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의 소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의 표지
1979년부터 84년까지를 신시기 문학 1단계로 보는데, 이 시기는 주로 문혁기간 동안을 탐색하는 ‘상흔문학’(傷痕文學), ‘반성소설’(反思小說)이 소설에서는 주류를 이뤘고, 시에서는 ‘몽롱시운동’(朦朧詩運動)이 벌어지기도 했다. 80년대 후반에는 ‘누보로망’ 등의 경향과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작품을 받은 작가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선봉문학’(先鋒文學)과 현실을 소재로 차용하는 ‘신사실주의’ 문학이 만들어지는데, 위화는 선봉문학의 선도자중 하나다.
위화는 1983년 단편소설 '첫번째 기숙사'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나섰고, 곧바로 ‘18세에 집을 나서 먼 길을 나서다’(十八歲出門遠行),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世事如烟) 등 실험성이 강한 중단편을 내놓았다. 폭력과 피와 죽음이 직접적으로 서술되는 이 작품집을 통해 망각의 늪에 빠진 중국 당대사 및 개인의 기억을 환기시킨다는 평가를 받는 이 소설을 나는 중국에 들어와서야 잡을 수 있었다.
그가 살아가는 베이징으로 가는 기차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즐거움은 곳 불편함으로 바뀐다. 글로만 느껴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죽음의 파노라마와 소설이 담고 있는 잔혹함이 독자를 힘들게 한다.
첫 번째 소설 '어떤 현실'이 담고 있는 것은 평범하던 두 형제 가족이 어린 소년 피피의 실수로 벌어지게 되는 살육전에 관한 것이다. 동생 산봉은 죽은 아들의 복수로 다시 조카 피피를 발로 차서 죽이고, 그 형제는 계속해서 서로를 죽이는 살육전이 벌어진다.
이런 잔인한 이야기는 두 번째 소설 '강가에서 일어난 일' 역시 마찬가지다. 미친 사람이 자신을 돌보아주던 할머니를 강가에서 손도끼로 목을 쳐서 살해하고, 경찰 마철은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그곳으로 파견 온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계속 진행되는 살인들. 결국 그것에서 마철 역시 혼돈 속에 빠져들고, 급기야는 미친 사람을 권총으로 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를 구해주기 위해 그를 정신병자로 몰아가는 상사와 아내 앞에서 결국은 혼돈 속에 빠진다.
세 번째 소설 '옛 사랑 이야기'는 가난한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 과거를 보러 가는 유생이 우연히 만난 여인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사랑의 중간에는 혼란스런 상황으로 인해 인육을 거래하는 잔인한 세상이 담겨져 있다.
표제작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역시 자식들의 수명을 앗아서 생명을 연장하는 점쟁이를 주축으로 죽고 죽어 가는 인간들의 허무한 과정에 관해서 그리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죽음이다. 네 소설에서 죽어 가는 사람의 숫자가 근 백 여명에 이르지 않을까 할만큼 이 소설은 죽음의 향연이다. 때로는 잔인하게 도끼로 살해당하고, 때로는 생생한 인육이 되기 위해 살아있는 상태에서 신체의 일부분이 잘리고, 때로는 나무에 묶여서 발을 간지르는 개 때문에 웃다가 죽기도 한다.
작가가 가장 음울하던 시절, 그리고 원고지가 습기에 젖어 부드러워질 만큼 습한 기운 속에 썼다는 소설이 죽음의 코드를 담고 있는 것은 그가 술회하듯 문화대혁명이라는 광기의 역사를 공유하면서 얻었던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점은 그가 유년시절을 외과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보냈을 뿐만 아니라 시체실의 옆에서 보냈다는 점에서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절망이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시대가 주기보다는 작가의 내면에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코드 중에 하나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런 특성은 그가 사숙했던 보르헤스나 마르께스 같은 남미의 작가에게서 따온 것이기도 하고, 선배작가인 루쉰에게도 빌어온 것이다. 알베르 카뮈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 역시 그에게서 느껴진다. 물론 더 확실한 것은 우리 작가 기형도나 최승자의 시에서 느껴지는 것 같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작가 스스로의 본원적인 환경에서 왔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