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제비"라 불리는 탈북 청소년

김 ㅇㅇ 형제 이야기

등록 2003.01.18 11:45수정 2003.01.2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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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관광객들에 둘러 쌓인 아이들이 있던 두만강가. 멀리 보이는 게 북한 남양의 산.

관광객들에 둘러 쌓인 아이들이 있던 두만강가. 멀리 보이는 게 북한 남양의 산. ⓒ 김창배

99년 3월 중국의 도문, 밤에 내린 눈으로 동장군이 다시 온 듯이 느껴졌다. 중국 국경도시 도문의 두만강가에 한 무리의 관광객이 모여 있어 사이를 비집고 살펴보니 허름한 옷차림에 벌벌 떨며 어찌 할 줄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는 두 아이가 보였다. 바로 옆 10여 미터도 되지 않는 곳엔 중국의 국경수비대가 서 있는데, 이곳 사정을 알리 없는 관광객과 두 아이는 국경수비대의 시선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 당한 중국 군인들의 단속이 떠올라 “언제 왔니?”라고 물으면서 서둘러 아이들의 손을 잡고 관광객들의 시선을 뒤로 둔 채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떠나왔다. 어제 밤 강을 건너 가게의 처마 밑에서 서로의 체온으로 밤을 지새웠다는 형제의 몸은 꽁꽁 얼어 있었다.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얘기를 나눠보니 굶주림과 질병으로 사망한 아버지 대신 먹을 것을 구하러 중국에 온 엄마를 찾아 강을 건넌 형제는 북한에 돌아 갈 가족이나 친척도 없었다. 여기 이대로 놔두자니 며칠 전 중국 군인들에게 잡혀간 해주의 소년과 같이 결국은 단속에 걸려 집단 구타와 강제 송환 되는 게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어디서 씻었니?” 라고 묻자....... 큰 실수를 한걸 깨달았다

a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문제의 수도꼭지.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문제의 수도꼭지. ⓒ 김창배

아이들에게 도문의 상황을 얘기하고 조금 안전한 곳으로 가겠냐고 물어봤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아이들은 대답이 없었고, “여기보다 조금 안전한 연길에 갈까?” 라고 재차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너희 옷차림을 보고 금방 북한에서 온 걸 알면 위험하니 목욕을 하자고 했다. 근처에 보이는 목욕탕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인과 옆에 있는 손님들은 아니나 다를까 금방 북에서 온 아이인 걸 알았다.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수건, 양말, 옷 등을 사러 시장에 다녀와 함께 목욕을 할 생각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이들은 벌써 다 씻고 옷을 입는 중이었다. 그러나 뒤에 보이는 욕실 안은 냉기가 흘렀고 샤워기를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 “어디서 씻었니?” 라고 묻자 수도꼭지를 가리켰다. 순간 큰 실수를 한걸 깨달았다. 그들은 수도꼭지의 차가운 물을 사용해서 머리를 감고, 얼굴을 씻었던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당연히 샤워기가 있으니까 그걸 사용할거라 생각했는데, 그들에겐 낯선 장치였던 것이다.

삼월이지만 북쪽지방이라 아직도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어는 이렇게 추운 날 차디찬 물로 떨면서 머릴 감았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나 미안했다. 아직까지도 떨고 있는 아이들과 다시 욕탕에 들어가 샤워기 사용법을 알려줬다. 우리가 보면 아무것도 아닌 샤워기의 온수를 보고 아이들은 아주 신기해했고, 생전 처음 보는 샤워기의 따뜻한 물에 아이들의 얼굴은 웃음꽃이 피었다.


샤워를 마치고 조금이라도 안전한 연변 시내를 가기 위해 도문 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데 마음 한구석에는 혹시나 중국 공안에 걸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보통의 중국의 아이들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을 했건만, 기차 안에 조선족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아이들이 북한 아이인 걸 금방 알아차렸다. 일부러 옷도 갈아입히고 씻기기까지 했는데 갈수록 불안감을 더해갔다.

중국 공안의 단속에 대한 두려움에 한 시간 반이란 시간이 금방 지나가 어느덧 연길시내에 도착하니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하룻밤이라도 따뜻한 곳에 재우고 싶어서 숙소로 묵고 있는 조선족 집에 전화를 걸어 하룻밤을 재워주길 부탁해 봤지만 거절당했다. 이유는 그들에게 병균이 옮을 수도 있고 정부의 단속 때문에 안 된다는 거였다.


