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탄생, 감사와 기쁨 속에는 눈물도 ①

등록 2003.01.16 08:04수정 2003.01.16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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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대전교구 태안교회는 새해 1월의 한중간인 14일과 15일, 연 이틀 동안 참으로 큰 기쁨을 누렸다. '새 사제 탄생'으로 말미암은 기쁨이었다.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있은 14일의 '사제 서품미사'에 이어 15일에는 태안교회가 배출한 두 번째 사제인 방영훈(도미니꼬 사비오) 새 신부가 출신 본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고 경축 행사를 가진 것이었다.


충남 태안 땅에 천주교의 복음 전파가 시작된 때는 1956년. 그때로부터 47년의 세월이 흘렀다. 서산 동문본당의 공소로 있다가 사제가 상주하는 본당으로 승격된 때는 1964년. 그로부터 39년의 연륜이 쌓여졌다.

공소 시절까지 합쳐 반세기 가까운 연륜 속에서 태안교회공동체가 배출한 사제는 1월 14일 이전까지는 단 한 명이었다. 1990년 2월 20일 사제 서품을 받은 김한승(라파엘/ 현 대전가톨릭대학교수) 신부가 최초이자 유일한 출신 사제였다. 그러니까 34년의 연륜을 안고서야 첫 번째 사제가 배출되어, 어렵사리 '사제 배출 본당'의 반열에 오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로부터 무려 13년만인 2003년 1월 14일, 드디어 두 번째 사제가 배출되는 기쁨과 영광을 안았으니, 태안교회공동체의 경축 분위기는 참으로 진지하고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태안교회공동체는 몇 년 전에 두 번째 사제 탄생의 기쁨을 얻을 수 있었으나, 그 직전에서 그만 '사제 성소(聖召)'가 좌초하고 만 쓰라린 경험을 안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의 아쉬움과 실망은 정말 컸다. 누구도 이미 부제품까지 받은 이의 사제 성소를 의심하지 않았다. 로만 칼라까지 착용한 부제의 사제 서품을 기정 사실로 여겼고, 몇 달만 지나면 사제 탄생의 기쁨을 온 교회공동체가 누릴 줄로 알았다.

그러나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야 할 처지에서 고독에 대한 예감, 그 중압감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성에 대한 갈망으로 끝내 사제 성소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출신 본당 신부는 물론이고 신학교 교수 신부들과 동창 부제들과 후배 신학생들, 부모 형제 친지들이 그의 사제 성소를 보호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눈물로 만류를 하기도 했으나 모두 허사였다. (나는 그가 내 대자이기도 해서, 나 또한 상심이 참으로 컸다.)


교회공동체에서 신학생이 나게 되면 모든 신자들이 관심을 갖고 그 거룩한 부르심이 마침내 한 떨기 꽃으로 피어나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신자들이 신학생들을 아끼고 격려하는 정성은 음으로 양으로 참으로 극진하다.

천주교의 사제는, 거룩한 부르심에 의해 신학교에 입학하면 10년 후에 사제직에 오를 수 있다. 신학교 공부 7년에다가 중간에 군대에 가야 하기 때문에 군대 3년까지 합해 10년 세월의 공든 탑을 쌓고서야 신부가 될 수 있다.


신학교 7년의 학업과 수련은 참으로 엄격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유지되는 것이긴 해도, 학업과 수련의 어려움은 신학생들에게 무시로 성소 포기를 유혹한다. 신학교에서의 수련은 정결과 청빈과 순명 정신을 바탕으로 평생 동안 독신으로 살아야 할 사제 생활의 기초를 닦는 과정이니 참으로 엄격할 수밖에 없다.

10년 동안 공든 탑을 쌓는 과정에서 도저히 독신으로 살 자신이 없어서, 신학교 생활에서 뭔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서, 또는 학업 성적이 좋지 않아서, 스스로 포기를 하거나 퇴학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된다. 그리하여 끝까지 사제 성소를 지켜 10년 후에 사제직에 오르는 사람들보다 중도에 포기를 하거나 탈락되는 사람들이 몇 배로 많게 된다.

그런 사정을 잘 아는 신자들은 신학생들을 예사로운 눈으로 보지 않는다. 애처로운 눈으로 보기도 하고, 조마조마 하는 심정으로 보기도 하니. 자연적으로 그들을 위해 각별히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신자들에게는, 신학생들은 신자들의 기도를 먹고산다는 관념이 거의 일반화되어 있을 정도다.

그런 과정 속에서 신학생 하나를 키워, 그가 부제품까지 받아서 몇 달만 있으면 사제가 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는데, 바로 그 직전에서 그만 스스로 사제 성소를 포기하고 말았으니, 교회공동체 전체의 좌절과 상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몇 년 전의 그 쓰라린 경험을 안고 있는 신자들은 같은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더욱 열심히 기도했다. 더욱 각별한 눈으로 신학생을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부제가 되어 제대 앞에 올라 사제의 미사 집전을 도우면서, 강론 시간에 자신의 방씨 성을 이용하여 "향기 나는 '방부제(防腐劑)'가 되겠다"는 공언으로 신자들에게 웃음을 안겨 준 방 부제를 신자들은 안심하며 믿음직스러운 눈으로 보기도 했다.

