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룽지 떠나면 중국투자 거둬라?

<차이나소프트 경제 7> 부시 경제고문 주장처럼 93년 이후

등록 2002.12.30 08:49수정 2002.12.3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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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룽지는 현대판 ‘우왕’

80년대 말 동아시아에 밀어닥친 외환위기와 불황에도 불구하고 연 8%대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중국 경제에서 가장 위험한 가정은 무엇일까. 경제 내적인 문제일까 경제 외적인 문제일까. 아니면 또 다른 키워드가 있을까.

세계 경제 트렌드 전문가로 부시 행정부의 경제 자문역을 맡기도 했던 토드 부츠홀츠(Todd G. Buchholz)는 “투자자들은 주룽지와 같이 결단력 있는 개혁가가 베이징에서 지속적으로 레버를 당길 수 있을지의 여부를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 주룽지가 총리직에서 물러날 어떤 징후가 보인다면, 그것은 중국 주식을 팔아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마켓쇼크’ 중에서)

부츠홀츠는 그 키워드를 분명히 주룽지라는 한 인물로 봤다는 것이다. 과연 주룽지가 누구길레 그가 그런 말을 했을까. 물론 그의 가설이나 주장은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확장이나 자유경제의 심화 등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분명히 눈여겨볼 무엇이 있다. 하지만 의미심장한 말임에는 틀림없다.

2002년 8월에 창지앙(長江)의 중하류인 지우지앙(九江)을 갔었다. 기자가 그곳에 들렀을 때 지우지앙을 지나는 창지앙의 수위는 98년 4천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창지앙 대홍수보다 높다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쉰양루(?陽樓)에서 바라본 창지앙의 수위는 지우지앙시보다 높아 제방이 없다면 이미 시내는 물바다가 되었겠지만 도시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다 제방의 덕택이었다.

그 자리에서 홍수에 관해 물었을 때 기자는 의외의 한마디를 들었다. “이 모든 게 주룽지 총리 덕분이다. 주 총리가 지도해 제방을 쌓았는데, 그는 과거 치수를 한 우왕(禹王)과 같은 이다.” 좀 심하다 싶지만 이런 평가는 일반 중국인들에게서도 쉽게 들을 수 있다. 현 정치의 실질적인 지도자인 장쩌민이 아닌 주룽지를 은인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주룽지의 2선 후퇴가 사실상 정해진 2002년 이후 중국 경제는 어떤 모습일까. 이는 과거 마오쩌둥의 집권시에 마오보다는 총리 저우언라이가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과도 같다. 한 나라의 백성들이 모름지기 자기 정치권의 향배를 모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주룽지의 전면적 퇴장은 사실일까

2002년 11월 열린 중국 공산당 16기1중전회에서 주룽지는 사실상 상무위원직은 물론이고 중앙정치국 위원에서 물러났다. 이후 원로회의와 같은 수렴조직이 생길 수 있지만 어떻든 주룽지는 공식 정치석상에서 확실히 물러났다. 2003년 3월에는 주룽지의 뒤를 이어 원자바오가 총리에 취임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기도 하다.

이는 단순히 주룽지 한 사람만이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주룽지가 이끌던 경제팀이 대대적인 변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2002년 12월 26일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중국 인민은행의 다이샹룽(戴相龍) 행장이 조만간 물러나 톈진(天津) 시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 자리에 저우샤오추앤(周小川)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위원장이나 옌하이왕(閻海旺) 인민은행 부행장이 그 자리를 맡을 것으로 예상했다.

다이행장은 주룽지와 협조해 아시아 위기 당시 위안화 안정정책을 유지해 동반 추락을 막는 등 적지않은 공로가 있고, 주룽지의 핵심 브레인이었다. 그런데 그가 톈진 시장이 된다는 것은 중앙정치에서 사실상 후퇴를 뜻하는 것이다. 그는 2002년 11월 회의 전까지만 해도 주룽지가 물러나더라도 금융정책을 주도하는 핵심이 될 것으로 봤지만 예상밖으로 빨리 물러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는 ‘장쩌민의 정치, 주룽지의 경제’에서 ‘장쩌민의 정치-경제 독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과연 이런 시대의 개막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난 20여년간 중국 경제는 매년 8%에 달하는 고도성장을 지속해 왔다. 특히 톈안먼 사태 이후 위기에 빠진 중국경제의 부활에는 1993년부터 리펑을 대신해 중국경제를 진두지휘한 주룽지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1991년 2월 덩샤오핑, 양상쿤, 리셴녠 등 중국을 지배하던 원로들은 상하이에서 주룽지를 만났다. 탁월한 기억력과 경제에 대한 그의 포부는 원로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부총리로 발탁된 후 리펑이 아프자 곧바로 경제정책의 실권을 주었다. 그는 리펑의 고성장정책으로 물가상승과 난개발로 혼란하던 중국을 ‘고성장, 저인플레’ 정책으로 끌고가 연착륙에 성공시켰다. 또 문혁 당시 하방되었을 때 배운 영어실력으로 외신기자회견에서도 아무런 자료없이 유머러스하게 끌어가는 주룽지는 분명히 외국이 중국을 보는데 뭔가 신비한 힘을 느끼게 하는 인물이었다.

