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위기의 연속
깊은 잠에 취해 있다 깨어난 이회옥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선뜩한 느낌과 더불어 귀를 자극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빠각! 빠각! 빠드드드득! 빠각! 빠각! 빠드드득!…
'헉! 이게 무슨 소리지?'
이회옥은 머리카락이 온통 곤두설 듯한 이상한 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지하저장고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살며시 눈을 떴다. 그곳은 시신들을 모아 둔 곳이었다.
'허억! 저, 저건…'
저장고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수십 마리에 달하는 늑대들이 우굴거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전에 들은 소리는 서열에 밀려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늑대들이 시신의 뼈를 갉아먹는 소리였던 모양이었다.
'으으으! 어, 어떻게 하지?'
밤사이 꼼짝도 않고 있었는지라 아직 늑대들은 이회옥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눈앞에 먹을 것이 널렸는데 굳이 다른 곳을 찾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회옥은 최대한 슬그머니 움직여 천천히 물러섰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여 대략 삼십여 장 정도 떨어졌을 무렵 손가락 두 개를 입안에 넣고 힘껏 불었다.
휘이이이이이이익―!
날카로우면서 긴 휘파람 소리가 퍼져나가자 이회옥은 산등성이를 타고 냅다 달리기 시작하였다. 지난 며칠 간 굶었고, 몹시 지쳐있는 상황이었지만 정신만은 또렷하였다.
그는 평소보다도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자칫하면 늑대의 먹이로 전락할 순간이었으니 젖 먹던 힘까지 다 쓴 결과였다. 다행히 늑대들은 시신을 뜯어먹느라 정신이 없어 그런지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단 한 마리! 여전히 지하저장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밖에서 다른 놈들이 먹다 버린 뼈다귀를 씹고 있던 놈은 아니었다.
이회옥이 냅다 달리기 시작한 순간 고개를 든 놈은 썩기 시작한 시신을 먹을 차례를 기다리느니 신선한 먹이를 사냥하는 것이 났다는 듯 안광을 빛내는가 싶더니 달리기 시작하였다.
이때 둘 사이의 간격은 삼십 장이었다. 그러나 굶주린 늑대와 아직 어린 소년에게 있어 결코 먼 거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이곳은 사방이 탁 트여 있으며 온통 초지뿐인 곳이다.
아무런 장애물도 없다면 도주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조만간 잡혀서 갈가리 찢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맨 뒤에 쳐져서 지금껏 먹이를 먹지 못한 것이 억울하다는 듯 늑대는 맹렬한 기세로 달렸다. 하지만 곧 균형을 잃고 떼구르르 굴렀다. 놈의 네 발 가운데 하나에는 굵은 가시가 박혀 있었다.
깊숙이 박힌 그것 때문에 염증이 생겨있어 땅을 디딜 때마다 지독한 통증이 발생되기에 무리의 서열에서 밀려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이회옥은 늑대와의 거리를 좀 더 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제아무리 통증이 느껴져도 눈앞에서 팔팔한 먹이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늑대가 전력을 다하여 달리기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삼십 장이 넘던 거리는 순식간에 십 장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간격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지친 소년과 절뚝거리기는 하나 다 큰 늑대는 애초부터 상대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다시 거리가 좁혀져 불과 삼 장 정도 남았을 무렵이었다.
다가닥! 다가닥! 다가닥! 다가닥!…
케에엑! 깨깽! 깨깽! 깨깨깨깽―!
"하아! 하아! 용아, 나 좀 태워 줘! 하아! 하아!"
쏜살처럼 다가온 비룡이 멈춰 서는가 싶더니 이내 힘 찬 뒷발질을 하였다. 이것은 정확히 늑대의 아가리 부근에 격중 되었다. 어찌나 세게 걷어찼는지 달려들던 늑대가 거의 일 장 가까이 나가떨어진 후 연신 비명을 질렀다.
이 순간 거친 숨을 몰아 쉬던 이회옥은 황급히 비룡의 안장 위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설명을 길었으나 불과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다가닥! 다가닥! 다가닥! 다가닥!……
잠시 후 비룡은 쏜살같은 속도로 초원 위를 달리고 있었다.
"휴우…! 아앗! 저, 저건…!"
비룡에게 걷어 채인 늑대가 충격 때문인지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이회옥은 멀지 않은 곳에서 다가오는 무엇인가를 보고는 대경실색하였다.
늑대를 쫓았더니 범이 다가오더라는 말이 있다. 지금이 바로 그랬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맹호가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허억! 용아, 그쪽으로 가면 안 돼! 이럇!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니까. 허억! 용아, 빨리 가!"
이회옥은 능선 아래쪽으로 가려 고삐를 당겼으나 비룡은 말을 듣지 않았다. 난생 처음 보는 맹호의 모습에 겁을 먹었는지 미친 듯이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갔던 것이다.
잠시 후 맹호는 거의 십 장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비룡이 제아무리 순종 대완구라고는 하나 아직 망아지였다. 게다가 등에는 이회옥이 타고 있었다. 지금껏 사람을 태워본 횟수가 얼마 되지 않기에 몹시 불편한 상황이었다.
반면 맹호는 이미 자랄대로 자란 놈이었고 몹시 굶주려 있었다. 그러니 전력을 다하여 달려들었기에 삽시간에 간격이 줄어든 것이다. 이회옥은 맹호에게서 풍겨지는 노릿한 냄새에 이제는 끝이구나 싶었다. 이제 놈이 한두 번만 더 도약하면 그야말로 범의 아가리 속으로 굴러 떨어질 판이었다.
이때였다!
이회옥은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맹호 역시 허공에 떠 있었다. 본능적으로 아래를 내려다 본 그는 입을 벌리기는 하였으나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였다.
끝도 없어 보이는 시커먼 구덩이가 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룡은 어느 새 산등성이를 넘어 며칠 전 미친 듯한 질주를 하던 그곳으로 온 것이다.
"으허어어어엉!"
"허억! 휴우…! 용아야!"
절벽과 절벽 사이를 건너뛴 비룡은 위험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어느새 멈춰 있었다. 이 순간 이회옥은 손에 땀을 쥐는 순간이 마치 영겁인 듯 느껴지기라도 하는지 여전히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가 길고 긴 한숨을 쉬었다.
뒤따르던 맹호는 절벽을 넘지 못하고 끝이 없는 무저갱(無低坑)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발버둥을 치면서 떨어지는 모습이 너무도 선명히 보여 천천히 일어나는 일처럼 보이고 있었다.
"휴우…! 하마터면… 용아야, 수고했다. 수고했어."
이회옥은 비룡의 갈기가 있는 부위를 부드럽게 토닥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약돌처럼 떨어져 내리던 맹호가 점으로 보일 무렵에야 위기를 넘겼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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