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제사에서 한 여인이 향로에 향을 꽂은 후 법당의 부처님을 향해 간절히 무언가를 기원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김남희
기어이 햇살은 닫힌 창과 커튼을 뚫고 들어와 방 안을 점령했다. 오늘도 화창한 날씨다. 뜨거운 물에 두유를 타서 마시고 밖으로 나간다. 오늘도 걸어서 섬을 둘러보기로 한다. 이곳에서 가장 큰 절인 보제사로 들어서니 이른 아침의 절은 조용하다. 향로에 향을 꽂고 소원을 비는 중국사람들이 간혹 보인다.
불정산으로 오르는 길목 곳곳에 작은 불상을 모셔놓고 향을 피운 흔적들이 남아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섬 어디에서도 흙을 밟을 수 없다는 거다. 산꼭대기까지도 1088개의 화강암 계단이 놓여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오르니 바위틈에 신수라고 쓰여 있는 샘이 보인다.
그런데 이게 웬일. 한 아줌마가 지키고 서서 돈을 받고 한 잔, 혹은 한 병씩 물을 팔고 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김선달도 울고 갈 일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당장 "이 물이 아줌마 물이냐?"고 싸움이 나거나 했을 텐데, 중국사람들은 돈을 내고 물을 먹거나 말없이 스쳐 지나간다. 중국에 왔으니 중국식을 따라야겠지. 목마름을 애써 참고 나 역시 말없이 돌아선다.
불정산 정상 부근에 자리한 혜제사에 들어서니 또 입장료가 5원이다. 섬 상륙비로도 모자라 이 섬은 절마다 다 따로 입장료를 받고, 해변의 모래사장을 걷기 위해서도 입장료를 내야 한다. 이 작은 섬을 왕복하는 미니버스는 무려 5원. 순식간에 지갑을 비워버리는 섬이다.
이곳에 오르는 동안 자신도 혼자 여행하니 같이 가자던 중국인 아줌마가 내게 향을 건네 주신다. 잠시 망설이던 아줌마, 내게 1마오(15원)를 달라고 하신다. 돈을 내지 않고 향을 꽂으면 좋지 않다고 덧붙이면서.
작년 여름 일본에서 친구 마미코의 식구들과 도쿄 근처의 절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 마미코 어머님도 내게 소원을 비는 종이를 사주시면서 1원을 달라며 같은 말씀을 하셨는데. 아줌마께 1마오를 드리고 향을 받아든다. 곁눈질로 아줌마를 따라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절을 하고 향을 꽂는다. 이곳에서도 역시 내 여행의 무사함과 가족들의 평안을 기원. 부처님과 천주님 두 분 중의 한 분은 내 기원을 들으셨겠지.
가끔씩 사람들이 내게 종교를 물으면 나는 대답하기가 난처하다. 매번 안식일을 지키는 종교는 없지만, 모든 종교에 문호개방을 하고 절에 들어가면 부처님께, 성당에 가면 천주님께, 이슬람사원에 가면 알라신께 복을 빌고는 하니 기회주의자라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을 듯도 하다.
하지만 신이 없다, 있다 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인간의 인식영역을 넘어서는 일인 것 같이 여겨진다. 또 기독교의 하나님이 계시다면 부처님이나 알라신이 없다고 하는 것도 부당한 것 같고, 신들의 세계에서는 인간이 만든 경계 따위는 가볍게 건너다니지 않을까 싶기도 한 것이다.
우주를 주관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남겨두고, 나는 이 세계에 인간의 지적 능력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다른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싶은 거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신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이 아닐까? 이상은 한 기회주의자의 변명.