그런 방 부제가 드디어 1월 14일 신품성사를 받고 사제직에 올랐으니, 태안천주교회로서는 13년만에 두 번째 맞이하는 사제 배출, 사제 탄생이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일대 경사인 것이었다.

13년 전의 첫 사제인 김한승 신부는 출신 동네가 서산 땅에 속한 곳이었다. 행정적으로는 서산에 속한 곳이지만, 태안 성당과 좀더 가깝다는 이유로 태안 본당에 속하게 되었는데 서산에 석림 본당이 생기자 지난해 그쪽으로 편입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사제 서품을 받은 방영훈 신부가 태안 출신 천주교 사제로서는 사실상 최초인 셈이었다.

태안천주교회는 14일 관광버스 다섯 대를 동원하여 실로 많은 신자들이 대전 충무체육관으로 향했다. 오전 10시 30분에 시작되는 사제 서품미사에 여유 있게 참석하려면 새벽 6시에 출발을 해야 했다.

옛날에는 천주교 사제서품식이 각 교구의 주교좌 성당에서 베풀어지곤 했는데, 대전교구의 경우 몇 년 전부터 충무체육관을 이용하곤 한다. 주변 교통 혼잡과 장내 질서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전교구의 올해 사제 서품식에서는 모두 여섯 명의 새 사제가 탄생했다. (10년 전에 대전가톨릭대학에 입학한 사람은 30명이었다는데….) 그러므로 교구 내 여섯 개 본당 신자들이 대거 참석하고, 새 사제들의 친척 친지들이 모이고, 거룩한 예절에 참석한 다음 새 사제로부터 안수를 받으려는 대전시내 성당 신자들도 개별적으로 많이 와서 5천 명을 수용하는 실내 체육관의 스탠드를 꽉 메웠다.

경기장 부분에는 사제 수품자들의 가족석, 수도자석, 신학생석이 마련되었고, 제대의 양편에는 사제석이 마련되었다. 제대의 뒤쪽, 경기장의 특별석은 성가대 자리로 꾸며졌다.

천주교의 사제 서품미사가 얼마나 중요한 행사인가는 참석한 사제들의 수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은퇴 사제와 외국에 나가 있는 사제들까지 교구의 모든 사제들이 참석한다. 대전교구 소속 백 수십 명의 사제들이 제의를 입고 제대 양편에 도열해 있는 모습만으로도 장엄함을 느끼게 했다.

미사를 돕는 신학생들과 사제 수품자들, 수품자 출신 본당의 주임신부들, 제대에서 주교와 함께 미사를 지낼 장상(長上) 신부들이 차례로 행렬을 지어 입장하고 맨 뒤에 교구장 경갑룡 주교가 입장하여 분향을 함으로써 사제 서품미사는 시작되었다.

미사의 전반부인 '말씀 전례'의 마지막 순서는 주교님 강론. 칠순을 훨씬 넘기고 지난해 대장암 수술까지 받으신 분답지 않게 경갑룡 주교님의 강론은 여전히 박력과 기백이 넘쳤다. 특유의 굵은 목소리와 또렷하고도 리드미컬한 음조를 지닌 노인 주교님의 강론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사제는 하늘과 세상을, 동네와 동네 사이를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라고 했다. 어설프고 불완전한 다리지만 반드시 필요한,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고 했다. 사제는 매일같이 하느님께 미사성제를 바치는 제관이면서 동시에 제물이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바친 그 피의 제사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미사성제를 거행하며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의 모든 삶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는 존재라고 했다.

이미 깊이 알고 있는 사항이지만 사제 서품미사에서 주교님으로부터 그런 말씀을 다시 들으니 좀더 가슴에 절실하게 와 닿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 대목에서 사제들의 '수단'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천주교 사제들이 입는 수단은 육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평생토록 육신을 버리고 살게 됨으로써 천주교 사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미사성제에서 스스로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말씀 전례에 이어 '사제 서품 예절'이 진행되었다. 윤주병 총대리 신부님의 개별 호명에 따라 여섯 명의 사제 수품자들은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응답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는 태도였다. 주교와 사제 수품자들과의 간단한 '질의, 응답'과 '순명 약속'에 이어 '성인 호칭 기도'가 시작되었다.

사제 수품자들이나 신자들이나 이 성인 호칭 기도 순서에서 가장 가슴 절절함을 체감한다. 먼저 사제 수품자들은 제대 쪽으로 하느님을 향해 몸을 납작 엎드린다. 순결함을 상징하는 '장백의'를 입고 '영대'를 두른 그들이 오랫동안 땅에 엎드려 있는 모습은 슬프기도 하고 참으로 아름답다. 숨막힐 듯한, 신비한 긴장감 같은 것을 자아내기도 한다.

