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5

풍운의 태극목장 (5)

등록 2003.01.01 06:14수정 2003.01.0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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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당탕! 퍼억!

"크흐흐! 뒈져랏!"


곁에 있던 탁자가 자빠지면서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올 때 엎어진 채 꼼짝도 못하는 이정기의 옆구리로 철마당주의 거친 발길질이 쇄도하였다.

퍼어억!

"케에에에엑!"

반 장 가량이나 튀어 올랐던 이정기의 신형이 거칠게 떨어짐과 동시에 그의 입에서 선혈이 분수처럼 뿜어지고 있었다. 단 두 번의 발길질에 오장육부가 진탕된 것은 물론 간장과 비장이 파열된 것이다. 그런 그의 복부를 향하여 또 한번의 강력한 발길질이 쇄도하고 있었다.

퍼어억―!


"크아아아아아악!"

이정기의 신형이 또 다시 허공으로 솟았다가 떨어졌다. 그런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 발길질에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그 조각이 심장을 찔렀기 때문에 즉사한 것이다.


"이 나쁜 놈!"

"크흐흐! 죽고 싶어 환장한 늙은이군. 좋아, 어차피 모두 죽이려고 마음먹었으니 깨끗하게 죽여주지! 챠아아앗!"

"아악!"

언제 뽑아 들었는지 철마당주의 무적검이 허공을 한번 휘젓고 다시 검갑 안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곽호기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나마 완전히 베어진 수급이 늦게 떠오르는 바람에 비명이라도 지른 것이다.

잠시 후 곽호기의 목에서 수급이 분리되었다. 분수처럼 뻗어 나오는 선혈이 밀어낸 때문이었다. 이것을 본 장승환의 눈에서는 이글거리는 원한의 빛이 솟구쳤다. 곽호기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고, 이정기는 의형이자 처남이기 때문이었다.

"크흐흐흐! 네놈이라고 살려둘 줄 알았더냐? 죽엇!"

"캑!"

굴러 떨어진 장승환의 수급은 의형인 이정기의 옆구리 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간 뒤 멈췄다. 그리고 그곳을 향하여 시뻘건 선혈이 분수처럼 뻗어갔다. 혈도를 제압 당한 상태였기에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너무도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철마당주는 흡족하다는 듯 괴소를 머금고는 밖으로 향하였다. 밖에는 이미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지옥도(地獄圖)가 펼쳐져 있었다.

태극목장에는 팔백여 명의 식솔들이 있었다. 이들은 무림천자성에서 온 사람들에게 자랑스런 대완구를 보여주려고 마구간 앞에 집결해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무차별적인 살수를 펼쳐 가히 시산혈해(屍山血海)라 불러도 좋을 참상을 빚어 놓았던 것이다.

태극목장은 무림의 문파가 아니다. 따라서 무공을 아는 사람들이 전혀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반항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모조리 몰살시켜 버린 것이다.

같은 시각, 태극목장의 식솔들이 기거하는 초옥(草屋)들이 밀집해 있는 곳 곳곳에서 여인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안 돼! 안 돼! 아아아악! 안 된다니까… 비켜!"

"크흐흐! 안 되긴 뭐가 안 돼?"

"비켜! 아아아아악!"

순식간에 목부들을 모두 죽인 흉수들에 의하여 죽은 자의 여인들이 능욕 당하는 소리였다. 여인들 가운데에는 목부들의 내자도 있었고, 사랑하는 여식들도 있었다.

한편 대흥안령산맥의 널찍한 초지 위를 맨발로 줄달음질 치는 두 여인이 있었다. 이정기의 사랑하는 아내인 곽영아와 하나뿐인 누이동생 이형경이었다. 그런 그녀들의 뒤를 음흉한 괴소를 베어 문 채 느긋하게 따르는 사내가 있었다.

