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5년이 30년의 토대가 되기를

한반도의 새정치 주체 세력이 형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등록 2002.12.23 11:25수정 2002.12.23 16:20
0
원고료로 응원
덕담의 시간은 짧고 엄중한 현실은 벌써 다가서 있다. 당선자를 지지한 국민들의 기쁨과 환호이든, 낙선자를 지지한 국민들의 슬픔과 좌절감이든 이제 12월 19일의 대선은 노무현 당선자를 낳았고, 대한민국호는 새로운 선장을 맞이하여 다시 힘을 모아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진심으로 노무현 정권이 성공한 정권이 되기를 바란다. 당선자 개인을 위해서도 그러하고, 이제는 우리도 링컨 같은 위대한 지도자를 갖고 싶기도 해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이유는 우리 민족을 위해서 이제는 성공한 정권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기위해 지금은 ‘노비어천가’를 부를 때가 아니라 ‘5년을 제대로 보낸 정권’이 무엇을 경계하고, 주의해야 하는지 점검하고 마음에 새겨보아야 할 때다.

왜! 노무현 5년은 향후 30년의 토대가 되어야 하는가? 30년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남한의 새로운 주류가 남한사회의 숙원과 과제를 해결하는 데서 출발하여 민족통합과 동북아시대를 여는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바로 이 과제가 다음 한 세대 30년 동안에 우리의 소임이 될 것이다.

돌이켜 보면, 1961년 5월 16일 새벽 박정희 소장을 필두로 한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접수한 이래 지난 41년 동안 한국사회는 정치군인과 그들이 형성해놓은 소위 ‘구주류’들의 지배 또는 압도적 영향력 하에 놓여 있었다.

노무현 정권의 출현은 바로 이‘무신들의 난’에서 한국사회가 실질적으로 벗어나고,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구체화하는 출발점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다.

어떻게 해야 성공한 정권이 될 것인가? 다행히도 우리는 풍부한 타산지석, 반면교사를 갖고 있다. 과거에서 얻은 교훈을 성찰하면 노무현 정권의 미래가 보일 것이다. 국민직선으로 뽑은 3번의 정권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제1계명: 측근·비선정치를 지양하라.


제도나 법에 의한 지배보다는 제왕적 지도자에 의한 보스정치에 물든 한국정치에서 측근정치, 비선정치의 폐해는 너무나 컸고, 역대정권의 비참한 종말도 일차적으로 여기서 기인한다고 할 것이다.

인사, 이권, 공천권, 국가정책에 측근·비선에 의한 비공식적 개입을 최대한 차단해야 한다. 제도와 법을 투명하게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만약 제도와 법이 따라오지 못한다면 그것들을 개선 개혁해야 할 것이다.


제2계명: 역시 인사가 만사다.

YS가 ‘인사가 만사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출발했다가 ‘인사가 망사다’라는 평가를 받은 것은 반면의 교사다. 이승만 시절부터 역대정권은 가치관보다는 능력을 중시하는 몰가치적 인사를 해왔다. 해본 사람이 안정감 있어 보이고, 뭔가 불안하지 않다는 논리로 항상 전 정권에서 혜택을 누린 사람이 새 정권에서 중책을 맡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제 인사의 원칙과 가치관을 새로이 세워야 한다. 가치관과 능력이 일치한다면 오직 좋겠으나 현실은 꼭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제 노무현 시대에서 굳이 양자의 우선 순위를 따진다면 가치관을 우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은 유능하고 잘 조직된 관료사회와 풍부한 지식인 풀을 갖추고 있다. 조직의 장일수록 세세한 전문지식보다는 정치적 판단력과 추진력이 중시된다. 미국외교를 총괄하는 콜린 파월도 직업군인 출신으로 외교의 외자도 해본 일이 없는 사람이다. 정치적 리더십과 전문적 실력을 배합하는 인사구도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투명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인사탕평책이 실질적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김대중 정부 들어와서 모 정보기관의 경우 1인자에서 5인자에 이르기까지 특정 고교출신으로 채워진 적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왜 김대중 정부가 인사문제로 비판받는지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출신지역이 어디든 능력있고, 헌신적인 사람은 발탁될 수 있는 제도를 형성해야 한다. 지역, 학연, 혈연을 중심으로 한 파벌을 깨트려야 한다. 신정부의 인사관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다면 이미 절반의 성공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제3계명: 언행일치하라, 공약을 헌신짝 버리 듯하지 마라.

집권당이 되었다고 선거때 한 공약을 슬그머니 휴지통으로 보내서는 안된다. 98년초 당시 법무장관이 야당시절 자신이 앞장서 주장했던 특검제를 앞장서서 반대하는 것을 보고 기가 찼던 기억이 있다. 또 야당시절 의원빼가기를 그렇게 반대했다가 막상 집권당이 되니까 상대당 의원 빼오는 것을 태연히 자행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될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한다. 정치개혁에 관한한 김대중 정부는 싹이 노랗다는 것을 그때 보았고, 그리고 실제적으로도 정치개혁을 거의 안했다.

공약을 완급과 준비상태에 따라 차근차근 실천해야 할 것이다. 만약 정말로 실현이 어려운 공약이 생긴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논리와 근거를 제시하여 설득하여야 할 것이다.

