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이주노동자, 강라이와 민우

등록 2002.12.04 18:31수정 2002.12.0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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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강라이와 민우는 꽤 유명한 ‘가수’다. 한국에 온지 10년. 이주노동자 모임에서부터 외국인 장기자랑 대회까지 그들이 섭렵한 무대는 한 두개가 아니다.


일하며 노래하는 삶이란 이 땅의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땅을 밟고 있는 하루하루 불안을 느끼는 이주노동자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기타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이주노동자와 가수라는 두 개의 직업을 갖고 있는 그들을 만나서 물었다. 왜 노래를 부르나요?

a 왼쪽부터 민우, 강라이. 민우는 트롯트 가락도 곧잘 뽑았고, 라이는 농담을 좋아했다. 한국 말이 능숙한 건 물론이다

왼쪽부터 민우, 강라이. 민우는 트롯트 가락도 곧잘 뽑았고, 라이는 농담을 좋아했다. 한국 말이 능숙한 건 물론이다 ⓒ 원주

"사람들이 좋아하니까요"

“처음에 모임 같은 거 있으면 거기서 노래하고 그랬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예요. 거기서 민우씨도 만나고, 같이 활동하게 됐죠.”

라이브하는 사람들이 진짜 음악가라고 생각한다는 라이는 윤도현과 블랙홀, 신해철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는 자신들의 노래를 반갑게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기쁘고 고맙다.
“그냥, 하고 싶었던 일이었어요. 노래를 부르면 희망이 업되는 기분이라 좋아요.”

'음악에는 좋고 나쁜 게 없다’는 민우는 신승훈이나 김건모처럼 꾸준한 매력을 가진 가수들을 좋아한단다. 그런 그들이 무대에서 주로 부르는 노래는 이젠 해체된 듀엣 ‘녹색지대’의 노래. 99년 외국인 예능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도 녹색지대의 노래를 불렀다.


“윤도현 것도 부르고 듀엣이다 보니까 녹색지대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그 사람들이 히트시키지 않은 것도 부르고 그랬거든요. 무대에서 부르면 반응 좋아요. ‘그래 늦지 않았어’같은 노래는 이제 녹색지대 노래가 아니라 우리 노래 같다니까요.”

‘그래 늦지 않았어’가 ‘강라이&민우’의 노래라며 웃어대는 그들은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한국에 온지 10년.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밤’이나 ‘전태일의 꿈’같은 공연에서 종종 섭외가 들어올 정도로 나름대로 자리잡은 듯한 강라이와 민우지만 사실 그들은 조금 지쳐있었다. 차별과 억압은 오래됐다고 익숙해지는 게 아니었다.


꿈은 … 이루어질까?

“노래하는 게 생활에 어떤 도움을 주는 건 아니잖아요. 공연을 하려면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도 잘 나지 않고. 불법체류자라 여기저기 다닐 때라 제약도 많고. 여러 가지 문제가 겹치면 포기하고 싶어지죠.”

홍콩에서 태어나 네팔에서 법학 공부를 한 라이는 5개 국어를 할 줄 아는 엘리트다. 그가 노래하는 기쁨을 얘기할 때의 눈은 반짝거렸지만, 그것을 한때의 추억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그의 바램은 그를 한숨짓게 한다.

“가끔은 여기서 썩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돈도 벌고 뭔가 배워서 돌아가고 싶은데….”

웹디자인에 관심이 있어 혼자 공부도 해봤다는 라이는 좀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불법’이주노동자들은 당연히 한국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고생스럽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볼 때는 언제나 ‘불법’딱지를 떼지 않는다.

“한국, 잘 살고 있어요. 알아요?”
봉제 공장에서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민우는 한국은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공간이라 믿는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월드컵 때 내건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구호가 진심인지 묻는다. 그 꿈은 당신들만의 것인가.

“왜 미군이 여중생들 죽였잖아요. 저도 그거 듣고 정말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무죄라니.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똑같은 것을 우리는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은 안하는 것 같아요.”

라이와 민우는 ‘네팔 사람이 운전사였으면…’이라는 생각을 하며 씁쓸해한다. 이주노동자는 교통사고 피해를 당하고도 도망가야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a 그들은 서울에서 난 기자보다 동대문 거리를 더 잘 알았고, 더 잘 어울렸다

그들은 서울에서 난 기자보다 동대문 거리를 더 잘 알았고, 더 잘 어울렸다 ⓒ 원주

그래 늦지 않았어!

그래도 노래를 부르는 것은, 이곳에서 ‘잘 지내고 싶어서’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으며, 고난한 삶속에서도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그 노래를 우리가 들어줬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노래 부르는 시간에 돈 버는 게 낫지, 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잘 지내고 싶거든요. 그냥 부담없이 우리를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어요.”이것이 야근 마치고 새벽에 노래 연습을 하는 단 하나의 이유다.

“노래하려면 일단 자유로워야 하잖아요. 집에 자유롭게 왔다갔다할 수 있는 거, 여기서 10년째 일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받아들여 주는 거, 그런 거 바래요.”

아직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은 그들은 노래한다. ‘날 사랑한다고 지금까지 왜 말 못했어/나 얼마나 그 말을 기다려왔는데 / 그래 늦지 않았어 미안하단 말은 하지마 / 이제 시작해 우리 사랑을 위해’(그래 늦지 않았어 후렴구)라고.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답가를 보내야 할 차례다.

덧붙이는 글 | 대학생신문 17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대학생신문 17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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