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 죽은 영혼은 지옥에 간다’

- 사형제도 존폐논란과 생명의 길 -

등록 2003.01.09 07:19수정 2003.01.0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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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던 책에서 발견한 단 한 줄의 문장이 빠른 속도로 많은 현실과 여러 기억을 한꺼번에 꿰어내는 체험을 누구나 한번쯤 해 보았을 것이다. 오늘 내가 그랬다. 오늘도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일어났는데 습관처럼 제일 먼저 마루에 나가서 오늘 날씨는 얼마나 풀리려나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바람을 쐬어보다가 간단하게 기체조를 마치고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배를 쭉 깔고 엎드려 어느 잡지를 뒤적이다가 발견한 문장이었다.


전쟁터에서는 살해당해도 지옥에 가?

‘전쟁터에서 죽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전쟁을 하다가 살해당하면 지옥에 간다’고 적혀 있었다. 살해당했는데도 지옥에 간다? 전쟁을 일으켜 많은 사람을 학살하면 지옥에 간다는 말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살해당해도 지옥에 간다고 하는 말에 내가 좀 놀란 것 같다. 이런 식이라면 전쟁터에서 죽은 모든 사람들이 지옥에 간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보던 잡지를 잠시 밀쳐두고 위층에 올라 가 책 더미 속에서 여러 권의 불교 경전을 가져와 원문을 찾아보게 된 것이다.

한참을 뒤져 찾아 낸 원시경전에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었다.

부처님은 어느날 전사들이 사는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북인도 여러 제국은 전쟁의 참화가 몇 백 년 계속되던 중이었다. 전사들이 사는 마을의 촌장이 부처님에게 절박한 마음으로 평소의 의문에 대해 물었다. 옛날부터 전쟁을 하다가 살해당하면 하늘나라에 간다고 하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던 것이다. 부처는 몇 번이나 즉답을 피하다가 거듭된 촌장의 간청에 대답하기를 ‘이유를 불문하고 모든 폭력과 살생의 의도는 악한 것이니 이런 의도를 가지고 싸우다 죽으면 천국이 아니라 지옥에 간다'고 말씀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생명에 대한 지고한 존엄이 담긴 말씀들이었다.

사형도 명백한 살인. 관제살인 아닌가


이 대목에서 제일 먼저 내가 떠올린 사람은 정말 어이없게도 한 여성이었다. 여전히 잘 나가는 여성. 바로 KBS 여성앵커 박찬숙씨였다. 바로 어제 우연히 자동차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다시 만나게 된 박찬숙씨는 사형제도 존폐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박씨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외람되게도 ‘아니 저 여자 아직도 방송하네’였다. 지난 대선 때 KBS에서 자사 앵커들이 패널이 되어 진행했던 후보 초청 토론을 보면서 패널들이 다 그랬지만 유독 박찬숙씨의 편견과 무지가 내겐 충격이 너무 컸었기 때문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이회창 후보를 대하는 태도와 달리 다른 후보에게는 무례하기까지 했다는 느낌이 들었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억 때문이었을까. 박찬숙씨에게 전화가 연결 된 사람들 중 다수가 사형제도 적극 찬성 쪽이었다. 사람을 죽인 흉악범은 다 없애버려야 한다는 주장은 듣기만 해도 끔찍했다. 어떤 사람은 왜 피해자의 인권은 생각도 않고 가해자의 인권만 생각 하냐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종교인들은 종교생활만 하지 이런 문제에까지 나와서 사형을 하면 안 된다고 떠드냐고 했다. 날로 범죄가 흉포화 되어 가는데 사형제도가 없어지면 더 큰일난다는 주장도 빠지지 않았다. 자기 아들이 죽어봐라 그런 사형폐지 얘기 나오겠냐 등등...

야만적인 복수의 논리가 생방송으로 넘쳐흘렀다.
흉악범을 죽이면 피해자의 인권이 보장된단 말인가. 흉악범은 왜 생겨나는지 모르고 하는 말인가. 형벌이 범죄를 예방한다는 건 믿어도 되는가. 날로 거칠어지는 우리 사회는 처벌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랑과 관용이 모자란 탓 아닌가 등등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차를 세우고 방송이 끝날 때까지 전화를 걸었지만 박찬숙씨와의 통화는 끝내 무산되었다.

경전을 읽으면서 두 번째 떠 오른 기억은 작년 가을 대검찰청 공안부장 출신인 한나라당 국회의원 최병국씨가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왜 법을 어겨 가면서 사형을 집행하지 않느냐고 질책했던 신문기사였다. 최씨는 현행 형사소송법에 사형 판결로부터 6개월 이내에 집행명령하게 되어 있는데도 97년 이후 56명의 사형수가 단 한명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는데 대해 법의 안정성과 국가 형벌권이 침해되고 있다며 질책을 했던 것이다.

유약하고 소극적인 '생명'을 말하는게 아니다

떠 오른 사람이 더 있었는데 한때 내 가슴을 달구었던 여자였다. 바로 로자 룩셈부르크. 그녀는 생전의 바람대로 죽었다. 그녀는 혁명의 길에서 압제자에게 학살당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었다.

나는 경전을 밀쳐놓고 보던 잡지를 계속 읽었다.

글쓴이 여운 김광하 선생은 설명하기를 부처님이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은 천국 간다는 미신을 부정하고 다 지옥 간다고 말하기란 당시 상황에서 보통 용기가 아니었을 거라고 설명을 달아 놓았다. 당시의 전통종교 바라문교도들은 다들 다투어 왕들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전쟁에서의 승리와 번영을 빌어주고 천국 간다면서 백성들을 전쟁터로 동원했다고 한다.

이런 사회분위기에서 부처님이 전쟁터에 나가 살해당하더라도 지옥에 간다고 하였으니 이른바 대세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도전이요 반역이라 할 것이다. 요즘 다들 소파개정을 요구하는 것이지 반미가 절대 아니다. 미군철수 하라고 공식적으로 요구한 적 없다. 등등 너나 할것 없이 손사래를 치는걸 보자면 부처님은 그야말로 할말은 하신 분이라 할 수 있다.

이라크로 파병되고 있는 미국 병사들에게 이 경전을 들려주고 싶었다. 아예 부시는 제쳐놓고 악을 징벌하고 정의를 세우러 간다고 착각하고 있을 병사들에게 소리쳐 읽어 주고 싶었다. 당신들 다 지옥 간다고. 미움과 분노와 짜증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다치는 나 자신에게 읽어 주고 싶었다. 희식이 너 그러면 지옥 간다고. 폭력과 살생의 의도만 가져도 지옥 간다고.

부처님이 지옥이라는 형벌을 앞세워 사람들에게 악행을 삼가하고 무명에서 벗어나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신 말씀이리라.

덧붙이는 글 | 새벽에 내가 읽은 잡지는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에서 발행하는 격월간지이다. 사이트는 www.indramang.org 이고 잡지는 인드라망 회원에게 우송하는 비매품이다.

덧붙이는 글 새벽에 내가 읽은 잡지는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에서 발행하는 격월간지이다. 사이트는 www.indramang.org 이고 잡지는 인드라망 회원에게 우송하는 비매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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