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할머니로 느껴지던 날

어머니 새해 꼭 건강하십시요

등록 2003.01.02 10:23수정 2003.01.0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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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갑자기 많이 늙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지난해 12월초 어머니의 66번째 생신때였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언제나 늘 옆에 건강하고 젊은 모습으로 계실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사실 어머니는 제 머리와 가슴에는 40대 모습의 어머니로 정체되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어머니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건 생각일 뿐 어머니도 늙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머니 생신이어서 형제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식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셔서 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병원에서는 급체하신 것 같다고 하며 주사를 놓고 기력이 떨어지신 것 같으니 링거 주사를 맞으라고 권했습니다.

어머니는 링거를 다 맞는데 3시간 정도는 걸릴 것이라는 간호사를 말에 집에서 자식들과 손주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약이나 먹고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의 만류로 어머니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체념하신 채 응급실 구석 한켠에 있는 침대에 누워 3시간 가깝게 누워서 링거를 맞으셨습니다.

잠이 들었다 깼다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처음으로 어머니에게서 초췌한 할머니를 발견했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지금까지 생각한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여느 60대 중반의 할머니처럼 어머니도 할머니로 느껴졌습니다. 현실을 깨우치는 것 같은 느낌에 소름까지 돋았습니다. 두 아이의 아빠로서 아이들을 키우며 어머니의 세월의 나이를 잊고 살아온 죄책감이 몰려왔습니다.

직장이 바쁘다는 이유로, 다른 모임이 있다는 이유로, 아이들 문제로, 이유를 들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유로 저는 어머니에게 많이 소홀했습니다. 어쩌면 언제라도 곁에 계실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에 방임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이후로 저는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많이 늘었습니다. 아이들과는 긴 세월을 함께 할 수 있지만 어머니는 다르다는 생각이 파고 들곤 합니다. 이후로 저는 저도 모르게 어머니 걱정에 전화기를 들거나 느닷없이 어머니 집에 갔다 오자며 집사람과 아이들을 끌고 어머니 댁을 찾아 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저도 마음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예년 같으면 벅찬 계획을 세워 보고 이것저것 소원도 해보았겠지만 올해는 어머니와 우리 형제, 가족, 그리고 주위 사람들 모두 건강하고 별탈 없이 한해를 보내게 해달라는 소박한 소원을 빌었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얼마 전까지 제 마음속에 자리잡아 있던 젊은 모습을 되찾으시길 기원했습니다.

어머니 새해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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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주는 기쁨과 감동을 쓰고 함께 공유하고 싶어 가입했습니다. 삶에서 겪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그냥 스치는 사소한 삶에도 얼마다 깊고 따뜻한 의미가 있는지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그래서 사는 이야기와 특히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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