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역사의 고도 루앙프라방 (2)

<세계문화유산답사> 라오스

등록 2003.01.01 16:33수정 2003.01.0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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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햇살이 창문을 뚫고 아침을 알려주었다. 깊은 잠에 빠진 몸을 두 팔로 일으켜 세운체 본격적인 루앙프라방 답사를 시작했다.

천년의 고도 루앙프라방의 첫발은 시내 중심부의 포티살랏 거리에 위치한 루앙프라방 박물관에 내딛었다. 하지만 느긋하게 출발해서 그런지 어느새 오전 일과는 끝나버리고 오후 한시 삼십분에 다시 연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근처의 시장을 둘러보았다.


a 왓 마이 쑤완나푸마함

왓 마이 쑤완나푸마함 ⓒ 홍경선

시내에서 유일한 상설시장인 '달라시장'에는 여러 가지 생필품을 팔고 있었다.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것이 이곳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시장 옆의 노상에선 몽족 여자들이 수공예 직물품들을 팔고 있었다. 예쁜 문양이 새겨져 있는 치마, 방석, 가방 등이 눈에 띈다.

태국의 치앙마이 나이트바자에서 샀던 치마나 바지 등의 면직물 등이 많았다. 아무래도 이곳의 물가가 훨씬 싸다는 생각에 바가지쓴 느낌이 들자 왠지 씁쓸해진다. 한참 시장을 둘러보며 걷다보니 유난히 멋지게 하늘로 향해있는 지붕이 보였다. 일본 교토에 있는 사원에서 봄직한 지붕모양이다.

1796년 아눌랏왕이 지은 '왓 마이 쑤완나푸마함'이었다.

사원안은 저마다 사진을 찍고 가이드 설명을 듣는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본관 정면엔 금색으로 조각된 무늬가 있는데 석가모니의 생애를 나타낸 것이라 한다. 황금색을 칠해서인지 다른 사원보다 더 화려해보이고 가치있어 보였다. 본관안으로 들어가보니 중앙에 커다란 불상이 앉아있고 주위로 각양각색의 불상들이 놓여있었다.

불상 아래로는 노스님의 사진들과 함께 그들의 흉상이 놓여있었다. 이 사원의 유명했던 역대 주지스님들인가보다. 그 뒤편엔 조그만한 불상들이 훼손된 체로 놓여있었다. 중앙의 멋진 불상뒤에 가려져 초라하게 방치된 것이 화려했던 역사의 뒷장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시간에 여유가 남아 박물관 뒤편의 푸시산에 올랐다. 루앙프라방의 중앙에 자리잡은 푸시는 100m가량의 나지막한 산이다. 산정상으로 향하는 138개의 계단을 올라간 후 입산료를 따로 받는 190개의 계단을 오르려니 점점 숨이 차오른다. 한숨 크게 들이마시고 마지막 계단을 밟으니 정상에 있다는 '쫌시 탑'은 공사가 한창이라 보기 흉했다. 그러나 주변경치는 듣던데로 굉장했다.

a 푸시산 정상

푸시산 정상 ⓒ 홍경선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루앙프라방 박물관은 마치 요새처럼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유난히 눈에 띄는 본관의 붉은 지붕주위로 작은 연못이 코코넛 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박물관 바깥으로는 좀전에 보고온 '왓 마이 쑤완나푸마함'이 보인다. 붉은 기와로 만든 5개의 지붕이 차곡차곡 묘하게 쌓여있는데 사원의 규모가 박물관의 1/4 쯤 되는 것 같다.


박물관 뒤편으로는 누런 메콩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조용한 물살위로 조그만 보트들이 강을 건넌다. 강 너머 빡우동굴과 같은 관광지로 가는 보트인가보다. 저중에 태국으로 가기 위한 훼이싸이행 스피드보트도 있으리라.

탑 뒤편으론 길다란 도로가 커다란 코코넛 숲을 헤치고 곧게 뻗어있다. 그 왼편으로 조용히 흐르는 강물 위로 조그만 철교가 놓여있고 그 뒤로 높다란 산들이 둘러싸여 있다. 확실히 산악지형이란 느낌이 든다. 집들도 깔끔하고 예쁘게 잘 지어져 있고 조성도 잘 되어 있다. 탑 오른편으로 활주로가 보인다. 하늘은 파랗지만 구름은 약간 회색이다. 그렇게 맑은 날씨는 아닌 것 같다. 높은 탑이 태양을 가리고 있어서 그런지 시원했다. 바람마져 선선하게 불어온다.

그렇게 한참을 루앙프라방의 전경을 살피고 있던중 어디선가 한국말로 찬송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한국에서 온 선교단이었다. 13명의 학생들과 함께 굵직한 목소리의 목사님이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이 땅을 가난과 불행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기도하는데 굳이 여기까지 올라올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멀리 찬송가가 울려퍼지는 그 순간 좀씨탑 안의 조그만 불당 안에선 인부 한명이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한 나라의 조그만 탑 위에서 두 종교가 대립하고 있는 듯했다. 전혀 조화롭지 않은 그 모습은 오히려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곳의 공기를 깨뜨리고 있는 듯했다.

a 푸시산 정상에서 바라본 루앙프라방 박물관.

