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를 겸비한 70년대 깜찍이들

펄 시스터즈 '신중현 작품집 : 나팔바지 / 님아'

등록 2002.12.12 22:31수정 2002.12.13 13:05
0
원고료로 응원
a 펄 시스터즈 '신중현 작품집 : 나팔바지 / 님아'

펄 시스터즈 '신중현 작품집 : 나팔바지 / 님아' ⓒ 배성록

수록곡
1. 님아
2. 커피 한잔
3. 떠나야 할 그 사람
4. 두 그림자
5. 비밀 이기에
6. 알고 싶어요
7. 나팔바지
8. 속 님아


외람된 얘기일지 모르지만, 펄 시스터즈는 ‘비디오형 여가수’의 원조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어둡고 침울하던 60년대 말에 혜성처럼 등장한 두 자매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와 발랄한 무대 매너로 온 국민에게 힘을 북돋워 주었다. 당시로서는 슈퍼모델급이었던 165cm이상의 키, 늘씬한 몸매, 얼마나 예뻤겠는가. 필시 전 대한민국 남성의 이상형이었을 것이다.


이런 스포츠 신문스런 얘기가 굿데이 강수진 기자의 기사처럼 보이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만큼 펄 시스터즈와 그녀들의 비주얼한 매력은 떼놓을 수 없는 관계이니 말이다. 외양이 그래 놓았으니, 스캔들 역시 끊이지 않았다. 지금으로 치면 주얼리나 슈가와 같은 존재였다고 하면 어느 쪽이 불쾌하려나…

그러나 사실 펄 시스터즈를 주얼리나 슈가에 비유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펄 시스터즈는 아유미 같은 아이들과 달리, 비주얼한 매력에 더해 음악마저도 뛰어났던 것이다. 데뷔 이전부터 언니 인순은 기타와 드럼 연주를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두 자매 모두 보컬리스트로서 수준급의 기량을 자랑했다. 여기에 신중현의 탁월한 곡들이 주어졌으니, 두 자매가 인기폭발을 경험한 것은 당연하다못해 예정된 일이었다.

이번에 재발매된 본 음반은 [펄 시스터 특선집] A면에 <나팔바지>가 추가된, 일종의 ‘리패키지’에 가까운 음반이다. 재킷은 [나팔바지]의 것을 사용했지만, 1번 트랙부터 6번 트랙까지는 모두 [펄 시스터즈 특선집]의 A면에 있던 곡들이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 당시에는 같은 음반도 재킷 바꿔가며 서너 번씩 우려먹던 시절이었으니까. ‘B면은 어디갔냐’고 물을까봐 미리 말하자면, [펄 시스터즈 특선집] B면은 죄다 팝송 번안곡이었다. 이 정도 정보면 이 독특한 재발매 방식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대표적 히트곡들인 <님아>, <커피 한잔>에 <나팔바지>를 덤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그리 흔한 것은 아니고 말이다.

무엇보다 귀 기울여야 할 곡은 첫 두 트랙인 <님아>, <커피 한 잔>과 이번에 추가된 <나팔바지>이다. 발표 당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님아>는 무려 100만장이 팔리는 바람에, 월남 가려던 신중현을 국내에 주저앉힌 곡이다. 전주부터 이어지는 기타 스트리밍에 어딘지 처연한 두 자매의 보컬이 팽팽한 긴장감을 이룬다. ‘님아’를 반복해서 외치는 후렴구는 당시에 아이부터 어른까지 입에 달고 살았다 하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그 강력한 훅(Hook)이 전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신중현은 이런 기술이 아주 능하다. <커피 한 잔>은 장미화가 불렀던 <내 속을 태우는구려>를 제목만 바꾼 곡인데, 자매의 감칠맛 나는 호흡 덕분에 히트곡으로 둔갑한 사례다. 퍼즈톤 기타가 곡 내내 긴 솔로를 전개하고, 보컬 멜로디는 단조에서 장조를 짚어 올라가며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처량한 노래가 업템포의 댄스곡으로 바꿔 불러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것은, 바로 이 독창적인 화성 때문일 것이다.

<두 그림자>는 귀여운 노랫말에 밝은 멜로디가 결합한 로큰롤인데, 음반 내에선 거의 유일하게 그녀들 나이에 맞는 노래이기도 하다. 유치찬란한 가사를 듣다 보면, 좀전에 주얼리 운운했던 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나팔바지>는 그 유명한 ‘무단 음반 출시’ 사건의 원인이 된 곡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킹레코드의 ‘킹박(지금으로 치면 이수만 같은 존재)’이 펄 시스터즈의 <나팔바지> 레코딩을 일언반구도 없이 음반으로 출시해 버린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당시 펄 시스터즈가 법적 대응을 하느니 콩팔칠팔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이 곡은 박인수의 첫 레코딩으로도 유명한데, 본래 펄 시스터즈가 TBC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녹음한 곡이었다고 한다. 작곡자인 신중현에게도, 두 자매에게도 한마디 상의 없이 몰래 출반했다고 하니, 당시 음악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여담이지만, 펄 시스터즈는 활동할 당시 뜬금없게도 ‘소울’ 가수로 불렸다고 한다. 아마 당시 한창 소울이 인기였기 때문에, 상업적인 목적에서 그렇게 불렀다고 보는 것이 옳다. 지금의 젊은 청중에게야 펄 시스터즈의 가창은 그냥 ‘가요’로 들릴 것이고, 그녀들의 화려한 외모 역시 커다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끝 음 꺾기를 R & B라고 우기며 골반을 흔드는 섹시 디바들이 넘쳐나는 요즘이 아닌가.


그럼에도 펄 시스터즈의 이 기록들은 옛 가요계의 큰 흐름이었던 ‘소울 가요’의 단면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대중성과 음악적 성과를 동시에 성취해내는 신중현의 역량이 드러나는 음악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누구에게? 당연히 오늘날의 대중에게. 그런데, 정말 신중현은 내놓는 여가수마다 히트의 연속이었을까? 그건 이정화의 음반을 보면 답이 나온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5. 5 '바지락·굴' 하면 여기였는데... "엄청 많았어유, 천지였쥬" '바지락·굴' 하면 여기였는데... "엄청 많았어유, 천지였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