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9

北醫와 南醫 (4)

등록 2003.01.26 13:57수정 2003.01.2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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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의 여러 요혈은 가격 당하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앗을 수 있거나 움직이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상대의 혈도를 제압하는 것이 대결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첩경(捷徑 :지름길)이다.

하지만 누가 자신의 혈도를 가격하도록 가만히 있겠는가? 그래서 이런 수련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날아다니는 파리를 제압할 수만 있다면 제아무리 현란하게 움직이는 상대라 할지라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목표한 요혈을 파리로 생각하고 그것만을 노린다면 누구든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이곳을 택했고 그 동안 언제 어떤 자세에서든 정확하게 찌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흘린 땀이 족히 서 말은 될 것이다. 그러나 수 없이 찌르기를 했지만 어쩌다 목표에 적중할 뿐 의도한 대로 되지 않자 짜증이 난 것이다.

"제기랄! 대체 왜 안 되는 거야? 뭐가 잘못 돼서 그런 거지? 지금쯤이면 제대로 되야 하잖아."

이회옥은 철천지원수를 바라보듯 날아다니는 파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봉 끝에 앉았다 날아가는 파리는 그의 신경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제기랄! 다른 건 다 마음대로 됐는데… 이잇! 좋아, 네놈들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두고 보자. 이야압!"


한참을 투덜대던 이회옥은 이를 악물고 봉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는 이내 기합성을 토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파리는 약 올리듯 날아가고 있었다. 이에 오기가 솟은 그는 연신 찌르기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나 봉은 여전히 허공만 헛되이 찌르고 있었다.

"좋아! 한번이라도 안 맞으면 오늘부터 굶는다. 야아압!"


유난히 오기가 강한 이회옥은 파리를 노려보며 또 다시 찌르기를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 새벽, 전신이 땀 투성이가 된 이회옥은 청룡무관의 너른 연무장 한 복판에 누운 채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지난 밤 내내 횃불을 밝힌 채 고련을 거듭한 결과 처음으로 한 마리를 잡았기에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다음날, 이회옥은 팔이 떨어져 나갈 듯한 고통을 느꼈으나 이를 악문 채 봉을 고쳐 잡고 파리들을 향하여 봉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날 그가 잡은 파리는 고작 두 마리뿐이었다.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던 세 시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할애한 결과였다. 실망스러웠지만 이회옥은 포기하지 않고 눈빛을 빛냈다. 하루에 한 마리씩이라도 늘어난다면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두 달이 지날 무렵 예리한 파공음을 내며 쇄도한 봉은 날아다니는 파리들은 여지없이 떨어트리고 있었다.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얍얍! 얍얍! 하하! 이 놈들아, 이젠 모두 뒈졌다. 얍얍!"

봉이 허공을 꿰뚫을 때마다 여지없이 파리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것들은 어디에 대고 두들긴 것처럼 납작해져 있었다. 봉이 워낙 빠른 속도로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것은 실로 인간 승리라 할만한 일이었다. 두 달이 넘도록 오로지 한가지에만 몰두한 결과 원하던 결과를 얻은 것이다.

"후후후! 되었어. 이제 되었어. 하하하! 드디어 해냈다. 내가 해 냈다고… 혀엉! 이제 되었어. 이제 되었다고…"

만족스러운 듯 미소짓던 이회옥은 떠난 이후 아무런 소식도 없는 왕구명의 영상을 떠올리며 계속하여 중얼거렸다.

"형! 이제 봉술은 웬만큼 된 듯 싶어. 알아본 바에 의하면 현 무림에서 봉을 쓰는 사람은 별로 없대. 있다면 개방( 幇) 사람들뿐이래. 이젠 개방일절이라는 타구봉법(打狗棒法)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시험해 볼 거야. 그리곤 궁술(弓術)에 도전해 볼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 동안 근력을 키운 것은 사실 궁술을 익히고 싶어서였다.

처음 청룡무관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에는 시위조차 제대로 당길 기운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활이 부러지도록 시위를 당길 근력이 키워진 것이다. 그렇기에 궁술을 익혀볼 생각을 한 것이다.

"알았어, 알았다고! 데리고 나가면 될 것 아냐. 후후! 녀석, 며칠 동안 안 데리고 나갔다고 단단히 삐진 모양이네."

비룡이 묶여 있는 마굿간 쪽에서 들리는 투레질 소리를 들은 이회옥은 미소를 머금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난 며칠 간 오기 때문에 비룡을 데리고 나가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워워! 하하, 녀석! 알았어, 지금 나가잖아. 하하하!"

마굿간을 벗어난 비룡은 달리고 싶다는 듯 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러고 보니 비룡은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는 망아지였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갈기와 털을 지닌 비룡은 천리준구라는 것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잠시 후 산해관 외곽을 쏜살처럼 질주하는 일기(一騎)가 있었다. 비룡과 이회옥이었다.

"하하하! 녀석, 이제 만족해?"
히히힝! 히히히히히힝―!

