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세 냥 짜리 천리준구
이곳까지 오는 동안 들은 소문에 의하면 무천장은 산해관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장원이라 하였다.
그곳은 무림은 물론 천하 상계마저 완전히 장악한 무림천자성의 수없이 많은 지부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천장이라는 명칭은 무림천자성에서 따온 것이라 하였다.
무림천자성은 남칠성 북육성의 성도가 있는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산해관이나 옥문관(玉門關) 같은 주요거점 지역이라면 어김없이 지부를 설치해둔 바 있다.
그리고 세상에 널리 알려진 시진이라면 예외 없이 무림천자성의 지부가 있다.
그들의 명칭은 모두 무천장이었다.
천하의 대소방파 모두가 무림천자성의 한마디에 벌벌 떠는 이유는 바로 이같이 천하에 산재한 세포조직들 때문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세상에 비밀이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들 지부에서 파악한 천하 각지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은 경중에 관계없이 모두 무림천자성 총단으로 보내진다.
그렇기에 언제 누가 누구와 비무를 했다던지, 아니면 무슨 음모를 꾸몄다던지 하는 것들을 즉각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 지부는 각 지역의 상권을 완벽하게 장악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고리대금업에서 시작하여 기원과 객잔, 도박장과 전장을 흡수한 무림천자성은 서서히 천하의 상권을 말살시키는 중이었다.
하여 미곡상이나 약재상, 심지어는 장의사 일까지도 흡수하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무림천자성이 허락하지 않으면 사거나 팔 수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무튼 이회옥이 무천장을 찾는 이유는 비룡을 팔기 위함이었다.
그토록 아끼던 비룡을 팔려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현재 자신의 처지로는 제대로 사육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곳까지 오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비룡을 사줄 수 있는 곳은 그곳 뿐이라 하였다.
말을 사고 파는 마시(馬市)까지 무림천자성 관할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다 자란 대완구의 가격이 사천 냥 정도 한다 하였으니 비룡을 팔면 적어도 아무리 못 받아도 은자 천 냥은 족히 받을 것이다.
이회옥은 그것을 밑천으로 장사를 해볼 요량이었다.
천 냥으로 어린 망아지들을 구입한 후 그것을 기를 생각이었다.
말이라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자부하기에 제대로 조련하여 팔면 꽤 짭짤한 수입이 될 것이다.
처음엔 두 세 마리로 시작하지만 점차 수효를 늘릴 계획이었다.
그렇게 하여 종래에는 태극목장을 재건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것이 비명횡사한 부친과 외조부 그리고 숙부와 목장 식구들의 원혼을 달래주는 길이라 생각한 것이다.
무천장을 찾는 것은 너무도 쉬웠다. 번화한 시진 한 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가장 웅장하고 큰 장원이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저, 아저씨! 물어 불 말이 있는데요…"
"뭐? 물어…? 하하하! 야, 이 녀석아! 세게 물면 아프니까 살살 물어야 한다. 알았지?"
무천장의 수문위사는 꾀죄죄한 이회옥의 몰골을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다는 표정이었다.
"아저씨!"
"이 녀석이…? 그렇게 부르지만 말고 어서 말해봐라."
"아저씨! 저, 말을 팔려고 왔는데요…"
"뭐? 말을 팔아? 흐음! 그으래?"
말을 판다는 소리가 들리자 수문위사는 그제야 관심이 간다는 듯 비룡을 살펴보았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비룡은 늘씬하게 잘 빠진 망아지였다.
만일 비루먹은 망아지였다면 어서 썩 꺼지라면 한소리 더 했겠으나 그렇지 않자 날카롭게 벼려진 창을 세우면서 손짓을 하였다.
"들어가서 좌측으로 가라. 거기에 염소수염을 한 노인이 있을 것이야. 그 노인에게 가서 망아지를 팔겠다고 하면 될 것이야."
"고맙습니다. 아저씨!"
"허허! 녀석하고는…"
수문위사는 이곳 산해관에서 청년들에게 무공을 가르치던 청룡무관(靑龍武館) 관주의 아들 왕구명(王玖明)이었다.
그는 가문에 전래되는 무공을 가르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청룡검법이라 불리는 그것은 따로 구구검법(九九劍法)이라고도 불렸다.
팔십일 초식으로 이루어진 검법이기 때문이다.
