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헌혈이 보편화될 수 있을까

<차이나소프트 - 문화 5>희생문화 부족 … 과도한 자기만족만 추구할 경우 문제

등록 2002.12.05 15:31수정 2002.12.05 18:22
0
원고료로 응원
왕푸징의 조형사진. 병마용의 병사와 소비를 결합시켰다
왕푸징의 조형사진. 병마용의 병사와 소비를 결합시켰다조창완
중국의 수도지만 베이징의 자연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다. 중국에서 최고의 단풍으로 꼽히는 향산(香山)의 자태는 내장산이나 설악산의 빼어난 단풍을 기억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동네 뒷산의 단풍보다 빛이 덜하다. 하지만 그 단풍보다는 차오위(曹?)의 소설 <북경인>에서 묘사되는 일본 점령시대의 우울한 초상이나 피윈스(碧雲寺)의 독특한 사원, 그리고 그곳이 담고 있는 쑨원이나 마오쩌둥의 역사가 있기에 향산(香山)의 깊은 맛은 살아난다.

차오위와 루쉰의 중국, 중국인

향산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명동격인 ‘왕푸징’도 가을의 맛은 너무나 독특하다. 우선 왕푸징 백화점의 뒷길로 난 샤오츠(小吃, 작은 먹거리) 골목은 더욱 풍성한 먹거리로 채워진다. 물론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병아리 꼬치구이나 쵸또우푸(두부를 썩혀서 만든 요리)가 눈과 코를 힘들게 하지만 그것 조차도 즐길 줄 아는 이들에게는 큰 즐거움이다. 물론 왕푸징 북쪽으로 난 후통(胡同)을 걷다가 라오셔차관(老舍茶館)을 만난다면 그곳에 들어가 꼭 그의 삶에 냄새를 맡아볼 일이다.

1966년 광기의 역사가 막 시작할 즈음 빼어난 문학가인 그는 그들을 그토록 평안한 세계로 이끌던 호수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밝혀지지 않은 그의 죽음은 문화대혁명의 시발점이었다. 어찌보면 유약하기 그지없는 지식인 문사의 죽음을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수천년의 교훈을 가진 중국이라지만 언제나 그들의 혁명도 피를 원했다. 피를 말하면 필자는 요즘 흥미로운 상상에 빠져든다. 바로 왕푸징에 2~3년전부터 헌혈차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헌혈. 중국에서 헌혈이 가능할까.

극빈한 삶과 자신의 피를 팔아 아들의 교육비를 댔으나 아들에게 버림받은 천방순씨 부부 모습
극빈한 삶과 자신의 피를 팔아 아들의 교육비를 댔으나 아들에게 버림받은 천방순씨 부부 모습진완바오 자료사진
내가 중국문학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만난 피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중국의 위대한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루쉰의 작품에서 만났던 피다. 루쉰이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지 못한 중국인을 묘사할 때 혁명가가 처형된 피를 만두에 발라 폐병에 걸린 아들에게 주는 인물로 묘사했었다. 혁명가의 성스러운 피가 무지한 민중에게는 생명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은유하면서 루쉰은 중국인의 지적인 성숙을 갈망했다. 또 다른 하나는 창작 초반기에 좀 기괴한 느낌의 작품을 써내던 위화(余華)의 ‘허삼관 매혈기’다. 인생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자신의 피를 팔아서 위기를 넘기거나 중요한 돈을 만들던 허삼관을 통해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던 중국인들의 삶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최근에 신문을 통해 두 소설에 못지 않은 인생사들을 만나면서 중국인들이 헌혈을 할 수 있을지를 더 곰곰이 생각해 봤다. 한 이야기는 ‘현대판 허삼관’의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 기사였다. 현대판 허삼관의 새 이름은 천방순(陳邦順)이다. 50세 가량인 그는 황량한 중국 서부 지역의 중간에 있는 칭하이(靑海)성 러두(樂都)현에 있는 고우탄(溝灘)촌에 산다. 사방이 황토의 대지인 그 땅이 생산해 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식구들이 연명하는 데나 쓸 만한 곡식이다.

그런데 그의 세 아들 가운데 큰아들 샤오량(小良)이 공부를 제법 잘했다. 부모는 고민 끝에 서부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이 모이는 교육도시 시안(西安)의 모 대학으로 자식을 유학 보냈다. 이때가 97년이었고, 아들은 유망한 전자자동화 전공이어서 부모의 기대감은 더했다. 하지만 한 학기 최소 5천 위안(우리 돈 80만 원 가량)가량 드는 학비 등을 포함해 아들의 교육비를 만들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천방순씨는 피를 팔아서 학비 등을 대기로 했다. 병원에 가서 때로는 석달에 한 번, 때로는 한 달에 한 번, 때로는 하루에 한 번씩 피를 팔았고, 때에 따라서는 하루에 세 번이나 피를 판 적도 있다.


