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피정 체험기

소록도 나환자 촌을 찾아

등록 2003.01.08 08:24수정 2003.01.0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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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얼어붙은 겨울날 지나서 꽃은 피고 새는 우는 생명으로 충만한 봄날, 부활절 날쯤인가 해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소록도를 기행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참가자 전원이 머리를 맞대고 미리 여행의 모든 것을 조사하고 준비하는 기쁨은 실로 여행의 실제 못지 않게 기뻤다.


'작은 사슴을 닮았다'라 하여 소록도라 이름 붙여진 이 작은 섬은 전남 고흥군 도양면 녹동리의 선착장에서 바지선으로 5분 소요되는 바다 건너에 있는데, 일제 말기 때에 소위 '나환우'들이 소개되자, 흔히 '천형(天刑)의 땅'이라 불려왔다.

그러나 지금은 한쎈씨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천국으로 여겨진다. 1936년에 착공하고 1940년에 완공된 이 소록도 공원은 원래 '부드러운 공원(Gentle Hill)'이라 불렸지만, 해방 후 오늘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길이 14 킬로미터 정도의 이곳에는 환자 치료를 위한 '소록도 국립 중앙병원'과 직원 숙소 및 부대 시설, 아픔 속에서도 삶의 희망이 어린 나환자 마을 7개소, 정신적 위안과 구원을 축수하는 다수의 종교기관과 시설들, 그 옛날 일제의 부당한 처우와 박해의 상징인 '붉은 벽돌집'으로 구금 감식 체형과 단종 수술이 감행되어 '한번 들어왔다가는 한 사람도 살아 나가지 못했다'고 하는 감금실과 검시실, 푸른 바다 건너 사람들이 살아가는 육지를 바라볼 수 있는 소록도 해수욕장, 그리고 편안한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아름다운 중앙공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95명의 의료진과 직원, 80세 이상의 고령 나환우와 600여명의 지체불구 시력장애 중복장애 나환우 그 중 100여명의 중증장애 나환우를 포함하여 모두 800여명의 나환우들이 삶을 엮어가고 있다.

피정(避靜)이란 행사가 있다. 이의 어원은 피세정령(避世靜靈)으로, 이는 '풍진(風塵) 세속을 피하여 영혼의 고요함을 구한다'는 뜻으로 '생명의 본연적 의미와 가치를 찾아 아름다운 영혼을 가꾼다'라 이해함이 오히려 자연스러우리라 여겨지는데, 이의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묵상(默想)과 기구(祈求) 그리고 봉사(奉仕)의 체험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들은 피정 체험 행사로 적절한 곳을 소록도로 택했고 사전 준비를 했는데, 피정 중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울지 않을 것'과 '나환우들을 진정 가슴으로 뜨겁게 껴안는 것'을 행동 강령으로 정하고 소록도로 향했다. 어쨌든 우리 단원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인 나환우들이 살아가고 있는 소록도로 피정을 갔다.


당일치기로 기행하기 위해서 이른 새벽에 출발하여 남해고속도로의 순천에서 내려 국도로 벌교와 보성을 거치니 고흥 반도가 우리를 반겼다. 차창으로는 나지막한 산들과 오밀조밀한 들판 그리고 '숨막히는 황토빛' 흙들과 그 흙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들의 모습이 다가들었다. 어쩔 수 없이 땅과 가까이 살아야만 하는 곳이라 여겨졌다.

그런데 수확기의 마늘밭을 농민들이 원동기로 파 뒤엎고 있었다. 당시 얼마 전 '무선전화기를 중국에 수출하는 이면에 중국산 마늘을 수입하기로 한 계약으로, 국내 마늘 가격이 폭락하여 농민의 시름이 크다'란 기사가 일간신문의 하단 귀퉁바리에 실린 것을 기억하고는 농민들의 한스러움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그 소외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노라니 어느새 차는 고흥 반도 서남단의 녹동 선착장에 당도했다. 그 앞에 펼쳐진 잔잔한 물결과 파아란 빛깔의 바다 건너, 이 곳에서 빤히 보이며 손을 내밀면 닿을 것만 같은 그곳이 바로 소록도 공원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록을 바라보며 뱃전에 기대어 묵상해 본다. '배편으로 5분 남짓 담배 한 대 피워 물면 닿는 곳이 바로 소록도인데, 격리되어 소외된 섬과 사람 사는 육지의 거리가 하늘과 땅, 저승과 이승보다도 그래, 더 멀더란 말인가?'라고.