그의 조상 가운데 하나가 창안했다는 그것으로 한때 무림에서 대단한 명성을 쌓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후손에게 전해지던 중 후반부가 기록된 비급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남겨진 청룡검법의 위력은 원래의 위력에 일 할도 채 되지 않았다. 검법의 주요부분이 후반부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청룡검법의 소문만은 그렇지 않았다. 예전의 명성이 아직 자자하였기에 무관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무관의 제자들 모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일이 발생되었다.
무천장에서 수문위사를 뽑는데 뽑히기만 하면 먹고사는 것에 전혀 지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청룡검법보다 훨씬 고강한 무공을 거저 가르쳐 준다 하였기 때문이었다.
허탈해진 그의 부친은 화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등졌다.
이에 분노한 그는 무천장을 원망하며 이를 갈았다.
그러나 보복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호위무사들을 조련시키려 파견된 무공교두의 무공이 자신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임종을 맞이한 순간 부친은 회광반조(回光返照) 현상을 보였다.
그때 유언을 남기길 소림사 장문 방장과 같은 절정고수가 되기 전까지는 절대 덤벼들지 말라 하였다.
삼대독자이기에 잘못 되기라도 하면 대가 끊긴다는 이유에서였다.
울분을 느낀 왕구명은 이를 갈면서 검법 연마에 몰두하였다.
그러던 그가 무천장에서 가장 말단이라 할 수 있는 수문위사가 된 것은 부친이 세상을 뜬 지 반년 후였다.
시름시름 앓던 부친을 위하여 모아 두었던 모든 재물을 사용하였는지라 먹고 살길이 막막해지자 할 수 없이 무천장의 문을 두들긴 것이다.
그는 모르고 있으나 자신들에게 좋지 않은 마음을 품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뻔히 짐작한 무천장에서는 그가 허드렛일을 해서라도 입에 풀칠을 하려는 것을 저지하였다.
이미 산해관 전역의 상권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을 뿐이었다.
하나는 산해관을 떠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치욕스럽지만 무천장의 녹을 먹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른 곳으로 가 보았자 무천장의 영향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라 판단하여 후자를 택한 그는 과거 자신에게서 검법을 배우던 제자들이 어느새 자신을 능가하는 고수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가장 낮은 자리인 수문위사가 된 것이다.
하여 임무교대를 하고 나면 끊임없이 검법을 수련하지만 이미 벌어진 격차를 줄이지 못해 아직까지 수문위사 노릇을 하는 중이었다.
이회옥은 왕구명이 가르쳐 준대로 좌측으로 향했다.
거기엔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염소수염 노인이 있었다.
그는 비룡을 보자마자 안광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흐음! 그 망아지 팔려고 온 거냐?"
"예! 이놈은 비룡이라고 해요. 정말 좋은 망아지지요."
"흐음! 그으래…?"
"예! 비룡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래 전에 멸망한 대완국의 명마로 대완구예요. 한혈마라고도 하고요. 이놈이 다 자라면 하루에 천리를 너끈히 달리는 천리준구가 될 거예요."
"크크크! 그으래…?"
노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
"예! 물론이에요. 비룡은 정말 좋은 말이에요."
"흐음! 한혈마인 것은 분명해. 하지만 이 말은 살 수가 없어"
"살 수가 없다니요? 이 말이 얼마나 좋은 말인데요. 보세요. 여기 잘록한 발목하고, 여기 이 근육 좀 보세요. 그리고…"
"말에 대해서 잘 아는 모양인데 이 말은 흉마(凶馬)야. 빌려 타면 객사하고, 주인은 길바닥에서 처형당하는 유안(楡雁)이라고, 다른 말로는 적로(的盧)라고도 하지. 이런 말을 누가 사겠나?"
"하, 할아버지. 그건 근거가 없는 이야기예요."
"근거가 없다고…? 상마경이란 책에 쓰여 있기를…"
노인의 말에 이회옥은 일순 할말이 없었다.
그것 때문에 태극목장에서도 비룡을 도살하려 하지 않았던가!
노인의 태도로 미루어 제값을 주지 않으려는 술책이라는 것을 짐작한 이회옥은 기대가 어긋나는 듯하여 잠시 망연자실해 있었다.
그동안에도 노인의 말은 이어졌다.
"제아무리 천리준구라 할지라도 재앙을 당한다면 누가 사겠는가? 따라서 비룡을 굳이 팔겠다고 하면 은자 세 냥을 주겠네."
"뭐, 뭐라고요? 세, 세 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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