이회옥이 갈기를 부드럽게 다독이자 비룡은 만족스럽다는 듯 울음소리를 토했다. 그런 비룡의 전신은 번들거리는 땀이 솟고 있었다. 그것은 피처럼 붉은 색깔을 지니고 있었다. 역시 한혈마(汗血馬)였다.

"가만…! 오늘은 기분 좋게 달렸으니 네 녀석이 좋아하는 것을 사주지. 후후, 집으로 가지말고 저잣거리로 가자꾸나."

이회옥이 고삐를 쥔 손에 힘을 주자 비룡은 방향을 틀었다. 그곳에는 봇짐을 진 사람들이 잔뜩 지나고 있었다. 등에 무거운 짐은 진 채 수천 리나 되는 먼 길을 걸어와서인지 몹시 지쳐 보였다.

아마도 매년 조선에서 온다는 사신 행렬인 모양이었다.

비룡은 태극목장에서 태어난 이래 이처럼 많은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이곳에 와서도 청룡무관에 처음 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저잣거리로 향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 사이로 접어들자 약간 흥분되는 듯하였다.

"워워! 괜찮아, 괜찮아. 천천히, 천천히 가자."

연신 갈기를 다독이는 이회옥의 손길에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비룡의 발걸음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웬만한 말 같으면 아무리 다독여도 날뛰었겠지만 과연 비룡은 달랐던 것이다.

"하하! 녀석, 그래 지금처럼 의젓하게 걸어. 자,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저잣거리다. 맛있는 당근을 사줄게."

조선 사신의 길고 긴 행렬을 구경하며 지나온 이회옥은 품속의 은자를 계산하고 있었다. 왕구명은 멀리 떠났지만 무천장에서 는 매달 은자 다섯 냥씩을 지급해왔다. 그 정도면 네 식구가 족히 한 달은 먹고 살 수 있는 거금이다.

지금껏 이회옥은 흥청망청 쓸 수도 있지만 최대한 아껴서 썼다. 형은 어디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르기에 그 고생의 댓가를 마음대로 써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만, 먼저 번에 당근이 얼마라고 했더라…? 맞아! 한 관에 한 푼이라고 했어. 후후, 그럼 한 푼만 쓰면 되겠군. 그리고, 양식이 떨어졌으니까 이번에 좀 들여 봐야겠네. 으음! 얼마더라…?"

이회옥이 한참 동안 품속의 은자를 더듬으며 계산을 할 무렵이었다. 무엇인가 작은 것이 섬전의 속도로 허공을 꿰뚫으며 파공음을 내고있었다.

쐐에에에엑!
퍼억!
"으윽!"
히히히히힝! 히히히히히힝―!
두둑! 두두둑! 우두두두두두두두둑!

아무런 방비도 없이 있다가 후두부를 강타 당한 이회옥은 나지막한 신음과 함께 혼절하면서 앞으로 엎어졌다. 한편 비룡은 갑작스럽게 이회옥이 엎어지면서 이마로 갈기부분을 강타하자 화들짝 놀람과 동시에 내닫기 시작하였다.

"이런 젠장! 빌어먹을… 에잉! 저 놈을 잡았어야 하는데…"
"에이, 빌어먹을! 하필이면…"
"젠장…! 이제 다 틀렸어. 다 틀렸다고…"

비룡이 왔던 길로 되돌아가자 관도 곁 숲 속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재수 없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산해관 인근에서 활동하는 악명 높은 비적들이었다. 비적이나 마적들은 원래 저잣거리 부근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 법이다. 관군에게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예외였다. 조선에서 온 사신 행렬에는 적지 않은 양의 인삼을 지닌 상단(商團)이 뒤따르고 있었다. 조만간 황도에서 열릴 약령시(藥令市)에 참가하기 위함이었다.

중원에서도 인삼은 나나 조선 인삼에 비하면 그 약효의 차이가 엄청났다. 따라서 중원 인삼은 한 근에 은자 오십 냥 정도이나 조선 인삼은 근당 이백 냥 가량 한다. 비싸지만 워낙 약효가 뛰어나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 중원의 약재상들은 조선 인삼이 없으면 장사를 못할 정도이다.

작년에는 사신 행렬이 산해관에 당도하기 전에 덮쳤다. 그래서 적지 않은 양의 인삼을 강탈할 수 있었다. 덕분에 작년에는 더 이상 행인들의 재물을 강탈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은 은자를 벌어들였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렇게 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내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무사들이 삼엄한 호위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조선 상단에서 고용한 조선의 고수들임이 분명하였다.

게다가 행렬은 미리 척후를 보내 전방의 상황을 살핀 뒤 전진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렇기에 급습의 기회를 노릴 수 없던 비적들은 계획을 전면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위무사들의 수효도 수효지만 그들의 무공 수위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따라서 겁없이 덤볐다가 거꾸로 당할 수도 있다. 하여 산해관에 당도할 때까지 공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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