4백cc를 뽑는 전혈로 1백50위안을 받고, 혈장을 뽑아서는 80위안을 벌었다. 한 달에 보통 3백~4백 위안을 벌 수 있었다. 몸이 좋은 해에는 한해에 5천 위안까지 벌었다. 6개월에 한 번 이상은 할 수 없는 법을 피하기 위해 그는 9개 매혈소를 돌아다니면서 피를 팔았다. 때로는 그 대신에 아내가 피를 팔기도 했다. 모두 아들 샤오량이 성공해서 집안을 일으키기 바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는 자식을 잘 가르쳤다고 생각했다. 2001년 연초에 아들은 베이징에 직장을 잡았다며, 방세 등을 포함해 4천 위안을 부탁했다. 당장에 돈이 없어서 2천 위안을 빌려서 보냈다.

왕푸징의 헌혈차. 왕푸징 뿐만 아니라 중대도시에서 헌혈차를 쉽게 볼수 있다
왕푸징의 헌혈차. 왕푸징 뿐만 아니라 중대도시에서 헌혈차를 쉽게 볼수 있다조창완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 연락이었다. 어디에 전화해도 아들의 연락처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2001년 12월 학교에서 아들을 담당하는 교수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리고 연락이 된 교수에게서 천씨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아들이 집의 상황을 숨긴 것은 물론이고 성적불량으로 제적위기에 있다는 말이었다. 천씨의 아들은 매일 PC방에서 채팅과 게임을 즐기면서 여기에만 한 달에 4백 위안 가량을 써 왔다는 것이다.


보통 2만5천 위안이면 졸업이 가능한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아들이 곱절이 넘는 돈을 쓰면서도 학교도 마치지 못했다는 것에 분노한 천씨는 아들을 여론재판식 프로그램인 ‘대화’에 화두로 올렸다. 중국인들은 그 소식을 통해 독생자녀로 자라난 자신의 자녀들이 훗날 자신들을 푸대접할 수도 있다는 우려와 더불어 매혈을 통해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서부지역 사람들의 현실을 인식해야 했다. 이 소식은 지난해 집단채혈로 인해 마을 전체인구의 2/3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허난성 샹차이현 한 마을의 소식보다 충격적이었다. 샹차이가 비극적인 남들의 이야기임에 반해 천방순씨의 이야기는 자신들에게도 잠복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매혈과 헌혈에서 보는 그들의 의식구조

또 다른 기사는 최근에 중국 대학가에 파고들고 있는 대학생 대상 ‘매혈’(賣血)에 관한 기사였다. 이 내용은 위화의 소설에도 묘사된 혈두(血頭, 피를 팔 사람을 고르는 두목)가 대학가에 파고들어 대학생들의 매혈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톈진대학이나 난카이대학은 물론이고 베이징사범대학 등을 배경으로 한 이 르포기사는 2백㎖의 피를 4백 위안 가량에 사는 대학생 대상의 매혈이 학생들 사이에 깊숙이 파고든다는 것이다. 사실 일반인의 월급이 5백 위안 가량이고, 외국 유학생을 상대로 한 개인교습(푸다오)도 3백 위안 남짓밖에 벌 수 없는 현실에서 이 정도의 수입은 상상 이상이다. 매체의 고발과 더불어 대학가 매혈에 대한 단속이 벌어지겠지만 매혈의 문제는 결코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반인들이 헌혈에 나서지 않는 이상 급속히 증가하는 혈액 수요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레이펑. 모범적인 삶과 희생정신으로 중국인들의 사표다.
젊은 날의 레이펑. 모범적인 삶과 희생정신으로 중국인들의 사표다.레이펑기념관
베이징시만 하더라도 일년 혈액 수요가 30만 개, 60여 톤에 달하지만 무상헌혈로 충당되는 양은 미미하다. 그렇다고 무상헌혈의 이야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유명한 한 보험회사가 헌혈차를 기증하고, 직원들이 헌혈에 적극 나서서 사랑을 실천하는 등 모범을 보이고 있지만 헌혈이 중국에서 보편화되는 데는 적지 않은 장벽이 있다.

