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프로그램 후안무치 도 넘었다

가학행위에 즐거워하는 연예인... 방송의 공공성 무시하는 제작진

등록 2003.01.14 22:16수정 2003.01.2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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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는 요즘 오락프로그램

요즘 TV를 볼 때면, 내가 대체 어떤 채널을 틀고, 어떤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지 헷갈리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주말 6시에서 8시 사이 그런 경험을 더욱 심하게 겪게 된다. 예전에 재밌었다고 느낀 프로그램을 보려고 채널을 돌리는데 비슷한 인물, 비슷한 내용이라 채널을 고정시켜놓고 보면 한참 뒤에서야 딴 방송사의 다른 프로그램임을 알아채게 되는 황당함을 요즘 TV를 보는 시청자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게 된다. 바로 SBS, KBS2, MBC 공중파 방송3사의 연예오락프로그램들 때문에 시청자들은 한순간 우롱 당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프로그램에서 말재주 좀 부리고, 한 몸 희생해 온갖 추태를 보이며 용케 인기를 얻게 되면 그 순간부터 겹치기 출연에다, 돈 좀 얹어주는 방송사에 이리저리 널뛰듯 넘나들게 되는 것도 전혀 새로울 것 없고, 다른 방송사,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할 줄 아는 게 그것뿐인지라 똑같은 말장난을 하는 것도 이미 우리 시대 연예인과 오락프로를 보면서 눈에 익숙한 현실이 되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놈이 그놈'인 그것들을 어쩔 수 없이 볼라치면 즐겁기는커녕 짜증만 나오게 된다. 주말 저녁 마음 편하게 TV 보면서 쉬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다.

갈 때까지 가보자

한데 요즘 오락프로들은 여기서마저 한 걸음 더 나가고 있다. 말장난과 자신이 가수인지 배우인지 개그맨인지도 모르고 '주접'을 떠는 개인기만으로는 이제 더 이상 식상해 하는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을 수 없다는 생존전략에서 나오는 듯, 말 그대로의 온갖 '처절한 몸부림'이 요동치는 생쑈를 화면 가득 선사해주는 것이 요즘의 오락프로다.

쇠쟁반으로 머리를 내려치는 거야 이제는 아주 귀여운 수준이고, 게임에서 져 달랑 들려 나갔다가 온몸에 떡칠을 하고 이상야릇한 옷단장을 하고 나오는 것은 그냥 유치한 수준이다. 이 정도로 '처절한 몸부림'으로 불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시청자들의 눈길을 계속 잡아둘 수도 없다. 눈물겹고 처절한 몸부림, 한순간에 모든 시청자들의 혼을 빼놓으며 급기야 눈이 빠질 정도의 관심을 끌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a 보기에도 안타까운 장면. 하지만 망신창이가 되고도 출연자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진정한 마조키스트를 보는 듯하다.

보기에도 안타까운 장면. 하지만 망신창이가 되고도 출연자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진정한 마조키스트를 보는 듯하다. ⓒ KBS

사례 하나) 개그맨, 가수, 운동선수 출신의 아직도 정체가 애매모호한 연예인(이 순간 이 말이 딱 들어맞는다) 등의 남자 출연자들(전통적 개념으로는 한 무대에서 같은 꼭지를 진행하는 것조차 어색한)을 놓고 여자 출연자 한 명이 특정 몸짓, 특정 언어를 구사하면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모르지만 정말 보기에도 섬뜩한 물대포가 턱 아래에서 혹은 머리 위에서 인정사정 없이 쏘아져 순식간에 남자들은 만신창이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는 시청자가 '어휴 저걸 맞으면 무지하게 아프겠다. 대단하다, 대단해'라고 느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사례 둘) 남자 연예인과 여자 연예인이 각각의 팀을 이룬 집단 짝짓기 장소.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선택받기 위해, 탈락의 수모를 모면하기 위해 진심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으면서 온갖 애교를 다 떨고 낯간지러운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다.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의 섹시함을 자랑하기 위해 온 허리와 엉덩이를 흔들며 '나 섹시해요'를 외쳐대고, 흥분한 남자는 그 앞에 뛰쳐나와 같이 허리와 엉덩이를 돌려댄다. '흠... 볼 만한데'라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얻어낼 때까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온몸을 놀렸음에도 폭탄이란 멍에를 쓰고 탈락하게 되면 출연자들 사이에서 망신당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무대에서 사라지는 순간까지 물통에 빠지고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수모를 겪게 된다. 시청자들이 '좀 불쌍한데'라고 느낄 때까지.


