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미봉책은 통합을 위한 화해의 방법이 아니다

등록 2002.12.31 10:55수정 2002.12.3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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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거나, 정권이 바뀌는 시기가 오면 우리는‘화해와 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이뤄지는 용서와 사면의 남발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런 넘치는 용서의 물결이 과연 우리가 공감하는 화해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목적과 동기가 불순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언론사 부당내부거래 조사결과 부과된 과징금이 12월 30일 모두 전격 취소됐다. 이미 납부한 언론사들은 당연히 전액 돌려 받는다. 그런데 공정위가 30일, 전원회의를 열어 지난해 15개 신문·방송사에 부과된 182억원을 모두 취소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언론사의 특수성과 경영상의 어려움’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지난해 공정위는 언론사들의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벌여 모두 5,434억원의 부당내부거래를 적발한 바 있으며, 여기에 대해 182억원의 과징금을 물린 바 있다.

이 과징금 중 동아일보가 62억원, 조선일보 33억9,000만원, 문화일보 29억4,800만원, 중앙일보 24억8,200만원 등 언론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이른바 족벌언론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경영상의 어려움’ 운운한 부분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더구나 ‘언론사의 특수성’은 도대체 무슨 얼어죽을 특수성이란 말인가? 언론사는 부당내부거래를 해야만 하는 특수한 조직이란 말인가? 정부가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한 족벌언론의 부도덕 개선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과징금 면제를 받은 해당 언론사들은 관련 내용에 대해 바른 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그간 김대중대통령의 경범죄 사면에 대해 “법치국가의 근본을 뒤흔드는 통치행위”라고 개떼처럼 달라붙어 물어뜯던 그들이 정작 자신들이 과징금 취소처분을 받자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또 지난 12월30일, 각종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형사처벌을 받았던 기업인과, 고위 공직자를 포함한 122명에 대해 31일자로 특별 사면·복권 및 감형을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비리 관련 공직자 및 재계 인사들까지 원칙 없이 사면한 것이다. 특히 사면 대상자 가운데는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불구속 기소된 뒤 확정판결을 받은 지 2개월밖에 안된 김영재 前금융감독원 부원장보와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 기소되고 확정판결이 난 지 겨우 4개월 된 최일홍 前체육진흥공단 이사장 등도 들어 있다.

정부나 대통령은 이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없는 상태에서 다른 가족은 생계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민생사범의 석방과 사면에 신경을 쓰는 것이 옳았다.

민주당도 웃기는 ‘손 내밀기’에 나섰다. 민주당은 지난 12월 30일 "선거기간 동안 한나라당과의 사이에 이루어진 고소 고발사건들에 대해 상호 고소 취소나 적절한 조치를 통하여 정치권의 화합,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방안을 검토·시행한다"며 "대선기간 동안 한나라당에 제기한 고소고발들을 일괄 취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민주당의 이런 화해의 손 내밀기는 대선 과정에서 제기한 고소고발들이 말짱 억지였거나, 그것도 아니라면‘서로 고소고발을 함께 취하하자’는‘더러운 거래’에 불과하다. 오히려 민주당은 노무현 당선자가 강조하는 원칙과 상식의 정치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법이 엄정하게 집행되고, 법적 판결에 의해 시시비비를 심판받겠다는 너무도 당연한 자세를 견지해야 옳다. 자기들끼리 고소고발하고 화해하자고 손 내미는 유치하고 비열한 짓은 더 이상 용납되어선 안 된다.

모든 의혹에 대해서는‘화해를 가장한 봉합’이 아니라, ‘화해를 위한 진실규명’이 이뤄지는 것이 옳고 결국 엄정한 법의 판결을 받아야만 한다.

화해와 국민통합은 더러운 얼룩을 눈가림으로 덮고, 가식적인 악수를 나누는 것으로 달성될 수 없고, 그런 방법은 시도되어서도 안 된다. 진정한 통합의 정치, 국민화합은 원칙과 정도가 강물처럼 살아있고, 강자와 약자가 차별받지 않는 사회정의에 의해서만 구현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더 이상 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는 새해에 바라는 작은 바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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