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물가 비상, 14만원과 40만원의 차이

[현장취재] 제수용품 구입, 정부 발표 가격의 3배는 들어야

등록 2003.01.24 00:39수정 2003.01.2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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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제수용품 구입에 비상이 걸렸다. 농림부가 할인점 기준 제수용품 마련에 드는 가격을 13만7천원이라고 발표했으나 기자가 이틀간에 걸쳐 조사한 결과 할인점보다 30% 이상 싼 재래시장 가격을 적용해도 현실적으로 이 가격으로는 도저히 설 제수 용품을 마련하기 힘든 것으로 분석됐다.


더군다나 기자가 조사한 재래시장의 경우 준 도매시장에 가까운 서울의 초대형 '경동시장'이라는 점에서 정부 당국의 기준과 주장이 억지임이 드러났다.

설을 맞는 서민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연휴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현금 수요를 줄여 더욱 썰렁한 명절이 될 듯싶다.

a 경동시장1

경동시장1 ⓒ 김규환

생선을 파는 이재명(51, 서울 전농동)씨의 말을 들어보면 더욱 확연하다.

@ADTOP7@
"작년보다 최소 10%에서 많게는 20%까지 올랐을 겁니다. 정부가 발표한 것은 지난번 전국적으로 폭설이 내리기 전에 매년 해오던 방식대로 조사한 것이니까 13만원으로 설 차례상을 차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한 번 사 보라지요. 우리도 설 쇠야 하는데 걱정이네요."

현실적으로 그렇다. 무 하나에 예년의 경우 4-500원하던 것이 1000원을 줘야 한다. 조금 크다 싶으면 1500원으로, 부르는 게 값이다. 한파로 인한 물량 부족으로 생선, 채소, 과일 등 품목에 관계없이 10% 이상 올랐다. 오직 내린 것이라곤 귤밖에 없다.


a 경동시장2

경동시장2 ⓒ 김규환

더군다나 설 제수용품 준비에 드는 가격의 허구가 드러나는 것이 몇 가지가 더 있다.

첫째, 그 가격으로 가능한 음식의 양이 가족이 모이는 차례상이 아니라 분가해 단출한 핵가족 기준이라는 것이다. 고작 3-4명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마땅히 고쳐져야 한다.


둘째, 설 제수용품 구입이라는 명목으로 한정함으로써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설에도 밥을 먹으니 쌀 20kg 가까이 소비한다. 차례를 지내고 일상적으로 먹는 먹을거리 목록을 제외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술 한 잔 먹지 말라는 얘기다.

셋째, 두 번의 대명절인 설과 추석은 대도시에서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런데 그 비용 일체를 제외하고 등한시하고 있다. 자가용이 일상화된 요즘 차량 운행비와 각종 경비가 제외된다면 나머지 비용은 어디서 충당하라는 건가?

넷째, 농림부 발표 기준이 더 시대착오적인 것은 친가만을 기준으로 삼고 지출하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많다. 친가와 처가를 같이 가야하는 신세대적, 시대적 요구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가부장에 찌든 남성 공무원이 뽑은 기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섯째,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선물비용을 제외하고 산출한 점이다. 어른들 옷가지와 아이들, 조카들 양말 하나도 못 사게 하는 산출법이다. 기본적인 도리마저 하지 말라는 것인가.

일시에 한 곳에 근 20명에 가까운 사람이 모이고 손님까지 찾아오는 우리네 명절이라면 음식의 양은 수십 인(人) 분에 이른다. 사과 달랑 3개, 배 3개, 귤 5개로는 어림도 없다. 떡국도 한 그릇 먹고 넘어가기엔 아직 시기가 이르다. 이미 모인 사람과 기왕 찾아오는 손님을 굶길 수는 없잖은가?

@ADTOP8@
a 경동시장3

경동시장3 ⓒ 김규환

기자가 조사분석한 기준은 이렇다.

3가족 12명(어른 6명, 아이 6명) 2일간을 기준으로 양념류와 쌀도 포함시켰다. 그 이유는 이때도 밥을 먹는다는 기본적인 사실에 의거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다. 과일을 한 박스씩 산 것은 손님이 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제수 용품을 중심으로 일상 먹을거리 일부도 포함시켰다. 물리는 입맛을 제사 음식으로만 채울 수 없는 까닭이다. 아래 A를 형님네와 반분할 경우 20만원 가량의 비용이 절감되나 여기선 어차피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 필요한 물건인 만큼 본인이 전액 지불한 것으로 간주한다. 처가는 최소 필요한 것만 사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이 가격은 대부분 경동시장 기준가(2003. 1. 23)이며 과일의 경우 상품보다는 중품이며, 육류 중 소, 돼지만 일반 정육점을 적용하였다. 경동시장 정육의 경우 턱없이 싼 가격 때문에 전국적인 평균 가격대와 다르기 때문이다. 소고기가 600g 1근에 6-7000원 하므로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a 경동시장

경동시장 ⓒ 김규환

다만, 할인점에서 구입시 재래시장 가격의 30% 정도 높여 잡아야 한다. 제수 용품은 #으로 표시했다. #을 제외한 일상 먹을거리는 8만원 상당으로 전체에서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어차피 설 명절 동안 먹고 즐기는데 필요한 것이라 무시해도 상관없을 듯하다.