a 요즘 어느 채널을 틀든 연예인들 짝짓기가 성행중이다. 윤정수같은 연예인은 실컷 무시당하다 '폭탄'으로 취급받는다.

요즘 어느 채널을 틀든 연예인들 짝짓기가 성행중이다. 윤정수같은 연예인은 실컷 무시당하다 '폭탄'으로 취급받는다. ⓒ MBC

물론 특정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경향을 통해서 예를 들었지만 특이한 모습이 결코 아니다. 다른 방송사 다른 프로그램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왜냐. 어떤 프로가 시청률을 올렸다 하면 비슷한 포맷의 베끼기 프로가 여지없이 다른 방송사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어떤 프로의 연예인에 대한 벌칙이 반응이 좋았다하면 다른 방송사, 다른 프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벌칙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은 가학행위를 즐기고 있다?

요즘 이처럼 막 나가는 오락프로그램의 연예인들에 대한 벌칙을 두고 가학성을 심각하게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연예인의 인권은 어디 갔느냐', '연예인이 방송사의 소유물이냐'는 지적도 있다. 물론 맞는 얘기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주기 싫다. 당하는 인간이 스스로 심각하게, 부당하게 받아들이지도 않는데 가학성이니 뭐니 말을 해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연예인들은 마조키스트들이냐', '그렇게 당하고도 웃고 떠드는 이유가 뭐냐'라는 식으로 시청자들과 언론들이 따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한때는 연기 잘하고, 노래 잘하는 것보다 만담과 개인기에 출세와 인기영합의 모든 걸 걸더니 이제는 얼마만큼 망가지느냐에 연예인으로서 성공의 비결이 있다고 믿는 연예인들에게도 비판을 화살을 겨눠야 한다. 지금의 것은 예전 몰래카메라로 사람 바보 만들면서 괴롭히던 것과는 성질이 다르다.

a 여자에게 선택받기 위한, 결투!!! 온갖 수모와 폭력도 '재미'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여자에게 선택받기 위한, 결투!!! 온갖 수모와 폭력도 '재미'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 MBC

아울러 방송이 장난인 줄 아는지, 2시간 내내 자기네들끼리만 즐거운 개인 사생활 파기, 옆 사람 망신창이 만들기에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그것도 황금시간대에 낭비하고 있는 방송사 제작진들은 분명히 대오 각성해야 한다. 도대체 시청자들을 뭘로 보는가. 시청자들도 단지 시청률 올려주는 도구로만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시청자들이 우리 프로그램을 사랑하는 증거로서 이렇게 높은 시청률이 있지 않느냐. 헛소리하지 마라'라는 말은 제발 하지 말길 바란다. 자신들이 시청자들의 입맛을 쓰레기같은 프로그램에 맞게 길들여놓고, 같은 시간대 다른 걸 볼래야 볼 수 없게 만들어 놓고선 제발 당신들이야말로 헛소리하지 말아야 한다.

시청률은 곧 돈과 명성으로 직결된다. 시청자들은 돈과 명성에 집착하던 연예인과 제작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서세원'씨를 보면서 '은경표' PD를 보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방송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방송의 공공성을 무시하는 제작진과 출연자들은 언제고 시청자들에 의해서 심판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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