무림 최강의 문파인 무림천자성의 철검당주 방옥두였다. 그에게는 다른 외호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림색존(武林色尊)이라는 외호였다. 무림천자성에 몸담기 전에 그는 그저 색이나 밝히는 평범한 색마일 뿐이었다.

그러던 그는 무림천자성에 몸담은 이후 확연히 달라졌다. 무공에 가히 천재적이라 불러도 좋을 재능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여인들의 방심(芳心)을 얻으려면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어야 하며 달변(達辯)이어야 하였다.

따라서 그에게는 범인들보다 뛰어난 두뇌까지 있었다. 그러던 중 어떤 비급에서 채음보양대법(採陰補陽大法)이라는 희대의 방중비술(房中秘術)을 익히게 되었다.

이것은 호랑이 등에 날개가 달린 것과 진배없는 일이었다. 뛰어난 재능과, 두뇌, 그리고 비술 덕분에 무공의 무(武) 자도 모르던 그는 불과 이 년 만에 무림천자성의 철검당주 직에 오를 수 있었다.

다른 당주들 모두가 초절정은 아니더라도 제법 고강한 무공의 소유자였다는 것과 비교하면 정말 대단한 결과였다. 물론 그 이 년 동안 적어도 오백에 달하는 순음지기(純陰之氣)를 지닌 여인들의 청백이 깨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크흐흐! 뭘 모르는 놈들은 경험 없는 처녀를 좋아하지만 난 다르지. 색이 무엇인지를 아는 계집을 품는 맛이란…! 크흐흐흐! 그 동안은 풋내 나는 계집들을 상대하느라 별로였는데 오랜만에 괜찮은 물건들인 것 같군! 크흐흐흐!"

철검당주는 필사의 도주를 하는 두 여인의 둔부가 씰룩이는 모습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미친 듯이 달린 여인만이 줄 수 있는 쾌락이 어떤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너른 초원에서 여인들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음수(淫獸)의 더러운 발톱 아래 행복하기만 하던 두 여인이 처참하게 유린(蹂躪) 당하는 소리였다.


"흐흑! 어머니! 고모! 어디에 계세요? 흐흑!"

서산을 붉게 물들인 석양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소년이 있었다. 태극목장주 곽호기의 외손자 이회옥이었다.

비룡을 도살하려는 어른들을 피하여 하루 낮과 하루 밤, 그리고 또 다시 하루 낮을 지낸 그는 지독한 기갈(飢渴)을 참을 수 없었다. 세상에 태어난 이래 단 한번도 굶어본 적이 없던 그는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몰래 먹고 나오면 된다는 생각에 비룡을 감춰 두고 홀로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는 무슨 일이 있어났나 싶은 호기심에 마구 달려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는 그 자리에서 멈추고는 이내 맹렬히 토했다. 잘려진 수급과 벌어진 뱃가죽 사이로 흘러나온 창자를 보자 토악질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먹은 것이 없으니 토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노란 물까지 토한 그는 죽은 노인이 평상시에 자신을 친손자처럼 아껴주던 늙은 목부라는 것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태양목장에는 목부들과 말이 겨울을 나기 위하여 건초도 많이 준비하지만 보리나 기장, 수수 같은 작물들도 많이 재배했다.

이것들을 거둔 뒤 멍석에 널어놓으면 수없이 많은 참새들이 날아와 쪼아먹곤 하였다. 이럴 때면 아직 망아지를 배정 받지 못한 소년, 소녀들이 나서서 새를 쫓는 일을 해야하였다. 이것들이 잘 마르면 가마니에 담아 커다란 창고에 넣어 보관하였다. 이때에도 참새들은 극성맞을 정도로 달려들어 곡식을 쪼아먹었다.

작년에 노인과 이회옥은 한 가지 일을 꾸몄다. 새들이 가장 많이 모여들었을 때 아이들로 하여금 싸리나무 가지로 엮은 빗자루를 맹렬히 흔들면서 일제히 고함을 지르게 한 것이다. 예상대로 새들은 어두운 곳간으로 들어갔고, 곧 문은 닫혔다.