마침내 소록도에 도착했다. 언덕을 하나 넘으니 병원 건물과 부대시설들이, 이어 자그마한 밭뙈기들, 이어 군데군데의 옹기종기 마을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조금 높다란 언덕배기의 푸른 숲이 시골 토담집 뒷산처럼 우리를 반겼다. 그래 우리는 5시간만에 피정의 목적지인 소록도에 도착한 것이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식구들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멀리서는 적지 않은 식구들은 전동 휠체어를 재촉하며 참가를 서두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소위 나병, 한쎈씨 병을 경험한 음성 나환우들로, 외모는 인체의 말단 부위인 손과 발 등이 손상되어 장애를 입어 일그러진 모습이지만, 한 인간 존재로서 사랑의 표현과 같은 정감의 면에 있어서는 정상인과 다름없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너무나 오랜 간의 투병함으로써 마음에 다소의 구김살이 있을 뿐.

하지만 달인(達人)이 아닌 평범한 우리들로서는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는 연민의 정을 금할 길 없어서 마음의 눈물이 눈동자를 덮었다. 하지만 소리내어 울지는 않았다. 피정의 행사가 막바지에 다달아 마침내 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이는 서로 마주 보며 또는 손을 잡고서 또는 서로 껴안고는 '평화를 빕니다'란 인사말로 형제애를 나누는 시간이다.

주위를 살피니 의례적으로 행하듯 서로 눈웃음을 교환할 뿐이었다. 서먹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이상하게만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 단원들의 뇌리에는 하늘의 음성처럼 솟구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애초에 정한 강령처럼 '우리는 껴안고서는 진정 가슴으로부터의 평화를 나누기로 한다'는 신탁(神託)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영혼의 나눔을 실천하기로 했고 그렇게 뜨겁게 나눔을 실행했다. 이것이 곧 묵상과 기구와 봉사의 진정한 체험이니까.

그 다음 아름다운 중앙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 뜰은 흙과 돌과 나무들로 멋진 조경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중 원시림 같은 아름드리 나무의 모습들은 실로 장관이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아름드리 나무가 아니라 여러 그루의 동종 나무들이 서로 어깨를 기대고 서서 하나의 아름다움을 연출해낸 것들이었다. 즉 하늘을 치솟는 듯한 어엿한 자태는 보잘 것 없는 연약한 나무들이 더불어 함께 이뤄낸 아름다움이었다. 참으로 멋진 화두(話頭)로 여겨졌다.

그 공원의 잔디밭에서 싸온 김밥을 한 줄씩 나누어 먹고서는 서둘러 그 주변을 두루 살펴보았다. 한 가운데에 하늘을 치솟는 '구라탑(救癩塔)'이 서 있었는데 그것에는 '나병은 낫는다'라고 새겨져 있어서 이들에게 살아가는 희망과 기쁨을 심어주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그 뒤편으로 '다미엔(Damien)의 표석'이 있었는데 기독교의 목사였던 다미엔이란 분이 한 평생 이 곳에서 목자로서 양떼를 지키는 봉사의 삶을 실천한 것을 이들이 기리어 세운 것이었다.

그리고 한쪽 후미진 곳에 작은 성모상이 보였다. 이는 아마도 이들의 슬픔의 극복이란 희원을 성모 마리아를 통해 전구(轉求)함임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을 둘러본 우리는 이들의 삶의 비애를 더욱 절감할 수 있었고 사랑의 나눔이란 정신을 더더욱 새로이 새길 수 있었다. 참 좋은 경험이었다.