민심은 잠자는 아이와 같이 순하기도 하지만, 성나면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화장실 들어갈 때 심정을 항상 간직해야 한다. 국민은 무심한 것같아도 약속을 지키는지 주시하고 있다. 하물며 노무현바람을 일궈낸 네티즌들이야 얼마나 극성스럽게 감시할까.

제4계명: 사심없는 중용지심으로 국민과 함께 개혁하라

노무현 정권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혁정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프로그램 없는 개혁, 당파성을 감춘 개혁, 철학이 빈곤한 개혁은 국민을 피곤하게 하고 나라를 어수선하게 만든다. 부작용없는 개혁은 없을까? 정밀한 개혁프로그램과 국민적 지지를 극대화하는 유연한 과정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

사정을 예로 들어보자. YS정권은 취임하자마자 공직자 재산공개를 선도하고 이를 법제화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보복사정 시비가 생겨 국민적 반감은 물론이고 정권의 몰락을 자초하는 큰 원인이 되고 말았다. 대구에서 박철언 의원이 구속되자 그 부인이 당선된 사례는 보복 편파 사정의 부작용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귀감이다.

DJ정권 들어와서 환란 위기 청문회를 개최하여 YS를 단죄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제1야당이던 국민회의의 책임은 없었던가. 결국 영남과 ‘국민의 정부’는 화해하지 못했다.

지금 국민은 부정부패의 척결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다. 예전 정부에 비하면 껌값에 불과한 DJ측근의 부패에 대해서도 정권이 흔들릴만큼 엄중한 심판을 내렸다. 지자제 선거, 8.8 보선에서의 민의를 잊어서는 안된다.

일과성 캠페인이 아닌 원칙과 제도의 확립이라는 방향으로 새정부의 의지가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결코 보복성, 편파성이라는 비판을 받아서는 안된다. 자정을 우선시할 때 국민들이 승복하고 따라올 것이다.

당파심에서 벗어나 중용지심으로 개혁을 추진한다면 개혁지지기반은 확대되고 추진력을 가속화될 것이다. 노무현 당선자는 절대과반수의 지지로 당선된 것이 아니다. 절반 이상의 국민이 반대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많은 유권자들이 시대착오적인 수구세력과 냉전극우세력을 척결하기위해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중도적이고 보수적인 국민도 개혁의 동참자로 만들어야 한다. 개혁의 구심을 구축하고 개혁의 동반자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중용지심에 바탕하여 시민사회의 컨센서스를 만들어 나가는 개혁프로세스가 절실하다.

제5계명: 5년 후의 사람을 지금 키워라

역대 선거가 끝나면 마치 천년만년 정권을 잡은 것 같은 분위기가 당선자 주위에 넘쳤다. 야당시절에 고뇌했던 청사진은 빛이 바래고 권력을 유지하고 향유하는 현실논리가 갑자기 사고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온갖 끈을 동원해서 당선자 주위를 에워싼다.

97년 대선에서 한국역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을 때 민주주의에 섰던 사람은 환호했다. 그러나 이종찬 인수위원장, 김중권 비서실장 등 구체제의 기린아들이 요직을 차례로 점하는 것을 보고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김대중 정부는 참으로 관대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을 음해하고 비방한 군사독재의 주구들에게 장관자리, 사장자리를 마구 뿌렸다. 극렬하게 반대한 사람일수록 더욱 관대하게 대했다. 그들에게는 김대중 정부가 마치 산타크로스처럼 보였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참으로 비정했다. 수십년동안 사형, 투옥, 감옥을 마다않고 민주화운동을 한 인사들에게 자리주는 것을 거지들에게 푼돈 던져 주는 것보다 더 아까워했다.

자신에게 특별한 충성심을 보인 사람을 제외하면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이 유일한 민주화운동출신 장관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김대중 정부가 중용한 사람들이 결국 어떻게 했나. 민주당에 아이덴티티가 없는 그들은 지난 1년 내내 사고쳤다.

교육이 백년대계인 것은 정치권에도 예외가 아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훌륭한 제자를 키우는 사람이다. YS, DJ 10년동안 언필칭 민주화세력이 정권을 잡았다고 하지만, 정작 민주화세력은 찬밥이었다. 이제와서 민주화세력의 밥그릇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정치에도 흐름이 있고, 맥이 있다. 민주화세력과 전문가 세력을 결합하여 5년이후의 과제도 지속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개혁구심과 주체세력을 형성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5년과 이후의 한국사를 내다보면서 전략적 사고를 실천해야 한다. YS, DJ 10년이 지나간 지금 권력이 얼마나 허망한지 실감나지 않은가. 인재를 키워야 한다. 자신에게 충성스런 심복에게 인심쓰듯이 인사를 해서는 안되고 향후 30년간의 민족적 과제를 해결할 세대를 육성한다는 관점에서야 한다.

2차대전 후 50년동안 일본정치를 주도한 요시다 스쿨이 있었듯이 한국에도 노무현 스쿨이 생기기를 바란다. YS, DJ정권이 끝나면서 그 핵심세력이 부패세력으로 매도당하는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고 노무현스쿨의 모범생들이 한반도의 주도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고 싶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