푸시산 정상에서 바라본 루앙프라방 박물관. ⓒ 홍경선

강물은 조용히 흘러가고 시내의 자동차들도 사람들도 침묵한다. 나무는 바람에 조용히 흔들리고 있고 햇살도 말없이 내리쬐고 있다. 그러나 오직 찬송가만이 소음이 되어 정적을 깨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단 한번도 찬송가가 이렇게 시끄럽게 들린적이 없었다. 주변의 인부들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해하고 있을까? 그 노래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 땅에 복을 내리기위한 찬송가라는 것을. 그냥 즐거워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으로 알 것이다.

신성한 사원에서 소란을 피는 몰상식한 한국인으로 비칠 것이다. 심지어 통성기도까지 하기 시작했다. 마치 주문을 외고 있는 이상한 집단처럼 보인다. 이젠 울먹이기까지 한다. 종교적 차이인가? 푸시산에 올라 맛본 마음속의 평화와 고요, 정적마져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의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이곳에 왔으리라. 또 실제로 한국인 선교단이 라오스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갑작스런 일로 생긴 모든 잡념은 다시 유유히 흐르는 메콩강의 물살에 던져버리기로 했다. 적어도 지금 이순간 이곳에 앉아있는 내겐 루앙프라방의 고요한 정적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느덧 박물관문이 열릴 시간이 넘었다. 푸시산을 내려오니 박물관 정문이 열려있었다. 커다란 정문에 들어서면 황금빛의 프랑방 사원을 마주보고 서있는 동상이 보인다. 당당한 풍채에서 풍기는 위용이 과거 루앙프라방의 영화를 대변하는 듯했다.

a 루앙프라방 국립박물관

루앙프라방 국립박물관 ⓒ 홍경선

루앙프라방 국립박물관은 1975년 공산정권이 이 건물을 접수하기전까지는 왕궁이었다고 한다. '성스러운 방의 수도'를 뜻하는 루앙프라방의 어원처럼 이곳엔 많은 예술품들이 소장되어있다. 모두가 루앙프라방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하는 중요문화재들이다.

가방과 카메라를 맡긴후 프라방실로 향했다. 이곳 루앙프라방의 유래가 될 정도로 유서깊은 불상이 모셔져 있는곳이다. 그래서인지 철조망이 쳐져있고 바깥에서 들여다보게만 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것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비엔티안의 은행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장신구들로 치장을 하고 가운데 황금불상을 모셔놓았는데 높이 83cm, 무게 54kg, 80%이상이 금으로 되어있는 것이라 한다. 원래는 스리랑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11세기까지 앙코르제국에 있다가 란쌍왕국을 건립한 '파응음왕'때 라오스로 옮겨졌단다. 1779년 샴군에게 약탈당했던 것을 1839년 반환받은 것이라 한다.

입구에 들어서자 중앙에 황금색 의자가 놓여있다. 의자 위에 부채모양의 문서가 놓여져있었다. 홀 양옆으로 넓은 방이 있는데 오른쪽이 왕의 응접실이다. 여러 침대가 놓여져 있고 3개의 두상이 있다. 역대 왕들인가보다. 이곳 자체가 옛 왕궁이었기 때문이다. 루앙프라방 박물관은 1975년 공산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왕궁으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응접실을 나와 회랑을 지나 걸어가다보면 알현실이 나온다. 역시 중앙엔 의자가 놓여져 있고 사방에 칼과 작은 불상들, 그리고 왕과 왕비의 의상들이 놓여져 있다. 오른쪽 구석의 장식장에 놓여있는 불상들을 유심히 살펴보니 아래칸 네 번째 불상이 쓰러져있었다. 마침 관리요원이 지나가길래 지적하자 웃으면서 자고 있는 중이란다. 순박한 미소속에 비친 농담에선 정겨움이 묻어나온다.

알현실의 오른쪽으로 나가다보면 도서실이 나온다. 입구 바로 오른편엔 태국 국왕이 선물한 책들도 있다. 다시 회랑을 지나다보면 왕비의 침실이 나온다. 침실위로 왕비의 사진이 걸려있는데 상당한 미인이었다. 왕비침실을 나오면 이번엔 왕의 침실이 나온다. 침대 앞에 새겨진 얼굴이 셋달린 코끼리 조각이 유난히 멋져보인다. 힌두교의 신들 중 코끼리신인 가네샤의 모습이었다.

전시관엔 악사들이 쓰던 투구와 가면, 그리고 악기들이 놓여있다. 식당을 지나 돌아가면 알현실의 왼쪽방에 도달하게된다. 다시 회랑을 지나가니 왕비의 응접실이 나온다. 각 나라의 손님들이 선물로 주고간 장신구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옆으로 장관의 응접실이 나오는데 멋진 '체스'말들이 너무나 탐났다. 홀의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한바퀴돌아 왼쪽으로 나온 결과가 되었다. 너무 빨리 돌고 나온 것 같아 한바퀴 더 돌고 나와보니 푸시산에서 본 선교단이 와있었다. 역시나 이곳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관리요원 한분이 다가와 '코리안몽'이라며 못마땅해 한다. 우리를 일본인으로 착각했나보다.

a 황금빛 물결 프라방 사원

황금빛 물결 프라방 사원 ⓒ 홍경선

박물관을 나와 쭉 걸어가니 더 화려한 양식의 사원이 공사중에 있었다. 루앙프라방 박물관안에 있는 프라방 사원이었다. 에메랄드빛 지붕이 세련되게 뒤집혀 있고 벽 기둥마다 황금으로 치장되어있다. 햇살에 출렁이는 황금빛이 눈부시기만하다. 하지만 화려한 외관과는 달리 내부와 사원 뒤쪽은 공사중이어서 그런지 회색벽과 기둥들이 그대로 방치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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