그런데 중앙공원의 널따란 뜰에 2미터 크기 정도의 바윗돌이 하나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경석이겠거니 여기고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 반석은 서각(書刻)된 것으로 다음과 같은 시구(詩句)가 담겨 있었다.

보리피리 -한하운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필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靑山/ 어릴 때 그리워/ 필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人환의 거리/ 人間事 그리워/ 필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放浪의 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필 닐리리.//


문학 청년이었던 젊은 시절 즐겨 가곡으로 불렀던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임을 알고는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래 그는 이름하여 문둥병을 앓았지'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신천지>(1949.04)에 '전라도 길'등 12편을 발표함으로써 등단했는데, 당시로서는 천형(天刑)이라 여겨지는 나병의 병고에서 오는 허무와 절망의 비애를 읊어 문단의 주목을 끈 바 있으며, 그 후 나환우 구제운동에 공헌한 바 컸고 이어 나병은 완치되어 이들에게 많은 기쁨을 전해줬지만 결국 나병 증후군으로 운명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비애와 삶의 치열함은 <보리피리>(1955. 인간사)란 시집으로 남아 커다란 감동을 준다. 소록도 기행에서 나환우들과의 접촉이 극히 제한적이라 우리는 그곳에서 살았던 한하운의 시편들을 통해 그들의 삶의 편린(片鱗)들을 더듬어 본다.

全羅道 길
-小鹿島 가는 길에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도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千里 먼 全羅道 길.//


사람들의 이색진 눈길을 피하여 그래도 삶의 희망을 꼬옥 껴안고서 소록도를 향하는 시인의 바람과 애탐을 발견할 수 있는 시편이다. 그의 시 '손가락 한 마디'에 나오는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졌다.//란 시구처럼 고통 속에서, '날이 따뜻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 터를 가려서/ 깊이 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는 재생의 희원을 읽을 수 있다.

또한 그의 시 '나'에서는 자신을 일러 '사람이 아니올시다./ 짐승이 아니올시다.//…(중략)…// 억겁을 두고 나눠도 나눠도/ 그래도 많이 남을 죄이올시다. 죄이올시다.// 그리고 시 '벌' 에서는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 없는 벌이올시다//…(후략)' 시 '삶'에서는 '…// 옛날에 서서/ 우러러 보던 하늘은/ 아직도 푸르기만 하다마는,//…// 잠깐만이라도 이 낯선 집/ 추녀 밑에 서서 우는 것은/ 욕이다 벌이다 문둥이다.//'라 하여 문둥이란 존재의 원색적인 슬픔을 절규하고 있다. 하지만 삶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그의 시 '봄'의 한 구절 '그래도 살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것은/ 한번밖에 없는 자살을 아끼는 것이요.' ). 그래서 고통스런 삶에서도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는 존엄이다. 다음의 시편 파랑새를 읊어 본다.

파랑새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 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이상의 한하운 시편들을 통하여 소록도를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나환우들의 삶의 비애를 절절히 읽을 수 있었다. 실로 좋은 경험을 할 있게 된 피정이었다. 무엇보다도 우리 단원의 행동강령을 그대로 실천했으니깐 더더욱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인내천(人乃天)'이라고 했던가? 사람이 곧 하늘인 것이여! '사인여천(事人如天)'이라고도 했어! 사람 섬기기를 하늘 같이 하란 뜻이여! (출전- <龍潭遺事>)그리고 '너희가 가장 버림받은 사람에게 행한 선행이 곧 너의 주 야훼 하느님께 행한 것이다.'(출전- < Holy Bible>)고 했다. 어떤 환우가 닥치더라도 그들의 안녕을 빌어 본다. 그리고 함께 살아갈 그 날이 실현되길 갈구한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끝없이 열려있기를 다짐해본다. 오랜만에 맛보는 신선한 공기였고 영혼의 양식이었다. 실로 좋은 피정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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