하룻밤 5원하는 아이들의 보금자리

a 낡고 허름한 아이들의 보금자리

낡고 허름한 아이들의 보금자리 ⓒ 김창배

결국은 방법이 없어 낡고 허술하기 그지없는 록상청에 데리고 갔다. 하룻밤 5원하는 이곳에 아이들을 재우고 싶은 맘은 아니었지만 방법이 없어 주로 이곳에 머무는 전ㅇㅇ군과 만나 아이들을 소개하고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내일 아침 만나자는 약속과 밤참으로 빵과 귤을 건네주고 그곳에서 나와 숙소로 가려고 택시를 타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한번의 택시비면 아이들의 하룻밤 숙박비라는 생각을 들자 도저히 택시를 탈 수 없어 17번 종점의 숙소를 향해 걸었다.

아이들을 보살펴 줄 누군가를 찾다가 얼마 전 만난 연길대학 정치학과 김강일 교수님을 찾았다. 자초지정을 얘기하자 같이 탈북자를 돕는 친구분을 소개 시켜줬고, 아이들을 돌봐 주시겠다는 허락을 받고 아이들이 있는 록상청을 찾아가 이튼 날 만날 약속을 했다. 그러나 그 이튿날 아침, 아이들은 벌써 록상청에서 나가고 없었다. 전ㅇㅇ군과 같이 나갔다는 주인의 얘길 듣고 아이들이 갈만한 곳을 가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저녁에 다시 들렀지만,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기다렸지만 만날 수가 없었다. 몇 푼의 돈을 건네 아이들이 다시오면 먹을 걸 부탁한다는 말을 건네고 다음날 아침 귀국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 후 2년

2년이 지난 2001년 2월 다시 중국을 찾았다. 형제의 소식 알고 싶어 2년 전 만난 꽃제비들의 보금자리 록상청에 갔지만, 문은 닫히고 허름한 간판만이 걸려있었다. 우연히 만난 김ㅇㅇ형제와 같은 마을에 살았다는 하ㅇㅇ군으로부터, 형은 단속에 걸려 강제 송환되고, 동생은 단속을 피해 내륙에 들어갔다는 얘길 들을 수 있었다.

가족들이 같이 살지 못하고, 부모 형제와 생이별을 하고 지내는 아픔이 있지만, 사정이 나아지면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들 개인 개인이 그들에게 어떻게 해줄 방법은 없지만, 마음속으로 나마 항상 기억해 줬으면 한다. 가족들이 다시 만나는 그때까지 건강하게 꼭꼭 숨어 잡히지 않고 건강히 살아줬으면 한다.

a 밤새 처마 밑에서 언 몸을 녹이던 국경 앞의 식당

밤새 처마 밑에서 언 몸을 녹이던 국경 앞의 식당 ⓒ 김창배


a 아이들을 추위에 떨게한 문제의 수도꼭지. 얘들아 미안하다!

아이들을 추위에 떨게한 문제의 수도꼭지. 얘들아 미안하다! ⓒ 김창배


a 먹지 못하고 불규칙한 식사로 인해 이상하게 변해버린 아이들의 몸.처음 중국에 온 아이들 중에는 배가 불러도 계속 먹어대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언제 또 먹을 지 몰라 있을 때 먹어 둔다는 것이다.

먹지 못하고 불규칙한 식사로 인해 이상하게 변해버린 아이들의 몸.처음 중국에 온 아이들 중에는 배가 불러도 계속 먹어대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언제 또 먹을 지 몰라 있을 때 먹어 둔다는 것이다. ⓒ 김창배


a 아이들에게 하루라도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 간 연길 공원.

아이들에게 하루라도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 간 연길 공원. ⓒ 김창배


a 생전 첨보는 장난감들에 아이들은 즐거워했고, 공원 안에서 바이킹, 청룡열차,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여느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었다.

생전 첨보는 장난감들에 아이들은 즐거워했고, 공원 안에서 바이킹, 청룡열차,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여느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었다. ⓒ 김창배


a 낡고 허름하지만 아이들에게 웃음을 줄 수있는 몇 안되는 곳 중의 한 곳이다. 낡고 지저분한 소파, 여러사람이 사용했던 이불, 쓰다버리기 아까워 모아둔 각종 물건들이 그들 뒤에 널려져 있다.

낡고 허름하지만 아이들에게 웃음을 줄 수있는 몇 안되는 곳 중의 한 곳이다. 낡고 지저분한 소파, 여러사람이 사용했던 이불, 쓰다버리기 아까워 모아둔 각종 물건들이 그들 뒤에 널려져 있다. ⓒ 김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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