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자가 본 한국현대사

강준만의 <한국현대사 산책>

등록 2003.01.13 16:22수정 2003.01.13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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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과 금기에 도전하는 글쓰기로 정평이 나있는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한국현대사 산책(인물과사상사)>을 펴냈다. 저자 강준만은 이 책 제1권 머리말에서 "전태일은 가고 없다. 사람들은 전태일을 잊어버렸다. 남은 건 경부고속도로다" 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이 책의 1권 내내 저자의 주장은 더 이상 없다. 강 교수는 자신의 주관적인 주장 대신 오직 한국현대사에 흩어져 있는 조각들의 꿰맞추기라는 객관성을 통해서 독자 스스로 말하고, 판단하고, 느끼도록 하고 있다.


저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사실의 연속적 조합을 통해서 한국현대사의 즐거운 산책을 즐기도록 유도하고 있다. 강 교수는 현대사의 편린들을 주워 모아 이 책을 통해서 살아 숨쉬는 우리의 역사로 되살려 내고 있다.

나는 1967년 생이다. 1974년에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고, 1979년 10.26 사건이 일어난 때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이 책의 제1권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에 등장하는 사건의 일부는 당시 세상의 소식을 통해서 들었던 사건들이다. 그래서 더욱더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유구한 역사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살아 왔던 주변의 이야기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의 조각을 엮어서 살아 움직이는 역사로 되살려 내고 있다.

언론의 보도통제로 국민의 알권리가 심각하게 침해 받고있던 그 시절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던 사실들, 또는 어렴풋이 소문으로만 나돌았던 사건들에 대한 내용도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기술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언론개혁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언론학자답게 저자는 한국현대사의 주요부분에 대하여 언론과 현대사와 상관관계를 밝히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의 감시와 통제는 정권을 유지하는 핵심이었고,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국민이 하고자 하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했다. 강력한 국가권력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더욱 견고한 독재권력으로 탄생한다. 그러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는 법. 박정희 정권은 부패의 근원을 내재하고 출발한다. 부패는 또 다른 사회적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국가권력 자체를 송두리째 집어삼킨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2000년대의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이른바 '주류정서'라고 하는 건 1970년대에 대한 거의 맹목적인 긍정이다. 그러한 긍정의 토대위에서 2000년대의 현안을 논한다는 건 원초적으로 불공정한 게임임에 틀림없다." 이는 한편으로 한국현대 정치, 경제, 사회사에서 지역감정, 또는 지역주의가 한국현대사와 어떠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밝히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 책의 제1권을 읽고 나서 필자 나름대로 한국현대사를 거시적인 안목으로 조명해 보았다. 그 결론은 앞에서 전술 한바와 같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언론통제요, 또 하나는 지역주의다. 이 두 수레바퀴가 어떠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우리의 현대사를 엮어 왔는가를 밝히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몫이라 판단된다. 나는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하여 개발독재, 인권유린 등 박정희 정권의 온갖 악행이 저질러 져 왔다고 본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밝힌 박 정권의 긍정적인 면에 해당하는 사실도 기술하고 있다. 그것은 그린벨트와 산림녹화 정책이다. 하기야 1970년대 우리의 산들은 민둥산이 대부분이었다. 일제의 전쟁물자 확보를 위한 무분별한 벌목과 농촌지역의 목재 연료 사용으로 산은 온통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것이 필자가 태어난 고향산에 대한 기억이다. 그러나 이후 산림녹화 정책으로 지금 대부분의 우리의 산들은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이 책에서 특히 놀라운 것은 저자의 성실성이다. 제1권에만 다방면의 자료에 대한 주석을 꼼꼼히 달아 놓고 있다. 10여년에 걸친 자료 수립, 1만여개의 주제별 파일을 통해 집필에 들어갔다고 "책을 발간하며"에서 밝히고 있다.

독재 정권하에서 보아도 보지 못 하였고, 들어도 듣지 못 하였고,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 했던 모든 이들에게 한국현대사 산책은 떳떳하지 못 했던 우리의 자화상이다.

언론 학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한국현대사의 산책은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1 -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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