콤플렉스는 주룽지의 힘

파벌을 만들지 않고, 자신있게 자신의 정책을 밀어가는 주룽지는 중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정치인이 됐다. 톈안먼의 빚이 있는 장쩌민과는 또 다른 힘이었다.

그는 장쩌민보다 2년 늦은 1928년 10월에 후난성 창사(長沙)에서 태어났다. 그의 지역적 연고는 마오쩌둥을 비롯해, 류사오치, 중국 현대 정치계의 거목들이 줄줄이 탄생한 좋은 곳이다. 그는 1947년 칭화대에 입학해 공산주의 지하조직에 참가했고, 48년에는 좌익학생회의 실질적인 리더가 됐다. 따라서 공산화 이전에 혁명에 참가한 인물이 돼서 자연스럽게 유망한 엘리트의 대열에 들어섰다.

테크노그라트인 그는 1957년 실무를 좋아해 국가계획위 기계국 종합처 부처장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이때 시작된 정풍운동의 휘오리 속에 끌어들려 간다.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정풍운동은 마오쩌둥이 ‘뱀들을 굴에서 끌어내기 위한 수단’(引蛇出洞)이었고, 이 과정에서 주룽지도 국가기관 안에 잔재한 관료주의와 주관주의를 비판하는 3분 발언에 참여하는데, 이 발언은 그후 20년 동안 그를 옥죄는 굴레로 작용했다. 58년 3월에 그는 ‘부르주아 우파분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당적을 박탈당한 후 하방(下放)되는 것을 시작으로 문혁에 다시 2차 하방되는 등 큰 수난을 받다가 마오가 죽은 한달 후인 76년 10월 당적을 회복한다. 그는 이런 콤플렉스를 바탕으로 더욱 청렴한 관리로 거듭나고, 개혁을 주도한다.

이후 국가경제위원회에 발탁되었다. 그는 1985년 베이징 우싱(五星) 맥주 공장을 시찰해 원칙에 충실한 검사로 품질 개선을 이끌어내 강인한 인상을 심어줬다. 1987년에는 상하이에 파견되어 시장을 맡을 준비작업에 들어갔고, 1988년 4월 상하이시 제9기 인민대표대회 회의에서 시장으로 선출됐다.

그의 경제를 보는 탁월한 능력이 시험대에 오른 것은 1988년 5월 덩샤오핑의 시장경제 강화이후 불어닥친 사재기 현상 등 심각한 경제문제에 관해 덩샤오핑에게 브리핑할 기회를 얻으면서다. 그는 덩 앞에서 급속한 개방에 앞서 생산의 증가가 따라야 한다는 원리를 자료도 보지 않은 채 자신있게 주장했고, 이후 덩샤오핑의 경제자문역이 되었다. 또 1989년 6월 톈안먼 사태 당시에 시위의 기운이 상하이에 내려오는 것을 차단하는 주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 정계의 두 원로인 덩샤오핑과 천윈 모두에게 특별한 인상을 주었고, 1991년 국무원에 들어와 실권을 거의 장악했고, 1993년 리펑의 건강악화 때부터 정책의 상당부분을 담당하는 한편 1998년 3월에는 직책상으로도 국무원 총리를 맡으면서 중국의 안방을 책임지게 됐다.

1958년 우파 낙인 후 20년간은 그에게 악몽과 같은 시간이었다. 1996년 12월 23일 베이징 쇼우두(首都)극장에서 상연된 연극 <상앙>을 보고 주룽지가 운 이야기는 유명하다. 상앙은 시황제의 탄생 전 진(秦)나라를 엄격한 법치국가로 만드는 것을 포함한 개혁 프로젝트를 진행한 인물로 위기에 처했을 때 피신하다가 자신이 만든 고발법으로 인해 죽음을 당한 비극적 인물. 그는 죽었지만 117년 후 진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는 기반을 만드는데 근원적인 역할을 한다. 주룽지는 이 연극을 보다가 울음을 터트리는데, 이는 보수파에 맞서 개혁을 단행하는 자신의 처지가 상앙과 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가 상앙과 같지 않을까하는 염려도 했다.