사제 수품자들이 땅에 엎드려 있는 동안 성가대는 그레고리안 성가로 성인 호칭 기도를 노래한다.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를 비롯하여 사제 수품자들의 세례명 성인들과, 가톨릭교회의 수많은 성인들 중에서 사제직과 관련되는 주요 성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기도하는데, 그레고리안 성가의 특이한 음조가 신자들의 가슴에 애절함과 신비한 비장감을 절절하게 안겨 주는 것이다.

사제 서품식 참석 경험이 여러 번인 나는 이 긴 성인 호칭 기도가 진행될 때마다 지금 사제 수품자들의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 아릿한 의문에 젖곤 한다. 지금 그들은 얼마나 간절한 마음의 눈빛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살고 죽어간 성인들의 도움을 지금 이 시간에도 목마르게 갈구하고 있을까? 그러며 혹 눈물을 삼키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 본당 출신 방영훈 수품자의 경우, 몇 년 전에 병으로 세상을 뜬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며 지금 눈물을 짓고 있지 않을까?

방영훈 수품자의 어머니는 나와 동갑으로, 처녀 총각 시절부터 우리는 친구 사이였다. 그녀가 나의 초등학교 동창 친구와 결혼을 하기로 했을 때 신랑자리가 천주교 신자도 아니고 쉽게 신앙을 가질 사람도 아닌 것 같아서, 내가 한때 슬그머니 만류를 하기도 했었다. 그랬는데,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맏이 외아들이 오늘 사제가 되다니….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자니 일순 내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슬며시 눈물을 닦으며 나는 성가대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노래 기도에 "방영훈 수품자의 어머니 윤영애 구네군다의 영혼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기도를 마음속으로 포함하곤 했다.

성인 호칭 기도가 끝나면 이어서 사제 서품식의 핵심 예절인 '사제 안수'가 시작된다. 맨 먼저 주교가 무릎을 꿇고 있는 여섯 명 수품자들에게 차례로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잠시 기도하는 안수를 행하면 이어서 참석 사제 전원이 행렬을 지어서 차례차례 여섯 명 수품자들에게 안수를 한다. 이 안수는 그리스도교 초대 교회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부터 후임자들에게 행해진 의식이었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사제 서품식의 중요 의식으로 계승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백 수십 명의 사제들은 하나같이 거룩하고 엄숙한 모습으로 새 사제 수품자들에게 안수를 행한다. 안수를 한 사제는 합장을 하지 않고 한 손을 든 채로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는 안수 예절이 모두 끝날 때까지 손을 내리지 않는다.

안수 예절 다음에는 여섯 명 수품자들의 소속 본당 주임신부들이 나와 수품자의 어깨에 대각선으로 걸쳐져 있던 영대 자락이 모두 앞으로 오도록 바로잡아주고 제의를 입혀 준다.

마침내 제의를 입은 사제 수품자들은 사제 신분이 되어 제대 아래에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제대 앞으로 오른 다음 주교의 양옆에 서서 미사 집전에 참여한다. 그리고 미사는 '성찬 전례'로 접어든다.

미사의 끝쯤에 행해지는 '사제 강복' 시간에는 새 사제들의 깨끗하고 거룩하고 복된 영적 상태가 표징적으로 나타난다. 주교 강복에 이어 새 사제들이 모든 신자들에게 '장엄강복'을 하는데, 이때에는 주교도 제대 아래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사제석의 참석 사제 전원도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신자들과 함께 새 사제들의 강복을 받는 것이다.

사제 서품미사가 모두 끝나고 주교와 사제단이 퇴장을 하고 나면 새 사제들의 가족과 친지들이 모두 몰려가서 축하 인사를 하고 새 사제 앞에 무릎을 꿇고 안수를 받는다. 새 사제로 갓 태어난 '애기신부'는 영육(靈肉)이 모두 이 지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복된 상태라고 한다. 그런 믿음 역시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요 요소다. 그 믿음에 의해 신자들은 새 사제 앞에 무릎을 꿇고 안수를 받는데, 선배 사제와 노(老)사제까지 와서 새 사제의 안수를 받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도 어머니와 아내, 딸아이와 함께 우리 태안본당 출신 방영훈 새 사제에게 가서 안수를 받았다. 순결한 애기신부의 안수로 내 몸과 마음이 참으로 깨끗한 상태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했다.

안수를 받고 나서 보니 우리 본당의 2대 주임사제였던 김병재(바오로) 신부님도 애기신부 앞에 무릎을 꿇고 육순이 넘은 반백의 머리를 숙이고 안수를 받고 있었다.

한참 안수를 행하던 새 신부가 몸을 잠시 돌리고 안경을 벗더니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땀을 닦는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그는 감격에 겨운 나머지, 그리고 안수의 영적 효험을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눈물을 지은 상태로 안수를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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