이후 노인은 지붕에 올라가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활투(活套 :덧)를 설치했다. 그리고는 아이들로 하여금 컴컴한 창고 안에서 또 다시 빗자루를 흔들게 하였다. 잠시 후 활투 안에는 참새들로 가득하게 되었다. 이날 태극목장의 목부들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참새고기를 안주로 거나하게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이후에 노인은 이회옥에게 활투를 만드는 법과 설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결과 수십여 마리의 토끼와 노루 등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토록 따랐는데 너무도 처참한 모습을 죽어있자 슬퍼하기도 전에 토악질부터 한 것이다.

"아아아아악! 아버지! 할아버지! 숙부님! 흐흐흑! 흐흐흐흑!"

태극목장의 대소사를 결정하던 외조부의 집무실을 찾은 이회옥은 비명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밖에 있는 수백여 구에 달하는 시신 속에서 셋의 모습을 볼 수 없던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세 구의 시신을 보자마자 구르듯 달려들고는 이내 눈물을 흘린 것이다.

한참 후 이회옥은 눈이 퉁퉁 부은 모습으로 밖에 나왔다. 너무도 많이 울어 이젠 더 울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시신을 뒤지고 또 뒤졌다. 모친과 고모를 찾기 위함이었다.

친자매도 아니건만 유난히도 우애가 깊었던 둘은 언제나 함께 있었기에 어딘가에 같이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체더미를 뒤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자 혹시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캄캄한 밤이 되었을 때 이회옥은 지쳐서 골아 떨어졌었다. 그리고 새벽이 밝아오자 또 다시 시체 더미를 뒤졌다. 시신들은 하나같이 수급이 베어지거나 팔 다리가 잘려나갔다. 그것은 여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젊은 여인들은 하나같이 발가벗겨진 채 죽어 있었다. 게다가 난행(亂行)을 당한 흔적이 있었지만 이회옥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음양(陰陽)을 알기엔 아직 어린 나이이기 때문이었다.

저녁이 될 때까지 흐느끼면서 돌아다닌 이회옥은 끝내 모친과 고모, 그리고 고종사촌인 장일정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외의 태극목장의 모든 식솔들은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있었다.

목장의 귀중한 재산인 대완구 등 말들은 한 필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시신들뿐이었던 것이다.

"흐흑!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숙부님! 제가 반드시 원수를 갚아드릴게요. 흐흐흑! 흐흐흑…!"

새로 만든 것이 분명한 봉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는 소년은 이회옥이었다. 봉분의 앞에 박혀 있는 자그마한 목비(木碑)에는 서툰 솜씨로 쓴 글씨가 쓰여 있었다.

< 조부(祖父) 곽호기지묘(郭虎基之墓) >
< 엄부(嚴父) 이정기지묘(李正己之墓) >
< 숙부(叔父) 장승환지묘(張承煥之墓) >

"흐흑! 아버지, 이제 저는 어떻게 살아요? 흐흑! 어머니도 없고, 고모도 없어졌어요. 정아도 없구요. 흐흑! 아버지! 흐흑…!"

흔히들 부친의 죽음을 천붕(天崩)이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극심한 슬픔을 느끼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부친이 있는 봉분을 쓰다듬으며 울다 지친 이회옥이 깨어난 것은 다음 날 새벽 무렵이었다.

그리고 몇 날 며칠 동안 힘든 나날을 보냈다. 팔백여 구에 달하는 시신들 모두를 한 곳으로 모아 놓는 것은 어른에게도 힘든 일인데 그 일을 한 것이다.

어린 소년의 혼자 힘으로 시신들 모두를 매장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겨우내 먹을 양식을 저장하곤 하던 구덩이로 끌어다 놓았다. 이제 지하저장고는 공동묘지가 된 셈이다. 남은 일이라곤 그곳을 흙으로 덮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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