기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정선에게

어제 선생님들하고 모임이 있어서 밤늦게 들어와 너의 편지를 읽었단다. 바로 답장을 쓰려다가 맑은 정신으로 널 만나고 싶어서 오늘 새벽같이 일어나 너에게 편지를 쓴다. 먼저 하고 싶은 말은 넌 결코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그리고 넌 이미 꿈을 이루어 가고 있다는 것, 이 두 가지를 꼭 말해주고 싶었단다. 혹시라도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고 밤새 입 속에 말을 담고 있었지.


꿈을 갖는다는 것은 더 좋은 대학을 간다든지 더 유명한 사람이 된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을 갖는 것' 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넌 엄마라는 분명한 사랑의 대상이 있고, 엄마를 고생시키지 않으려는 갸륵한 마음으로 대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선택한 거니까 넌 누구보다도 네 꿈을 위해 사는 사람이지.

최고가 되는 것만이 꿈을 이루는 것이라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면 가장 훌륭한 꿈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가 국민을 사랑하지 않는 대통령이라면, 자기 자신 외에는 사랑의 대상이 없는 불행한 대통령이라면 나는 그를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구나.

선생님의 오랜 꿈은 교사가 되는 것이었지. 그래서 서른 세 살의 나이로 첫 교단을 밟기까지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잘 헤치고 이 자리까지 온 거야. 그런데 만약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지 않는 교사라면 나는 꿈을 이루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을 거야. 학생을 사랑하지 않는 교사는 불행한 교사일 뿐이지.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내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지도 몰라.

이 세상에서 가장 안된 사람은 고난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일 거야. 고생해보지 않은 사람은 고생하는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없거든. 그의 고난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를 사랑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니 너는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금의 고생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었으면 좋겠구나.

다만, 가난이 너의 시야를 너무 좁게 하지 않도록 잘 단속하렴. 너는 불행한 사람이기는커녕 너무도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그런 너의 그 아름다움이 닫혀진 아름다움이 아니라 이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아름다움이길 바랄 뿐이야.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어질고 착한 마음을 더 많은 이웃들과 나눌 수 있기를 바랄 뿐이야.

돈도 열심히 벌거라. 하지만 너의 꿈의 자리에 돈을 앉히지는 말거라. 아무리 돈이 좋아도 너의 당차고 예쁜 마음만 하겠니? 너를 사랑하는 엄마 간절한 눈빛만 하겠니? 날이 추워지는데 너도 감기 조심하거라. 옷도 따습게 입고. 그럼 오늘은 여기서 글을 맺으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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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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