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하늘을 날으는 은빛 찬란한 꿈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36> 가오리연

등록 2002.12.24 13:15수정 2002.12.2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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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리 '머스마'들은 연을 날리면서 늘 햇살 같이 찬란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가시나'들은 우리들 곁에서 고무줄 뛰기를 했다.

우리 '머스마'들은 연을 날리면서 늘 햇살 같이 찬란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가시나'들은 우리들 곁에서 고무줄 뛰기를 했다. ⓒ 창원시

"야야, 오늘은 고마(그만) 파이다(나쁘다)"
"와? 지금 이 시간이모 들에 나가고 없을낀데?"
"아재가 오늘은 몸이 아픈지 아까부터 쥐새끼처럼 꼼짝도 안하고 있더라. 자는 거 같기도 하고"
"그래? 그라모 니는 망을 보고 있거라. 내가 대를 찌께(자를게)"
"그라다가 들키모 우짤라꼬?"


우리 마을에는 자그마한 대밭이 서너 군데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대밭은 돌다리가 있는 시냇가 건너에 자리잡고 있는 산수골과 야트막한 동산 아래 붙은 분이네 집 앞에 있는 대밭이었다. 그중 앞산가새(앞산비탈) 아래 대여섯 가구가 살고 있는 산수골에 있는 대나무가 가장 질이 좋았다.

산수골 논으로 가는 좁은 길가에 마치 울타리처럼 둘러쳐진 그 곳에 있는 대나무는 몸통이 우리 팔목만하게 굵었고, 키가 하늘의 엉덩이를 찌를만큼 몹시 컸다. 또한 그 대밭에는 우리들이 연이나 활과 화살촉을 만들기 아주 좋은 시누대까지 제법 섞여 있었다. 특히 겨울바람이 연 날리기에 아주 좋게 부는 날, 그 대밭 근처에 가면 대밭에서 쏴아 쏴아아, 하는 파도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해마다 겨울방학이 되면 우리 마을 아이들은 누구나 연을 만들어 날렸다. 하지만 늘 그 연을 만들 대나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산수골에 있는 연 만들기에 좋은 그 시누대를 구하기는 제법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 시누대는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 시누대를 '시날대'라고 불렀다. 시날대는 산수골에 사는 사람들의 초가집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흙마당을 쓸어내는 빗자루로 사용되기도 했다. 또한 산수골 사람들은 겨울이 오면 그 시날대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 대광주리를 엮어두었다가 매월 4자와 9자가 붙은 날이 돌아오면 상남시장에 내다 팔았다. 상남시장은 4자와 9자가 붙은 날마다 열리는 오일장으로써 창원 일대에서도 제법 큰 장에 속했다.

"니는 가부리(가오리)연을 만들어라. 나는 참연(방패연)을 만들란다"
"알았다. 그라고 니 참연을 만들라카모 대나무로 잘 다듬어라이. 참연은 연살 두께가 조금만 차이가 나도 동굴뱅이(동그라미)만 그리다가 고마 논바닥에 콕 처박히뿐다카이"
"나도 알고 있다카이. 씰데없는 소리 고마(그만)하고 그기 있는 밥풀떼기나 좀 주라"
"아나, 근데 와 이래 보리 밥풀떼기뿐이고. 너거집에는 할배가 묵고 남긴 쌀 밥풀떼기 같은 거는 하나도 없나?"


당시 우리가 주로 만들었던 연은 참연과 가오리연이었다. 그중 가오리연은 연살이 두 개만 필요했고 만들기 또한 아주 쉬웠다. 가오리연은 마름모꼴로 자른 문종이 한가운데 연살을 잘 붙힌 뒤, 연의 머리 부분에 또 하나의 연살을 활처럼 휘어 붙히고 꼬리를 길게 달면 그만이었다. 또한 가오리연은 대충 만들어도 꼬리를 파라미처럼 가물거리며 바람에 잘 뜨기도 했다.

하지만 참연을 만들기는 제법 어려웠다. 참연은 직사각형의 문종이 가운데 실을 묶은 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린 뒤, 가위로 동그랗게 잘 잘라내야 했다. 그리고 참연의 이마 부위에 태극 무늬까지 그려 넣어야 했다. 또한 두께가 일정한 연살도 4개나 필요했다. 특히 참연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연살이 4개나 겹치는 중간부분을 잘 매듭지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정성을 들여도 참연은 생각처럼 잘 뜨지가 않았다. 특히 무게중심을 잡기가 몹시 어려웠다. 연살을 깎을 때나, 연살을 십자로 붙히고 다시 X자로 붙힐 때 조금만 실수를 해도 안되었다. 또 어떤 때는 참연이 어깨를 마구 흔들거리며 하늘 한 귀퉁이를 삐딱하게 제법 잘 떠오르다가도 이내 논두렁에 콕 처박히기 일쑤였다. 그래서 우리는 참연도 가오리연처럼 양쪽에 짤막한 꼬리를 달아 날리기도 했다.

"니도 실에 유리가리(유리가루) 칠했제?"
"아이다. 유리가리로 칠하다가 손 비이모(베이면) 우짤라꼬? 그래가(그래 가지고) 나는 돌가리로 칠했다 아이가"
"어어어~ 잘못하다가 니 연 떨어지것다. 더 세게 확 잡아채뿌라카이"
"어어어~ 에이, 끝나뿟다 고마"

그렇게 연을 만들고 난 우리들은 양지 바른 마을 들마당에 서서 남으로 열린 들판을 향해 연을 날렸다. 왜냐하면 그 들판에는 전봇대가 없었기 때문에 연이 전깃줄에 걸리는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짓날이나 크리스마스, 1월 1일, 정월 대보름처럼 그런 특별한 날이 아니면 대부분 연싸움을 피했다. 주로 누가 더 높이 더 멀리 연을 날리는가로 고구마 뺏떼기(날 고구마를 얇게 썰어 햇살에 잘 말린 것) 내기를 했다.

그날, 오랫만에 벌어진 연싸움에서 내 가오리연은 그렇게 은빛 찬란한 꼬리를 가물거리며 하늘 저 편 천자봉을 향해 끝없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파아란 겨울 하늘에 떠 있는 내 찬란한 꿈 같은 뭉게구름 속으로, 연신 고개를 끄떡끄떡거리며 그렇게 은빛 점이 되어 사라졌다. 그 달콤한 고구마 뺏떼기를 데불고.

고구마 뺏떼기~
고구마 뺏떼기~
말랐네 말랐네
너무 말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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