바로 전체보다는 개인을 생각하는 중국인의 의식구조가 피 속 깊숙이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분명히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우리에 비해 부족하다. 당연히 타인을 위한 희생정신도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누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의 뉴스는 중국 전체가 소중히 다루고, 자신을 희생한 대표적인 인물인 ‘뢰이펑’(雷峰)은 마오쩌둥에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문혁의 초기 린비아오(林彪)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부각시킨 면이 강함에도 그가 계속해서 부각되는 것은 레이펑을 대신할만한 인물을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중국인들의 의식에는 공존을 위한 생각이 아직 부족하다. 그들은 돈을 벌면 자신의 행복과 안위를 위해 소비하는데 아무런 심리적 장벽이 없다. 이것은 소비뿐만 아니라 공중생활에서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옆에 사람이 서 있어도 미리 자신이 세 자리를 모두 확보했다면 세 자리에서 다리를 뻗고 잠을 자는 이들이 많다. 기차의 시발역에서만 좌석표를 팔기 때문에 중간에 내리는 이들의 자리는 공석이고, 먼저 앉는 이가 주인이다. 그래서 내린 사람의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좌석표를 갖고 오는 일은 없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 이들을 제지할 수 있는 이는 강단있게 좌석 공유의 권리를 주장하는 이다.

고속성장과 그 뒤안의 모습들

문제는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 중국인들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속에서 어떻게 현명한 소비를 해나가는가 하는 것이다. 2년 전쯤 중국 도시를 가봤던 이들이 최근 중국을 방문한다면 쉽사리 이전에 살던 길을 찾기 어려울 만큼 중국의 도시는 급변하고 있다.

레이펑 기념비. 그가 죽은 랴오닝성 푸순에 세워져 있다
레이펑 기념비. 그가 죽은 랴오닝성 푸순에 세워져 있다레이펑기념관
필자는 톈진의 대학이 집중된 한 지역에 산다. 이곳에서 전에 근무하던 직장이 있는 마창다오로 가는 길은 쑤앙펑다오, 시후촌따지에, 안산시따오, 신싱루, 시캉루를 거친다. 이 길은 올 1월 각각 1차선, 1차선, 2차선, 1차선, 1차선이었다. 하지만 쑤앙펑다오와 시후촌따지에는 8차선을 만들기 위한 거리 정비 작업을 이미 마쳤고, 안산시따오 등 다른 길은 이미 자전거 도로를 포함해 이미 8차선으로 확장된 깨끗한 도로로 바뀌었다. 불과 1~2달 만에 1차선을 8차선으로 바꾸었다. 이런 현상은 도시뿐만 아니다. 1년전에 발간한 지도에 전혀 표시되지 않는 고속도로가 착착 생겨나고 있는 것이 중국의 모습이다. 물론 이것은 중국이 발전하고 있는 한 측면이지만 중국 에너지 소비량이 급속히 증가하는 한 예를 보여준다. 또 어떻게든 돈을 번 이들은 근사한 소비를 위해 대형 할인마트는 물론이고 다양한 쇼핑몰로 밀려들고 있다. “개 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쓰라”는 격언은 중국인들의 금과옥조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런 소비의 뒤쪽에 중국의 대지는 멍들어가고 있다. 중국의 기온은 지난 얼마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영하 20도가 보통인 베이징의 경우 지난해 낮 최고 기온이 0도 이하로 떨어진 날이 하루도 없었다고 기상대가 밝혔다. 그런 영향이 올해 우리나라를 괴롭힌 지독한 황사와 올 여름 중국의 홍수 등 갖가지 기상재앙을 불렀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물론이고 모두가 절제를 통한 자원의 보호나 환경보다는 소비를 통한 경제 부양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궁벽한 시골의 시장에도 “소비가 궁극적으로 농촌경제에도 도움을 준다”는 붉은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도시나 농촌 할것 없이 소비가 미덕이라는 인식은 쉽사리 바뀔 것 같지 않다.

매혈이 성행하는 가운데, 무상헌혈을 독려하는 글을 보는 이들
매혈이 성행하는 가운데, 무상헌혈을 독려하는 글을 보는 이들조창완
이런 인식의 확대 속에 타인을 위한 배려와 희생이라는 개념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당연히 헌혈이라는 아름다운 봉사의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이런 중국이 변화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중국 정부가 의도하고 집중적으로 추진한 의식개조 운동은 대부분 큰 성과를 거두었다. 기차 안에서 쓰레기 버리지 않기 운동 등은 불과 2년 만에 큰 성과를 거두어 지금은 기차 안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이들이 거의 없다. 이런 변화는 역무원들이 수시로 객차를 청소하는 방식을 통한 변화였다. 하지만 헌혈은 이런 방식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순수한 봉사정신으로만 가능할 수 있어서 중국인의 변화를 가늠하는 좋은 척도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SK 사외보 10월호에 기고한 글을 약간 수정한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SK 사외보 10월호에 기고한 글을 약간 수정한 글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2. 2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3. 3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4. 4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5. 5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