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시절의 딩링. 난징, 상하이, 베이징을 오가던 그 시절의 딩링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딩링기념관
딩링의 삶은 그녀와 마오둔(茅盾) 전문 연구가인 쭝청(宗誠)의 전기 ‘딩링’(다섯수레 간)을 통해 잘 소개되어 있는데, 젊은 날의 그녀를 보는 중심축은 미모의 그녀가 방종할 만큼 탐익했던 성(性)과 중국 문단을 놀라게 한 창작세계일 것이다.
먼저 1936년 난징(南京)에서 대장정군이 머물던 바오안(保安)으로 향할 때까지의 삶의 대강을 소개한다.그녀는 1904년 후난성(湖南省) 창더(常德)의 비교적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지만 1908년 아버지가 병사하면서 집안이 몰락한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가문에 맞서 성을 성메이(勝眉 수염난 남자보다 낫다는 뜻)로 이름을 무탕(慕唐 당나라 측천무후를 흠모한다는 뜻)로 바꾸는 등 독립의지를 키우고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어머니의 후원으로 딩링은 공부를 지속한다.
1918년에는 타오위안(挑源) 제 2여자 사범학교 예과에 입학했다가 1919년에 창사(長沙)여자중학교로 전학한다. 당시 54운동 이후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에 자신의 마음을 맡기기 시작하고, 1922년부터는 상하이, 난징, 베이징 등을 다니며 취추바이(瞿秋白) 등 문인과 교류를 시작한다. 또 이시기에 루쉰에게 도움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내, 그와 작지 않은 관계를 갖기도 한다.
1925년 딩링은 마음을 가다듬고 어머니를 만나는 한편 근공검학(勤工儉學 중국 유학생들이 프랑스 등지에서 일을 하면서 공부하는 형태. 덩샤오핑도 이렇게 유학했음)으로 프랑스에 가는 것을 상의하기 위해서 고향 창더에 간다. 하지만 어머니는 허락하지 않고, 대신에 그녀를 보고 반했다가 창더까지 따라온 후예핀(胡也頻)과 사랑을 시작하고, 1925년 가을에는 베이징에서 동거에 들어간다. 후예핀 이전에도 선충원(沈從文) 등과 교재했고, 연애나 결혼으로 자신을 구속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에게 불쑥 찾아온 사랑을 맞이하는 방식으로 동거는 적절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양대 문제작 중 하나인 ‘소피의 일기’를 1927년 겨울에 쓴다. 곰팡내 나는 하숙집에서 살아가는 소피를 통해 자신을 투사한다. 종잡을 수 없는 사고 속에서 번민하다가 자조와 자기 연민으로 결말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방황하는 당시의 신 지식인과 문인들의 삶을 잘 표출해 그녀를 문단의 중심에 끌어다 놓는다.
하지만 1928년부터 그녀는 자유연애보다는 후예핀을 평생의 반려자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고정하기에 운명은 너무 거칠었다. 1931년 1월 후예핀이 국민당의 검속에 걸려 체포되어, 2월 7일 처형되기 때문이다. 이후 그녀는 전해 태어난 아들 쟝주린(蔣祖林)을 어머니에게 보내고, 좌익문학활동을 본격화하는 한편 11월에는 공산당원 딩슈(丁休)와 동거에 들어간다.
1933년 5월에는 딩슈가 근거지를 누설해 판자이녠 등과 체포되지만 구명운동으로 목숨을 건지고, 난징 등지에서 구금되어 있다가 1936년 9월에는 당조직의 도움으로 대장정군이 종착지를 삼아 머물고 있는 샨베이(陝北)로 향한다.
사회주의 충실한 혁명 전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