현재 YTN 중국 특파원으로 주룽지를 다룬 ‘내 棺(관)도 준비되어 있다’를 저술한 김승환 기자는 99년 그의 저술에서 주룽지의 사임설이 덩샤오핑의 사망설에 버금간다고 봤다. “개혁 과정에 백 개의 관을 준비해 놓았으며 그 가운데 내 것도 하나 있다”는 말을 할 정도로 중국 개혁의 선두에 섰던 그의 일선 후퇴는 당대 중국 정치에 소금의 역할을 하던 인물의 붕괴를 말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인용한 미국 경제 트렌드 전문가 부크홀츠는 중국 정부의 10가지 해결과제를 제시했다. 그 내용중 일부를 살펴보면 빈부격차가 생기고 불만이 커져도 공산당의 통제력을 유지하는 문제, 13억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8%의 성장률을 유지하는 문제, 인플레이션을 10% 이하로 잡는 문제, 위안화의 안정 문제, 국영기업의 다이어트 및 실업문제 해결, 환경 파괴를 막는 문제, 지속적인 외자유치 등을 꼽았다. 한 리더가 모든 것을 통솔하지 못하지만 이런 문제를 통제하는 데 주룽지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은 중국 뿐만 아니라 세계가 인정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 주룽지는 동반퇴진 아닌 동반퇴진을 앞두고 있다. 따라서 포스트 주룽지시대의 명암은 최대의 관심사일 밖에 없다.

주룽지에 버금가는 인물 나올지 의문

지금까지 나온 주룽지의 거취로 가장 유력한 것은 그가 모교로 돌아가 엘리트 양성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2002년 12월 주룽지는 둥젠화(董建華) 홍콩 특별행정구 장관을 만난 뒤 홍콩 기자들과 만나 이같은 은퇴 계획을 비쳤다고 보도됐다. 주 총리는 “은퇴한 다음에는 문을 닫아 걸고 손님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고, 학계로 돌아간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그가 완전히 정계와 문을 걸어 잠근 것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그는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만은 상당히 확실해지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1988년 덩샤오핑의 경제정책 난조 때 경제 브레인으로 참여해 연착륙에 성공했듯이 이제는 자신이 만든 경제 정책을 연착륙 시킬 수 있는 있는가에 따라 중국경제의 미래가 좌우될 수 있다. 그럼 점에서 그의 조타수 역할을 했던 인물이 중앙 경제계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좋은 의미로 받아 들일 수는 없다.

주룽지의 뒤를 이어 총리를 맡을 것으로 유력시되는 원자바오는 사실 능력이나 일반의 인식에서 주룽지에 미치지 못한다. 경제방면을 책임질 부총리로 쩡페이옌(曾培炎) 국가발전계획위원회 주임이 유력하다. 그간 장쩌민의 경제자문을 한 쩡은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주룽지에서 벗어났을 때, 능력이 발휘될지도 모른다. 또 후진타오 정부가 부총리로 내세우려는 황쥐는 주 총리가 절대적으로 반대할 만큼 경제 관리 능력에서 주총리를 계승하기에 부족하다. 그가 리란칭이 맡았던 체육이나 문화 등을 맡을 경우 혼란은 덜하지만 경제에 관심을 가질 경우 혼란은 가중될 수 있다.

다만 그가 학계로 완전히 가지 않고, 원로회의와 같은 조직이 만들어질 경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경제정책에 대한 자문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일선에서 후퇴시킨 장쩌민이 지속적으로 그를 경제계와 분리시키려고 할 경우 주룽지의 영향력을 예상외로 작을 수 있다.

2002년 12월 중국 국가발전계획위원회(SDPC) 산하 거시경제연구소는 2003년에도 7.6-7.8% 성장을 예고했다. 이는 수출증가와 세계경제 호조가 작용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과연 이런 목표는 이루어질까.

중국 경제가 당면한 최대의 문제는 사실 주룽지가 오랫동안 진행하다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지 못한 금융문제 등 국내문제나 2002년 말부터 시작된 유가상승 등 국외 문제 보다는 주룽지의 퇴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2003년은 중국 경제에 있어서 포스트 주룽지시대의 첫 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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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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