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바보의 성공학

16대 대선을 통해 다시 생각해보는 우리사회의 성공학

등록 2002.12.31 15:07수정 2002.12.3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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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성공을 꿈꾼다. 그런데 사회마다 꿈꾸게 하는 성공의 모습이 다르고 이에 도달하는 성공의 법칙도 다르다. 그리고 그 모습과 법칙에 따라 그 사회를 살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모습도 다르게 마련이다.

중공업회사에서 일했던 분의 수기에서 본 내용이다.

외국의 기술제휴선을 상대하는 업무를 맡게 되어 첫 대면을 하러 갔더니 상대가 하는 말이 "또 바뀌었네요" 였다고 한다. 나이도 지긋해 보이는 제휴회사 담당자는 기술전문가로서 제휴 처음부터 줄곧 그 업무를 담당해왔는데 우리 쪽은 승진을 하면 바뀌고 해서 계속 교체되어 왔던 것이었다.

그쪽은 전문분야를 맡으면 승진에 관계없이 나이가 들어도 계속 그 업무에 종사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 비해 한국의 직장생활은 승진의 사다리를 올라야만 하고 그 사다리에서 미끄러지면 실패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성공의 척도가 승진이다 보니 일 자체보다는 승진에 목매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승진이란 것이 단순히 능력과 실적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정치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라인에 속해있고 누가 나를 밀고 있는가 하는 정치적 요소에 크게 좌우되는 것이다. 그래서 직급이 올라갈수록 누가 실세이고 어느 줄에 서야하는지에 안테나를 높이 세워야 한다.

업무에만 몰두한다는 것은 세상물정에 어두운 어수룩함을 의미할 뿐이고 소신은 미련과 동의어다. 한국의 장년층이 정치에 관심이 많고 신문을 그것도 보수적인 신문을 꼼꼼히 읽는 것은 사회생활 자체가 한국의 정치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줄서는 능력은 비단 직장생활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군대 경험담을 듣다보면 줄을 잘못 서서, 줄 하나차이로 군대생활이 꼬인 경우를 자주 접한다. 요즘은 한 줄서기를 한다지만 공중전화나 화장실만 하더라도 줄을 잘 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일깨워 주는 곳이었다.

대학입시 또한 눈치와 줄서기의 학습장이었다. 끊임없이 눈치를 보고 될만한 줄에서는 능력이야말로 한국인에게는 사회생활의 필수적인 자질인 셈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솔직히 공개적으로 주장하지는 못하지만 기성세대들이 누누이 강조하며 몸소 보여주고 또 자라면서 피부로 체험하고 느끼는 것들은 위와 같은 것들이다. 이것들은 또 달리 표현하면 빽, 연줄, 아부, 패거리 그리고 철새라는 단어들로 우리 주위를 맴돌며 훈육시키는 것들이기도 하다.

빽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고, 연줄이 있어야 빽이라는 권력이 가능했고, 권력의 연줄을 확실히 하기 위해선 열심히 아부해야 했고, 그렇게 잡은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선 끼리끼리 뭉쳐서 패거리를 형성했고, 그러다 아니다 싶으면 재빨리 새로운 빽을 찾아 철새처럼 떠나는 것이었다. 요약하자면 힘있는 권력에 줄서기였다. 이것이 공개적으로 주장하지는 못하지만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던 성공의 법칙이었고 출세의 기본전제였다.

그런데 이러한 법칙과 전제를 정면으로 거스르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 그는 고집스럽게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원칙만을 고수하고자 했다. 그래서 줄을 선다는 관점에서 보았을 땐 정말 바보였다. 대학도 못나왔으니 잡을 연줄도 변변찮은 데다가 그나마 잡았던 황금밧줄도 놔두고 권력의 측면에서는 부실한 줄만 골라서 소신껏 잡아왔다. 그래서 바보라는 애칭으로 불린 정치인답지 않은 정치인이었다.

그의 바보같은 행동은 민주당내 국민경선 시작시 유력한 후보자의 진영과 비교할 때 정말 초라한 모습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것뿐인가! 설렁탕 한 그릇 못 얻어먹었다는 주변의 볼멘소리처럼 한국사회에서 또 하나의 필수인 사람정치에도 미련스러웠다. 그래서 대통령 후보가 되어서도 한참을 흔들렸다. 그런데 그 바보같은 길을 걸어 대통령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정도 되었으면 성공한 것이 아닌가!

바로 그 바보 노무현의 당선은 속도가 어떻든 한 사회가 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끊임없이 권력을 찾아 줄서는 것만이 성공을 보장하는 시대가 지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절묘하게 줄을 바꿔 선 정치철새의 모습에서 보았듯이 열심히 잔머리 굴려 기민하게 행동한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정치철새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정당화하며 사는지 모르겠지만 성공률도 높지 않다면 그렇게 추하게 살 필요 있겠는가. 돌아보면 정치철새하고야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나 또한 이 길이 더 나은가 저 길이 더 나은가 갈팡질팡 많이 했다.

조금이라도 빨리가기 위해 나은 줄을 찾아 끊임없이 차선을 변경해대는 도로상황처럼 피곤하면서도 체증은 체증대로 심한 것이 한국의 삶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 '단순하게 살아라'라는 처세서가 인기 있는가 보다.

어차피 줄서는 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허할 수밖에 없다면 그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좋아하는 길을 바보같이 꾸준하게 가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까. 또 그렇게 행복하면 그것 자체로 성공이 아닌가.

다시 또 새로운 한해가 밝아오지만 낡은 성공법칙이 효력을 다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바보의 성공을 보면서 나에게 맞는 아니 내가 원하는 성공의 길이 무언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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