설이 임박해옴에 따라 가파르게 상승하는 가격 특성상 이후 상승효과 까지 감안해야 하며, 동네 재래시장에서 장보는 데는 소매시장이는 것까지 추가해야 가격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두 가지 조건을 덧붙이면 한 번 더 10% 까지 상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일반 음식과는 별도로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초소한의 지출을 결심하는 데도 오히려 경비와 선물, 용돈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50만원 이상 든다. 총계가 96만원에 이른다.

이래저래 명절이 즐겁지만은 않지만 즐거운 맘으로 설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상할 품목을 제외하고 미리 시장을 보는 지혜가 발휘되어야 할 때이다.

a 경동시장5

경동시장5 ⓒ 김규환



<계미년 설 대목장 제수용품 가격조사>
2003.1.23 서울 경동시장에서 이틀에 걸친 조사 결과

A1<채소와 나물> 63,800원

#무 6개 6,000원 배추 1단 4,000원 상추 800g 4,000원
쑥갓 400g 1,500원 #고사리 400g 5,000원(國), 2,500원(外)
#시금치 800g 6,000원 #콩나물 800g 1,000원 #숙주나물 400g 800원
#도라지 400g 5,000원(國), 3,000원(外) #애호박 3개 4,500원
마늘 1200g 6,000원 양파 小 3,000원 대파 2단 3,000원
풋고추 400g 2,500원 청양고추 400g 3,000원 생강 400g 1,500원
당근 5개 1,000원 #토란대 400g 5,000원 깻잎 10묶음 1,000원
쪽파 1단 3,000원 양배추 1개 3,000원 부추 1단 2,000원
미나리 1단 1,000원 오이 5개 2,000원 봄동 1kg 2,000원
#당면 500g 2,000원 #두부 3모 3,000원

A2<양념류> 18,200원

#계란 1판 2,500원 #참깨 1kg 5,000원(外) #참기름 320ml 3,800
#실고추 한줌 2,000원 #설탕 1kg 1,000원 #식용유 0.5l 1,000원
#양조간장 1l 2,900원

A3<한과와 식혜> 40,500원

#유과 1봉지 3,000원 #강정 1봉지 3,000원 #약과 1봉지 3,000원
#엿기름 1되 1,500원 선물용 석작 포장 1개 3만원

A4<과일>중품 기준 73,500원

#사과 1박스 30,000원 #배 1박스 25,000원 #귤 1박스(15kg) 7,000원
#대추 400g 3,500원 #밤 1되 4,000원 #곶감 1봉지 4,000원

A5<생선>71,000원/77,000원

#전어 5마리 7,500원 #병어 3마리 10,000원 #준어 1마리 10,000원
#낙지 1묶음(7마리) 10,000원(냉동), 12,000원(생물 5마리)
#세꼬막 1되 4,000원(참꼬막 6,000원) #생조기 3마리 7,500원
조기 1두릅 20,000원 자반고등어 1손 2,000원
홍어 1마리 (*호남지역의 경우만 추가) 1만원에서 5만원 사이

A6<포와 전> 23,000원

#북어포 1마리 3,000원 #탕감재료(새우, 홍합, 북어포) 5,000원
#김 한톳 5,000원 #동태포 1kg 5,000원 #표고버섯 400g 4,000원
#부침가루 1kg 1,000원

A7<떡> 12,000원
#가래떡 4kg 12,000원

A8<육류> 72,000원

#한우 국거리 600g 22,000원 #한우 산적용 600g 22,000원
*참고:육우 600g 13,000원 수입육 6,000원
#돼지고기(목살) 600g 5,000원 삼겹살 1800g 18,000원
#닭 1마리 5,000원

A9<술> 39,800원

#청주 1병(中) 3,800원 소주 360ml 5병 4,000원 맥주 1박스(20병) 32,000원

A10<쌀> 43,000원
#쌀 20kg 43,000원

------------
A:소계 413,200원

B1<경비> 172,400원
승용차 왕복통행료 32,400원(천안-논산 간 고속도로 이용 시)
승용차 연료비 왕복 90,000원(장수군 처가 방문 포함)
귀향, 귀가 식비 4명*5,000원*2회=40,000원 음료수와 우유값 10,000원
차량점검비:

B2<친가 용돈 및 선물> 190,000원
형님 용돈 10만원 씩 100,000원 조카들 옷과 형님네 양말 등 40,000원
세배돈 50,000원

B3<처가 방문비용> 190,800원
어른들 용돈 100,000원 조기 20,000원 청주 1병 3,800원
돼지고기 1800g 18,000원 소고기 1200g 44,000원 김 5,000원
-----------------
B:소계 553,200원

총계: A(413,200)+B(553,200) = 966,400원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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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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