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UN 안보리 회부 불가피

[오마이뉴스-평화네트워크 공동기획] 전쟁과 평화(9)

등록 2003.01.10 16:12수정 2003.01.1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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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0일 '정부성명'을 통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이는 지난 6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대북 비난 결의안을 채택한 이후 예상된 수순이었으나, 남한 정부의 중재가 본격화되고 미국 정부의 아주 미묘한 자세 변화가 일기 시작한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북한은 탈퇴 선언을 하면서 미국과의 협상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지만, 미국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극히 낮고, 오히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북핵 문제를 회부하는 시점만 앞당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IAEA와 미국은 북한이 자체적으로 핵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주기 위해 유엔 안보리 회부를 늦출 방침이었으나, 북한의 NPT 탈퇴로 이른 시일 내에 유엔 안보리 상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또 다시 NPT 탈퇴라는 강수를 둔 것은 미국의 협상 거부에 대한 강력한 불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은 북한에 대한 유화적인 표현을 사용하면서 대화 용의를 밝히고 있지만,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기본적인 입장은 계속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NPT 탈퇴라는 강경 대응을 통해, 대미 압박을 강화하려고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기 때문에, 미국이 협상에 응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고 할 수 있다.

"핵무기를 만들 의사는 없다"

북한은 성명을 통해 부시 행정부와 IAEA를 강하게 비난하면서, NPT 탈퇴와 IAEA 안전조치협정 무효화를 선언했다. 북한은 탈퇴 이유로 "우리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압살책동과 그에 추종한 국제원자력기구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응당한 자위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핵무기를 만들 의사는 없으며 현 단계에서 우리의 핵활동은 오직 전력생산을 비롯한 평화적 목적에 국한될 것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북한은 지금까지 1993년 6월 11일 발표된 북미 공동성명을 근거로 NPT 정식 회원국이 아닌 '특수 지위'에 있어 왔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즉 북한은 93년 3월 12일 NPT 탈퇴를 선언한 바 있고, 그 해 6월 12일부터는 NPT 회원국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할 필요가 없게 되어 있는데, 전날인 6월 11일 미국과의 공동성명을 통해 '임시 정지'된 상태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NPT 탈퇴 선언을 통해 3개월간의 유예기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 가능성까지 닫아 놓은 것은 아니다. 북한은 성명에서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시 압살 정책을 그만두고 핵위협을 걷어치운다면 우리는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조ㆍ미 사이에 별도의 검증을 통하여 증명해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즉 미국이 불가침 조약 체결 등 대북한 체제안전보장을 해주면, IAEA를 통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원하는 검증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협상 가능성은 여전히 낮아

a 극심한 전력난에 시달려온 북한은 작년 11월부터 중유 제공마저 끊기면서, 최악의 전력난에 직면하고 있다.

극심한 전력난에 시달려온 북한은 작년 11월부터 중유 제공마저 끊기면서, 최악의 전력난에 직면하고 있다. ⓒ Global Security.org

극심한 전력난에 시달려온 북한은 작년 11월부터 중유 제공마저 끊기면서, 최악의 전력난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의 NPT 탈퇴 선언은 중유 제공을 원하는 간접적이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NPT 탈퇴 선언 직후 베이징 주재 대사관을 통해 중유 제공을 재개하면 NPT 탈퇴를 재고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또한 북한이 "현 단계에서 우리의 핵활동은 오직 전력생산을 비롯한 평화적 목적에 국한될 것"이라며 핵무기 개발과 무관함을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일관되고 절박한 요구는 역시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보장의 '담보'를 받는 것이다. 미국이 계획대로 대이라크 전쟁을 끝낸 이후, 총구가 자신에게 향할 것이라는 강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미국과의 협상을 이끌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북한의 기대대로 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중유를 다시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고농축 우라늄과 관련한 의혹이 해소되어야 하는데, 북한과 미국의 입장이 천양지차이기 때문에 대단히 쉽지 않다. 또한 북한이 요구하는 불가침 조약 체결에 대한 미국의 반대 입장이 워낙 단호하고, "악행을 보상하지 않겠다", "협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미국이 북한의 NPT 탈퇴를 '협상'으로 응수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NPT 탈퇴가 핵문제를 둘러싼 대결의 축이 '북한과 미국'이 아닌, '북한과 국제사회'라는 입장을 강화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북핵 문제가 유엔 안보리에 회부되면, 북미간의 협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 역시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동시에 북한의 강경 드라이브가 부시 행정부의 대이라크 전쟁 계획에 차질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의 딜레마는 더욱 커질 것이다. 유엔을 통해 이라크와 북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이라크에는 '전쟁', 북한에는 '평화적인 해결'을 추구하는 이중 잣대에 대한 미국 안팎의 비난 역시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무원칙한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언론의 도마위에 오르고 있는 것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의 NPT 탈퇴가 미국에게 미칠 영향은 이중적이다. 한편에서는 "북한이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려 든다. 절대 굴복해서는 안된다"며 강경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경파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 북한의 핵무장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온건파의 주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함으로써 강온파 주장을 모두 흡수하는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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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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